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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귀래관(貴來館)에서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4년 07월 22일 09:57분359 읽음
글: 김철우(수필가)

방문을 열자 흙냄새가 태풍처럼 밀려 들어왔다. 간밤에 비바람이 얼마나 대지를 뒤흔들어 놓았는지 짐작이 갔다. 보습의 신이 세상의 땅을 모조리 갈아엎어 놓은 것은 아닐까. 폭격을 맞은 듯 잎을 떨군 문 앞의 나무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콘크리트 숲에서만 살아 온 삶에게 코를 파고드는 흙냄새는 충격이었다. 신선하면서도 생명력이 느껴지는 냄새란 이런 것인지…….

‘본질적인 땅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원주(原州), 이름 그 자체를 나는 사랑했는지 모른다.’라던 박경리 선생님의 글이 떠오르자, 비로소 내가 원주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지문화관 창작실인 귀래관에 입주한 지 며칠째, 커튼을 두른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식사 시간에만 본관에 들르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귀래관에서 본관까지는 작은 숲을 지나야 한다. 박경리 선생님이 직접 조성하셨다는 뽕나무 숲길이다. 숲이라고 해봐야 100여 미터쯤 될까. 늦은 시간에는 멧돼지나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나온다며 토지문화관에서 주의를 준 장소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쌓인 낙엽과 이끼 등이 많아 비가 오면 진창이 되기 마련인데 다행인 건 일정한 간격으로 침목(枕木)이 깔려있다. 침목 간의 간격이 내게는 좁은 듯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를 건너뛰면 너무 멀어져 불편해진다. 그저 하나씩 천천히 걷기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두 건물 사이를 오가는 길은 침목을 밟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자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침목 주변의 다른 존재들이 보이게 된 것이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개미. 뭐가 바쁜지 크고 작은 녀석들 할 것 없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게다가 빠르다 보니 내가 다리를 들어 옮기려는 곳에도 느닷없이 나타나 놀라게 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는 또 얼마나 많은지. 땅을 기는 녀석들은 그나마 참을 수 있으나 앵앵거리며 얼굴 주위를 날고 있는 녀석들은 정말 귀찮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런 녀석들만 눈에 띄는 건 아니다. 침목 주변의 푸른 이끼와 침목에 난 구멍 사이로 살포시 잎을 내민 존재들에게는 발길을 잡히기 일쑤였다. 가만히 앉아 카메라 초점을 맞추거나 바람에 간신히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그런 존재들을 피해서 걸음을 내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며칠 전 아침에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녀석들을 밟지 않기 위해 옮기던 다리를 급하게 다른 곳에 딛다 보니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다음 침목을 급히 밟지 않았다면 이슬 내린 숲길에서 낭패가 아니던가. 옷이 젖는 게 문제가 아니다. 부러진 가지에 찔리거나 손목이라도 삐끗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목이 가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침목의 간격을 결정했던 일손이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침목을 오르다 보면 약간 휘어진 것 같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직선의 길이 된다. 아침 시간에 걷다 보면 묘한 성취감마저 느껴져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목표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정진하라’는 선생님의 의도가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어느 날 침목의 숫자를 세어 보니 137개. 대학 시절 학생회관이 있던 광장에서 인문관으로 오르던 137계단의 숫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꺼져가는 문학에의 열정만 남은 지금, 학문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숫자를 이곳에서 만난다. 방과 후나 강의가 비던 시간에 늘 걷던, 내 사색의 도화지였던 길의 시작점이 바로 137계단이었다. 굽이쳐 돌며 세상을 바라보던 게 그때였다면, 지금은 고개 숙인 채 오롯이 내 안으로 침잠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 되었다.

문화관 주변을 돌며 본관 사진이 가장 잘 나올 수 있는 곳을 찾았더니 귀래관 아래에 조성된 작은 연못 주변이었다. 물가와 백운산 중턱에 앉은 건물 그리고 하얀 구름이 만들어 내는 조화가 그만이다. 물가가 있으면 다양한 생물들이 모여들기 마련이지만, 확실히 뽕나무 숲과는 다른 생명체들이 눈에 띈다. 잎을 펼친 연을 비롯해 수중식물들이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자귀나무 한 그루가 마치 현판처럼, 수호신처럼 연못을 지킨다. 한눈에 봐도 손길이 많이 간 흔적이 엿보이는 연못은 주변으로 호위무사처럼 강아지풀이 지천이다. 돌담이 있으나 다시 그 위로 기와를 쌓아 경계를 뚜렷하게 했다. 누군가 혹여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저어하셨는지 직접 기와를 쌓으셨다고 한다. 기와뿐이겠는가. 침목의 간격을 결정했던 일손 역시 선생님의 손길이었고, 밭에 쭈그리고 앉아 후배 문인들을 위해 채소를 가꾸시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그 밭에서 재배한 채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문인들 식탁 위에 오르고 있으니 아직도 선생님의 유지가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까지 머무시던 건물 맞은편으로 소나무 숲 가운데 무덤 두 기가 눈에 띈다. 무덤의 주인은 시인 김지하,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김영주. 사위와 딸의 무덤이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고향인 통영 땅에 묻혔으니, 이곳에서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후배 문인에게는 못내 아쉬움이 크다.

본관 앞 비비추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아침. 오늘도 뽕나무 숲길 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귀를 가득 채우는 새들의 지저귐. 언제부터 나왔는지 이미 바쁜 개미들. 발에 밟혀 납작해진 뽕나무 열매, 조용히 바닥을 지키는 푸른 이끼들. 먹이활동에 나선 이름 모를 벌레들. 선생님의 자취가 배지 않은 곳이 없으며, 선생님의 흔적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이곳.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을 사랑하게 될지 지금은 짐작도 하지 못하겠다. (토지문화관에서 창작한 작품임)
월간암(癌) 202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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