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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푹 쉬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10월 29일 16:09분873,260 읽음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야구를 제일 좋아하는 나라일 겁니다. 지난 2008년 올림픽에서 결승전에서 쿠바와 우리나라의 경기는 정말이지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멋진 게임이었습니다. 3대 2로 불안하게 1점을 앞서 가는 상황에서 1사 만루, 안타 하나면 역전패 위기. 그 순간 금메달이 저 멀리 날아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만루 상황이었고, 쿠바의 승리로 게임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졸이게 하였습니다.

투수가 교체되고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후에 마지막 결정구를 던지는 순간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습니다.
병살타!
전 국민 숨이 순간적으로 멎고 거의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올림픽에서 그것도 야구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고 그 광경을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면서 가슴 뿌듯한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삼촌들과 같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기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를 하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이고 삼촌들이 보는 텔레비전을 내 맘대로 보고 싶은 채널로 돌릴 수 없었고, 꼭 내가 보고 싶은 만화영화를 할 때만 야구 중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기에서 9회 말 한대화 선수가 터뜨린 끝내기 홈런 한 방은 지난 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때와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그 당시 야구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온 집안 식구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때는 나도 모르는 기쁨에 사로잡혀 형들, 삼촌들과 부둥켜안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기뻐했습니다. 그 때부터 야구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요즘도 대구나 광주 같은 도시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하는 날이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야구장으로 우르르 몰려갑니다. 마치 야구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눈을 반짝반짝하며 삼삼오오 모여서 야구장을 찾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야구에 열광합니다. 경기가 끝나면 그날의 경기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씩들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삶에 야구는 커다란 기쁨을 주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프로야구에 관심을 쏟을 수는 없지만, 가슴 속으로 응원하는 팀의 순위와 그날의 하이라이트 정도는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시청합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은 바로 나의 동지입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것만으로 친구가 되는데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야구에서 최고의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장효조 선수와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 선수가 며칠 간격으로 안타깝게 별세하였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암을 이겨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평생에 걸쳐서 서서히 소진해 나갑니다. 운동선수들은 그 에너지를 더욱 빨리 소진합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승과 패를 가르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무척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심 강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어려움에 봉착해서도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태연한 척하는데 그런 일은 에너지를 많이 고갈시킵니다. 외국에서는 이것을 번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일단 번아웃에 걸리면 두 가지 경우가 생깁니다. 몸에 병이 생기거나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5년 혹은 10년 동안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우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 집의 아이들도 이 노래를 가끔 부릅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힘내세요! 아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힘을 내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습니다. 배터리는 거의 소진되어 가는데 아이들조차 계속해서 힘내라고 하니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노래 가사를 다시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빠! 푹 쉬세요. 우리가 도울게요.
아빠! 푹 쉬세요. 우리가 도울게요.
푹 쉬세요. 아빠!

최동원 선수의 가정환경을 보면 암에 걸릴 확률이 아주 낮은 집안 내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직접 집에서 기른 채소로 음식을 해서 먹었으며, 술과 담배는 평생 입에 대지 않았고, 고기는 어쩔 수 없는 회식자리에서나 먹었다고 합니다. 큰 경기가 있다고 따로 보약 같은 선물이 들어오면 모두 지인에게 선물하고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김치에 시래깃국을 한 사발 먹고는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환경에서는 암에 잘 안 걸린다고들 합니다. 그럼에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은 메시지를 갖고 온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의 존재는 변화하고 진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진화를 통해서 고갈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암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월간암(癌)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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