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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홀로 되기 이전에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02월 08일 12:41분878,211 읽음

지금까지 저는 미국, 독일, 일본에서 배우자를 잃은 수천 명을 상대로 카운슬링을 해왔습니다. 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에는 국적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비슷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제 도쿄에 사는 어느 여성의 실례를 통해 몇 가지 문제점을 거론해 보겠습니다.

그녀가 쉰다섯 살 때, 두 살 연상의 남편이 암으로 죽었습니다. 의사가 당사자에게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그녀는 끝까지 실제 병명을 남편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습니다. 유언장을 작성해놓자고 말할 수 없었고 회사의 사장이었던 남편에게 사후 회사의 운영에 대해 상담하는 일이 일체 불가능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쌓여 있으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끝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남편은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자, 곧이어 친척과의 사이에 유산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져 재판에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밤중에 몇 번이나 “당신 남편이 친구로부터 돈을 빌렸다. 빨리 돈을 갚아라”는 협박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습니다. 회사일은 전부 남편이 처리했으므로,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남편이 없는 지금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거액의 돈을 갚으라는 협박에 지쳐버린 그녀는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이 같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그녀를 더욱 괴롭힌 것은, 남편이 죽기 전에 서로 중요한 것에 대해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후회였습니다. 남편에게 암이라고 말할 수 없었으므로, 아무래도 화제는 그와 관계없는 이야기로 한정되고 말았습니다. 그날그날의 날씨라든가 스포츠, 예를 들어 전날 저녁 프로야구 시합의 결과, 연예인의 이모저모 정도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5년 전 남편의 실수에 대해 용서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조차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그 일로 인해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 일을 용서하고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죽은 뒤 이런저런 후회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일 그녀가 일찍이 ‘배우자가 죽기 전에 미리 받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혹은 부부가 함께 ‘죽음준비교육’을 받았더라면, 남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별했을 것이고 배우자가 죽은 뒤의 생활도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저도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언제 이런 비극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또한 그런 불행을 당해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다시 한 번 지난날의 체험을 되돌아보고 문제점을 정리해두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무엇보다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여 검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1. 경제적, 법률적인 문제점
● 유언장은 작성했습니까? (남편과 아내 모두)
●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무는 없습니까?
● 자신이 갑자기 죽을 경우, 업무상 문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 상속 관계로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습니까?
● 자녀 양육비 문제로 곤란한 점은 없습니까?
● 고령자를 돌보는 일은 누가 합니까?
● 애인이나 혹은 숨겨둔 자녀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2. 일상생활에서의 불편
● 예금통장이나 열쇠가 있는 장소는 알고 있습니까?
● 세금, 보험료, 전기료 등을 지불하는 방법은 알고 있습니까?
● 상대방의 교우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까? (사망통지를 했을 때 누가 올 수 있습니까?)
● 당장 집안일을 하는 데 어려운 일은 없겠습니까?
(남성의 경우: 요리, 청소, 세탁하는 방법 등)
(여성의 경우: 주택이나 전기제품의 수리와 정비 등)
(그 밖의 동네모임이나 일용품의 수납장소 등)
● 가족 간의 새로운 역할 분담 문제는 어떻습니까?
● 주위 사람의 눈길에 대한 배려는 어떻습니까? (화려한 복장으로 외출하거나, 이성과 함께 있는 것을 보이는 것 등등…)

3. 건강관리의 문제
● 혼자 지내는 생활의 위험성은 무언가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심신의 건강을 해치기 쉽다는 점에 있습니다.
● 기력이 소진해버리는 증후군(burnout syndrome)의 위험성(간병과 장례의 피로 때문에 기운이 완전히 다해 살고자 하는 기력을 잃는다)
● 섹스의 문제(무시하며 억압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4. 정신적인 면에서의 대응
● 비탄을 겪는 과정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충분히 소화해내는 법(슬픈 감정을 솔직하고 적절하게 발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생활 전반에 걸쳐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 부부 각자가 지닌 생각들을 점검해나가면서 함께 이야기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죽음을 터부시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죽음과 사귀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생활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추억은 보물

오랫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맛보았던 배우자의 죽음은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안겨줍니다. 남겨진 사람은 반드시 시간을 갖고 끝까지 성취해내야만 하는 인생의 중요한 과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물론 죽음준비교육에 의해 비탄의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법을 아는 일, 배우자의 죽음을 직접 체험하기 이전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런저런 유사한 체험을 시험해보는 등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일이 배우자의 죽임이라는 비탄을 극복하는 데 구체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귀중한 능력 중 하나로, 지난 일을 회상하고 이를 다시 추체험(追體驗)하는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으므로, 과거란 단지 지나가버린 일이 아니라 우리 인격의 일부로 남아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난 일을 회상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라도 지난날의 시간과 공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회상하는 중에 당시의 체험을 되풀이하여 맛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배우자가 건강할 때 가슴속에 남을 만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읍시다. 사진 앨범을 정리하기도 하고, 함께 보았던 영화의 팸플릿을 모으기도 하고, 여행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사두는 일 등을 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있지 않다 해도 당신의 마음속에 언제나 계속 살아 있습니다. 배우자를 잃었어도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행복한 나날의 기억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그것은 고독한 현재를 비추는 위안으로 가득 찬 빛이 될 것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알폰스 데켄, 궁리

월간암(癌)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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