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희망편지 - 합리를 넘어서는 마음의 소리
고정혁 기자 입력 2010년 10월 12일 16:34분877,964 읽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인 사람이 되려고 아이는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집, 학교, 학원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합리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한 내용이 대부분이며, 기술적인 부분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또 교육으로 교양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어릴 때 배운 교양으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이의 인생과 사회성은 어찌 보면 교양이라고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어려서부터 배워온 많은 것들이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고 스스로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 혹은 가족 중 누구라도 암에 걸렸다는 암 진단을 받는 순간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돈이 있다 하더라도 암 진단을 받으면 어찌할 바를 몰라서 전전긍긍,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연세가 80이 넘은 노인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노인은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이대로 가족과 함께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황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암은 치료해야만(?) 하는 의료진은 수술과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가족에게 전합니다. 고등교육을 받고 치료는 의사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며 자녀들은 노인을 설득시켜 위를 모두 절제하고 식도의 일부까지 절제하는 수술을 받게 합니다.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인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수술로 몸이 채 회복되기 전에 항암치료를 하자고 서두릅니다. 가족들은 항암치료를 못할까봐 걱정하는 사이 노인의 몸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가족 누구도 수술과 항암치료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이 의료시스템입니다. 공부를 하고 학교를 나와 사회생활하며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지만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서는 어떤 식의 책임과 결정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백여 년의 시간을 거쳐 현대의 사회는 합리성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교육은 합리성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비합리적인 것들은 신화로 매도합니다. 한 마디로 비과학적인 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올 수 없는 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의료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들여놓을 수 있는 자리가 없게 됩니다. 합리적인 과학의 입장에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사회는 비과학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은 모두 사멸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다 할지라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이성에만 의존합니다.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합리적인 것만 쫓아가는 우리의 의식은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불안합니다.
예를 들면, 밤하늘에는 수도 없이 많은 별이 보입니다. 합리적인 생각은 눈에 보이는 별들만을 갖고 하는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영역 너머의 수많은 별과 우주는 비합리적인 대상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대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는 더 넓고 깊고 오묘합니다. 그래서 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범위에서 도출된 생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의식 속에 이러한 불완전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것, 증명할 수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교육받아 왔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도외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이 주는 의미들을 뒤로 하고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불가항력의 상황을 조금 더 행복하고 좋은 쪽으로 결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이러한 지혜를 이끌어 내려면 먼저 필요한 것은 고요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고요한 마음에서 솟아나는 용기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용기는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으로 한 발짝 다가서려고 하는 생각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방향전환을 합니다. 왜냐하면 합리적으로만 판단하는 이성이 알아차리지 못해도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의 나는 고요한 마음속에서의 목소리가 이성의 목소리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본능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 모두가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고학력, 고소득보다 이런 지혜를 갖춘 사람이 늘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월간암(癌) 2009년 12월호
추천 컨텐츠
    - 월간암 광고문의 -
    EMAIL: sarang@cancerline.co.kr
    HP: 010-3476-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