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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 탈리도마이드의 아이들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10월 04일 19:48분884,667 읽음

임산부의 입덧과 불면증을 사라지게

1957년 독일의 그루넨탈 제약회사에서 수면제를 개발했다.

동물들에게 실험한 결과 부작용이 낮은 수면제로 판명되고 사람에게도 부작용이 없다하여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었다.

특히, 임산부들에게 입덧과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광고가 주효해서 판매고가 증가했다. 임신에서 겪는 입덧만큼 고역은 없다. 게다가, 임신초기는 아기에게 해가 될까 싶어 감기약도 먹지 못하고, 음식도 함부로 먹지 못하는데 입덧도 가라앉고 잠도 편히 잘 수 있고, 부작용도 전혀 없이 값까지 싸니 얼마나 많이 팔렸겠는가?

독일뿐 아니라 최소 46개국에서 이런저런 이름으로 바뀌어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놀라운 성분은 바로 바로 탈리도마이드! 이후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약이다.

신약이 히트를 치면 그 회사는 돈방석에 앉게 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마어마한 개발비에다가 족히 십년은 되는 세월이 걸리는데 설사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도 신물질이 신약으로 연결될 확률은 만분의 일 정도이니까. 그렇다고 신약이 끝은 아니다. 신약이 거쳐야 하는 길은 험난하다. 셀 수 없는 동물실험을 거치고 1차, 2차, 3차에 걸친 인체임상실험까지 거쳐야 한다. 여기서 탈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물실험에서는 아무런 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사람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약효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거나 하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유명한 비아그라도 원래 발기부전치료제로 개발되지 않았다. 애초에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 중이었는데 1차 임상실험에서 뜻밖에도 성기가 발기되는 부작용(?)이 생겨 버린 것이다. 협심증 치료제로는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을 다른 쪽 약으로 개발하자고 하여 오늘날 비아그라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탈리도마이드는 시판 전 아무 이상이 없었을까?

임상실험에서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현기증이 나타났고, 후에 밝혀졌지만 말초신경염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은폐되고 상품화되었다. 또, 의사처방약으로 분류되는 것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결국 처방전 없이 누구나 돈만 내면 약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데도 성공하여 기업에는 이윤을, 산모와 아이에게는 재앙을 확대하는 데 일조하였다.

 

다음 대에서야 기형으로 나타나고

일 년 후, 가장 먼저 약을 판매한 자국인 독일에서 기형아가 출산되었다. 특이하게도 손과 발이 짧고 모양새가 물개와 비슷했다. 당시, 아무도 아기의 기형이 탈리도마이드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드물지만 그런 기형이 생기곤 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폭발적으로 전 세계에서 손과 발이 짧거나,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라거나, 아예 사지가 없이 몸통만 있는 기형아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서독에서 무려 5천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나고, 영국에서도 500명 이상이 기형아로 태어났다. 일본에서도 천명이 태어났다. 유럽에서만 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나는 대참사를 빚었다.

세계 각국에서 탈리도마이드가 판매된 나라마다 기형아가 속출했고, 결국 1961년에 유전학 교수가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라고 학회에 보고함으로써 탈리도마이드와 기형의 연관성이 밝혀지기에 이른다.

여기에 미국은 단 17명의 기형만 태어났는데, 미국 내 판매를 신청한 판매회사와 FDA간의 부작용에 관한 논쟁으로 시판이 지연되는 바람에 이 거대한 폭풍을 비켜갔다. 이를 담당한 약품심사관이었던 켈시 박사는 사람에게는 수면제로 작용하는 탈리도마이드가 동물에게선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쉽게 판매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켈시 박사는 이 공으로 후에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수여받기도 했다.

사람의 태아는 수태된 지 42일 이내에 작은 팔다리가 생긴다. 이 시기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하면 100% 가까이 태아에게 기형이 생긴다. 탈리도마이드의 영향으로 태아의 사지에 영양을 공급해주기 위한 핏줄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이 아이들은 격리 수용됐다.

무시무시한 기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탈리도마이드.

46개국 1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출산된 이후에야 탈리도마이드의 판매가 금지됐다. 새로운 의약품의 개발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약품 개발의 단계가 매우 강화되었다. 약물을 개발할 때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 더 까다로운 절차를 적용하도록 한 계기가 된 셈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탈리도마이드는 세계적으로 판매금지 조치를 받고 1962년 사라져버리면서 자취를 감추는가 싶었다. 그러나, 협심증에는 성기의 발기라는 부작용으로 실패했던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이라는 성기능 장애에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듯이 태아의 혈관의 생성 억제 효과라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 암의 신성혈관을 억제하는 항암효과로 신약을 개발하려는 회사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이미 탈리도마이드를 나병으로 인한 합병증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1998년 승인한 바 있으며 2006년 FDA는 다발송 골수종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승인하였다. 탈리도마이드는 이밖에 암, 에이즈, 피부질환 등의 치료에도 제한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처방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20세기 ‘악마의 약물’로 추방된 탈리도마이드가 21세기에 ‘구원의 신약’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월간암(癌)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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