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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시작,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마음가짐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1년 01월 07일 12:11분478 읽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아침형 인간인 부지런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치부하고는 늦게 자고 아침이면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곤 했습니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부지런함보다는 게으름이 더욱 달콤했습니다. 가끔 새벽에 깨기도 하지만 따뜻한 이불을 벗어나기 힘들어 다시 잠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아침잠이 없어졌습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일어나 새벽이면 한 바퀴 동네 산책을 합니다. 올 가을부터 시작한 아침 산책은 이제 중요한 일과가 되었고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가 몰아쳐도 두꺼운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겨울이 시작되니 삼 일은 춥고 사 일은 미세먼지가 끼어 있다는 ‘삼한사미’를 느끼며 걷습니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혼자 걸을 때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책을 하게 됩니다. 아주 추운 날이면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고 아직도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동쪽에 있는 북한산 뒤로는 주황색 여명이 서서히 올라오고 샛별이 형광등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날씨는 춥지만 기분은 상쾌해지고 머릿속은 맑아집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오늘도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하 13도 아주 추운 날 아침, 미세 먼지가 한 점도 없어 맑은 하늘에 샛별이라고 불리는 금성을 바라보며 속도를 높여 걷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주황빛에서 서서히 푸른빛으로 변하고 곧 있으면 샛별은 푸른 빛 속으로 사라질 정도로 어둠이 걷혔습니다. 그 순간 샛별 위로 더 밝은 한줄기 빛이 쏜살같이 떨어졌습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그 빛은 북한산 위로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밝은 빛이었으므로 깜짝 놀랐습니다. 옆에 있던 길동무는 땅을 보고 걷느라 그 짧은 순간을 놓쳤습니다. 별똥별이 떨어진 것입니다. 딸에게 이야기했더니 이제라도 소원을 빌어야 한답니다. 빛이 사라졌는데 지금 소원을 빈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딸은 눈을 반짝이며 쳐다봅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앞으로도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가장 평범한 소원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 않고 아주 특별하고 절실한 소원일 것입니다. 방금 보았던 그 빛을 가져다주며 ‘당신의 소원을 빌어 보세요. 그러면 이루어질 것입니다.’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가능하다면 지금 암과 투병하는 모든 분들과 그 빛을 나누고 싶습니다.

암환자의 마음 상태를 5단계로 구분합니다. 퀴블러 로스의 저서 “인생수업”에서 나옵니다. 여기에 암환자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이렇게 다섯 단계의 심리 변화를 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수용의 단계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판단하고 무언가 잘못되더라도 그것이 장애가 되거나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암환자들은 이 다섯 단계를 순서대로 거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에서 더 나아갈 수 없기도 하고 어느 단계를 원을 그리듯 반복하며 돌기도 하고, 순식간에 마지막 단계에서 첫 단계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변하기 때문에 내일은 우울하거나 타협적일 수 있습니다.

드물지만 처음부터 수용의 단계에서 암과 투병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보통 우리식 표현으로는 ‘내려놓는다’고 말합니다. 포기하거나 체념과는 조금 다른 상태입니다. 수용의 단계에서 투병을 시작하려면 이전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고 종교나 다른 면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가치관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암이라는 병이 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넘어야할 산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산을 넘다가 산위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생존 기간과 무관하게 삶의 질이 매우 높습니다. 당연히 보호자와 가족들의 일상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결속이 더 강해지게 됩니다. 분노나 우울 등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고통만 더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러한 감정을 자신에게서 떼어 내려고 노력합니다.

내 소원은 나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별똥별이 떨어지며 보여주었던 빛은 나의 열망에 시동을 걸고 에너지를 줄 뿐입니다. 그 빛을 보는 순간 내가 가장 원하는 바람을 말한다고 저절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변하고 내가 움직일 때에야 비로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에 기댄다면 점점 더 쇠약해져 가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뿐입니다. 좀 더 강인한 자신을 원할 때에야 비로소 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결심을 용기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한해는 모두 용기를 내어 소원 성취하는 시간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에게 제가 보았던 별똥별의 밝은 빛을 나누어 드립니다.

월간암(癌)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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