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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에서 봄을 만나다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4년 03월 27일 16:25분1,582 읽음
글: 김 철 우(수필가)

완도에서 청산도로 향하는 청산고속카훼리 2호의 난간에 기대서서 저는 가쁜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홉 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쩌면 마흔 몇 해를 달려 온 제 삶의 기둥 한 귀퉁이에 이 섬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목 새겨진 그 이름은 세월이 흐르며 스러지기는커녕 더욱 또렷해졌나 봅니다. 때로 저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스스로 한쪽 어깨를 기댈 때 마다 ‘청산에 살리라’ 라는 가곡을 흥얼거리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청산도(靑山島)는 제게 그런 섬입니다. 선유도, 보길도 등과 함께 저를 바다와 섬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 서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도, 나태해지는 마음을 향해 어깨를 쳐대는 죽비 같은 섬입니다. 봄의 이정표라 불렀던,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고향’의 이름으로 불렀던 청산도. 이제 그 섬에 들며 설레는 마음을 이해하실는지요.

멀리 ‘靑山島’라고 쓰인 입석 표지판이 보이자 배는 온 섬이 다 들릴 정도로 힘찬 기적(汽笛)을 내뿜습니다. 배에 싣고 온 차에 시동을 걸며 다시 한번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도청항을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서자 바로 ‘당리’입니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유채꽃밭 너머로 도락리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작은 만(灣)을 이룬 바다에는 전복양식장의 부표들이 줄지어 있고, 바다를 마주한 해안에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듯한 나무들이 일렬로 해풍과 맞서고 있습니다. 밭 사이의 좁은 길은 구불구불 굽어 언덕을 넘는데, 도무지 바쁠 것 같지 않은 표정을 한 촌로(村老)가 지게를 지고 길을 걷습니다.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인 다랭이논은 한가로이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뒤를 돌아 카메라 앵글을 맞추니 바람 속에 흔들리는 청보리가 바이올린 연주에 맞춘 듯 춤을 춥니다. 그 너머로 ‘읍리’ 의 붉은색과 하늘색 지붕들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바람을 피하고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하늘을 닮은 색과 주위의 온통 푸른색에 둘러싸인 붉은색은 더욱 강렬하게 대비되어 조화를 이룹니다. 어느 곳 하나도 눈길을 떼지 못할 만큼 눈이 부신 봄의 청산도.

다시 언덕길을 따라 길을 걷자 영화 ‘서편제’의 촬영 장소였던 초가와 한국적 미학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5분 10초의 롱테이크를 촬영한 돌담길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노란 유채꽃밭과 파란 청보리밭 사이의 굽은 돌담길 앞에서 탄성보다 한숨이 앞섭니다. 걷기 편한 포장길도 아니고 곧게 정리된 담장도 아닙니다. 그저 길이 생긴 모습대로, 주변에 흔하디흔한 돌을 척척 쌓아 삐뚤빼뚤한 돌담길은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투박한 남도의 정취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소리를 찾아 쓰디쓴 인생길을 걷는 유봉(김명곤 분), 송화(오정해 분), 동호(김규철 분) 세 사람. 그들이 세마치장단에 실어 부르는 진도 아리랑의 여음(餘音)이 그 돌담길 사이를 비집고 나옵니다.

(전략)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뒤어라 노를 저어라.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났네 에으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세 사람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카메라 앵글은 잠시 돌담길에 고정되어 있는 영화에서처럼 긴 여음이 지난 후에도 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서 있습니다. 굴곡 많은 인생처럼 굽어있는 이 돌담길을 걷는 것이 어쩌면 그 굴곡을 견뎌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관조(觀照)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청산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천천히 걷습니다.

느릿느릿 돌담길을 걸어 유채꽃밭 사이에 섭니다. 꽃밭이 끝나는 곳에 서 있는 ‘봄의 왈츠’ 촬영장 건물이 제법 봄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비바람에는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지난밤의 비바람을 잘 견뎌준 유채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몇 해 전 큰 수술을 하고 퇴원하던 날, 전날 밤의 폭우를 견뎌내고 하얀 꽃망울을 터뜨린 목련을 보고 가슴 밑바닥에서 치받아 오르는 뜨거운 것을 느꼈던 것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유채꽃밭 속에서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합니다. 찬란하다면 찬란하고 황홀하다면 황홀한 봄의 한가운데에 서서 오히려 봄의 처연함을 깨닫습니다.

읍리의 애향탑 건너편 길 위에 청룡공원이 있습니다. 아름드리나무와 소원을 빌며 하나씩 쌓아 올렸을 돌탑도 있고, 낡은 판자로 지붕을 얹은 의자가 있는 풍경입니다. 사방은 온통 다랭이논이고 반쯤 붉은색이 바랜 농업용 트랙터 하나가 햇볕 아래서 지친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긴 기다림을 앞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왠지 시간의 허리를 조일 수 있을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선사시대의 흔적을 보는 일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편이라 이곳의 지석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3 기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이곳 남방식 지석묘에서 마제석검이 출토된 것을 보면 평화롭기만 한 이 섬이 한때는 전쟁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석묘 바로 옆에 서 있는, 보살상이 새겨진 하마비(下馬碑)가 더 눈길을 당깁니다. 조선시대에 종묘나 문묘 앞에 세워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표시를 했던 상징물로서, 이곳에까지 유교의 지엄함의 미쳤었던 것입니다. 이 하마비는 근처의 논에 있던 것을 관리하기 편하도록 지석묘군 옆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선사시대와 조선시대, 무덤과 유교의 지엄함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함께 세월의 풍상을 견디는 것입니다. 쉬운 이별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돌 때문에 뭉클해지는 가슴을 느낍니다.

읍리를 지나 고개를 넘자, 왼쪽으로 펼쳐진 산비탈의 다랭이논이 장관입니다. 논 주변으로 무리 지어 웅크리고 있는 가옥들은 간혹 초가와 잿빛 슬래브 지붕들도 보이지만 당리나 읍리에서 보았던 것처럼 예의 그 붉은색과 하늘색 지붕들입니다. 그런데 도시의 지붕 색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여지없이 청산도의 하늘을 닮은 색은 그렇다고 해도 붉은색은 어디선가 정확히 본 색인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입니다. 지나치게 붉지도, 지나치게 엷지도 않은 색감이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산비탈 마을에서 부흥리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마침 회관에서 나오는 노인에게 구들장논의 위치를 물었더니, 대답 대신 ‘어서 왔소?’ 하며 흰 이까지 드러내며 웃는 품이 외지인에 대한 경계보다는 반가움이 앞서나 봅니다. 구들장논은 돌이 많아 물이 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구들로 쓰이는 평평한 돌을 바닥에 깔고 흙을 덮어 논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장마철에 논의 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논바닥 밑으로 수로를 만들어, 필요 이상으로 물이 유입될 때는 신속하게 배출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청산도가 아름다운 것은 치열한 삶의 흔적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에만 취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몰 시각에 맞춰 청산도로 돌아오는 길은 예닐곱 가지의 밑반찬에 고등어조림, 장어볶음, 아귀탕 그리고 양념게장까지 곁들인 완도항에서의 식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단체 손님으로 북적이는 점심시간에 홀로 식당에 들어온 뜨내기손님이 뭐 그리 반가웠겠습니까만 투박한 그릇에 말없이 턱하고 가져다 놓는 반찬들이 얼마나 넉넉하고 맛있던지. 외지의 단체 관광객을 상대하는 것을 봐서는 이곳에선 그리 후한 인심도 아닐 텐데 도시의 식단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오천 원을 내미는 손이 못내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바다와 섬에서 보는 해돋이가 경이롭다면 해넘이는 황홀합니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여행 중에 빼놓지 못할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청산항의 등대 넘어 지는 해는 노랗고 붉은 노을을 옆으로 길게 퍼트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는 붉은빛을 띠며 힘을 잃어갑니다. 노란색 노을은 엷어지고 붉은 노을만 남아 해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위로 솟아오르다가 흩어집니다. 바로 그 순간, 해는 지고 붉은 노을만 남아 어둠이 본격적으로 내려앉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이 해넘이를 하는 사람들이 한숨을 가장 많이 토해내는 순간입니다. 노을은 그냥 먼지일 뿐일까요? 같은 해넘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한숨은 저 노을의 색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불던 바람은 기세가 꺾이고, 이른 아침의 화랑포 가는 길은 온통 새소리로 가득합니다. 어제 봤던 당리의 유채꽃밭과 청보리밭을 지나며 차창을 모두 열었더니 차 안을 휘돌아 나온 새소리와 파도 소리가 다시 유채꽃과 청보리를 흔듭니다. 바다와 숲을 접한 길을 지나 화랑포 전망대에 서니 고산(孤山)의 얼이 깃든 보길도는 보이지 않고 대모도와 소안도만 눈길을 막습니다. 어제 들렀던 범바위에서처럼,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자 마음속 어디서 툭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물고기를 가득 잡아 올린 그물의 밑동이 풀리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무엇이 한순간에 쏟아져 나가나 봅니다. 기억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한순간에 빠져나가고, 혼자 길 위에 서는 사람들에게 그림자처럼 숙명인 외로움만 남아 동행이 됩니다.
월간암(癌)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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