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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바다 위에 쓴 詩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4년 05월 09일 17:58분413 읽음
글: 김철우(수필가)

군산 외항의 연안여객터미널은 예상보다 협소했다. 정오에 출발하던 선유도(仙遊島) 행 배가 20분이나 앞당겨지는 바람에 시간에 맞춰 온 사람들은 거의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대학생들과, 부부 동반 여행에 나선 스무 명 남짓의 중년 남녀. 어린 남매를 동반한 가족. 외국인 가족 한 팀. 그리고 선유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대합실은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혼자 섬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했는지 매표소 직원은 혼자 가는지, 섬에서 잘 것인지를 두 번이나 묻고서야 표를 내줬다. 이제껏 짝사랑하듯이 선유도를 그려왔던 기억이 떠오르자, 가슴이 설렜다. 이제 선유도로 간다.

뭍에 사는 사람치고 섬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구나 도심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섬이나 산 위에 올라 바라보는 섬이나, 그것이 번듯한 도로까지 난 유인도 건 혹은 사람의 발길이 머물지 않는 무인도 건 섬은 고립(孤立)이며 또한 독립(獨立)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에 스스로를 투영하여 자유에의 갈망으로서 섬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군산항을 떠난 배가 미끄러지듯이 나아가고 있다. 먹이를 받아먹으려는 갈매기 한 마리가 배 주위를 맴돌았으나 이내 돌아가고 말았다. 마땅히 앉을 곳도, 햇빛을 피할 곳도 없는 갑판 위에 기대서서 비응도의 풍력발전기가 보일 때까지 나는 그 생각뿐이었다.

비응도를 지나며 15년간 공사 끝에 완공한 세계 최장 새만금방조제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33 Km 나 되는 방조제, 그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대역사의 현장을 보며 위대한 기술과 노력에의 찬탄보다는 사라진 갯벌이 더 아쉬운 건 나만의 느낌일까. 더구나 고군산군도 중 가장 규모가 큰 신시도가 방조제와 연결되어 육지화되었고, 곧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의 섬들도 육지화되어 국제 해양관광단지가 된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과 적당히 멀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늘 그리워하며 힘들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래야 아름다움이 더 소중해지지 않을까.

출항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멀리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섬이 앞을 막아선다. 선유도에 오기 위해 오랫동안 지도를 봐온 탓에 횡경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왼쪽으로는 새만금방조제와 맞닿은 신시도를 지나며 배는 현저히 속도를 늦추고 있다. 흐린 날이어서 섬들은 마치 안개 띠를 두른 듯 바다와 맞닿은 부분은 희미하기조차 했지만, 바위산인 망주봉(望主峰)은 멀리서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선유도에 유배된 한 선비가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붙여진 망주봉. 가파른 두 개의 바위산을 바다 위에서 보는 일은 쉽지 않아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데, 배가 선착장에 다다를 무렵 망주봉을 배경으로 하얀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선유8경(仙遊八景) 중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이다. 모래 위에 내려앉은 기러기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진 평사낙안은 네 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있는 팽나무 한 그루인데 마치 선유도의 수호신 같은 느낌이 든다.

드디어 선유도 선착장에 닿았다. 몇 분 먼저 도착한 유람선의 승객들과 합쳐져 선착장은 시장통이 되어 버렸다. 예약한 민박집의 차량을 찾는 사람들, 물건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승합차를 타는 사람들, 짧은 시간에 해산물을 맛보려는 사람들까지 마치 새벽의 인력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망주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민박집은 다행히 깨끗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도와 카메라만 들고 길을 나섰다. 첫 번째 목적지는 네 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장자도. 선유도해수욕장을 지나 장자대교 위에서 망주봉을 바라보니 고군산군도 최고의 경치라는 찬사가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닌 듯했다. 멀리 망주봉이 보이고 그 앞으로 은빛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진 선유도해수욕장. 그리고 한가하게 떠 있는 몇 척의 배들. 뒤를 돌아보면 가파른 선유봉 옆으로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과거 조기잡이를 위해 수백 척의 배들이 집어등을 켜고 바다를 밝히던 장자어화(壯子漁火)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고, 선유도 주변으로 방축도와 말도 등 크고 작은 유. 무인도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한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무산십이봉(舞山十二峯)이라더니 선유도는 마치 꽃봉오리를 연상시킨다. 바다가 늘 잔잔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다리 위는 한기를 느낄 만큼 바람이 불었지만, 장자대교 위에서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장자도와 대장도를 돌아 나와 무녀도로 향했다. 장구 모양의 섬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붙어 있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 하여 지어졌다는 무녀도에 들어서자, 염주나무로도 불리는 모감주나무 군락지와 마주친다. 주로 바닷가에 서식한다고 하더니 망주봉이 비스듬히 보이는 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언젠가 안면도에서 군락을 본 적이 있었지만, 여기서 희귀한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락지 바로 옆에 ‘초분(草墳)’이란 제목을 단 표지판이 눈길을 끌었다. 남해와 서해의 섬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던 것으로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이엉 등으로 덮어 두었다가 몇 년 뒤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장례 풍습인데 상주가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갑자기 상을 당하거나 죽은 즉시 묻는 게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될 때, 액일(厄日)을 피해 길일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 행해지던 풍습이다. 위생상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던 이 장례 풍습이 아직도 이곳 무녀도에는 남아 있다.

조금 더 걷자,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보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잘 정리되어 있었고 바닷물을 퍼내는 데 사용하는 수차가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선유도로 돌아오며 다시 선유대교를 건넌다. 다리 위에서 망주봉을 바다보다, 서쪽 바다로 고개를 돌려보니 선유8경의 하나인 삼도귀범(三島歸帆)이 코발트 빛 바다 위에 떠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선을 이룬 돛배가 깃발을 휘날리며 돌아온다는 의미로 이곳 사람들의 소박한 만선에의 기대가 묻어난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선유도해수욕장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유리알처럼 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있어 명사십리(明沙十里)라 불리는 선유도해수욕장에서의 낙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선유도해수욕장은 파도가 만든 사구(砂丘)가 큰 섬과 작은 섬을 이어 놓은 신비스러운 천연사구 해수욕장으로 맞은편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백사장의 한쪽에 앉았다. 갯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관광객들은 다 어디 갔는지 넓은 백사장을 둘러봐도 낙조를 보러 온 관광객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뿐이다.

대장도의 산 허리께로 해넘이가 시작되고 있다. 노을이 그저 붉다고 표현하면 그건 잘못된 말이다. 노을은 시시각각 다른 빛을 낸다. 온 하늘을 붉게, 푸르게, 노랗게 그리고 보랏빛으로 바꾸고 있다. 하늘뿐이 아니다. 대장도를 휘감은 노을의 꼬리는 바다를 지나 물 빠진 백사장까지 올라와 스멀거리고 있다. 선유8경에 선유낙조(仙遊落照)를 제1경으로 넣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괜스레 해넘이의 이름을 짓고 싶어졌다. ‘대장도의 눈물’.

군산에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5년 전 선유도로 들어와 식당을 하고 있다는 주인아주머니는 콩나물만 뺀 모든 나물을 직접 기른 것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허기 때문인지, 정말 맛있는 반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물과 해물된장찌개를 곁들인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먼저와 늦은 저녁을 먹던 인부 셋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하며 군산에서 온 사람들이 섬에 산다고 무시할 때가 제일 서럽다며 하소연하는 주인아주머니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커피를 타 주겠다는 호의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망주봉 앞의 물이 빠진 갯벌엔 배 한 척만 외롭게 서 있다. 물 빠진 갯벌에 홀로 남겨진 배 한 척. 순간 군산항에서 배를 따라오던 갈매기 한 마리가 떠올랐다. 세상은 이처럼 혼자 가야 하는 것을. 나는 너무 많은 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물이 들 때까지 꼼짝없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배 한 척이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새벽 5시에 잠이 깼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탓에 늦잠을 잘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 어스름에 밖을 나서니 고군산군도의 새들이 나보다 먼저 깨었는지 검은머리멧새나 바다직박구리들의 지저귐이 시끄러울 정도였다.
월간암(癌) 202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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