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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투병수기간암과 함께한 세월 10년, 이제 희망을 품다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0년 12월 03일 10:37분10,312 읽음
정준희(64세, 간암)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인간 정준희’가 아닌 ‘암환자 정준희’로 살아왔다. 2010년 간암을 시작으로 벌써 강산도 한 번 변해버릴 세월이 흐른 것이다. 생과 사를 오가는 우여곡절이 많고도 많았지만 나름대로의 원칙과 방법으로 투병을 해왔고 건강을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금년 9월에 재발했던 암이 사라지면서 나는 다시 한 번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전하고자 한다.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암을 진단받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 학교를 다닐 때 열심히 공부했고 학교를 졸업하고는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아직 젊었던 시절 사업이 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는 외식사업도 하고 투자사업도 하면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열심히 청춘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건강관리를 했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를 과하게 즐기지는 않았다.
나는 B형 간염 보균자였으므로 삶에서 건강을 좀 더 높은 우선순위에 두면서 생활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하고 싶은 공부를 했으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50대 중반이 되어 다른 일을 알아보던 중 의료관련 기관에 몸담으려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취업을 위해서는 건강검진이 필수였으므로 나는 그저 서류 하나를 만들 요량으로 검사를 받았다.
그때가 2010년 가을이었다. 간암이 발견되었다. B형 간염 보균자로 나름 건강을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5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좀 더 신경을 썼어야 됐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드디어 병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암을 진단 받고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치료해야 될지 고민 했다. 우리 집안에는 의사도 여럿 있었고 건강에 신경 쓰면서 나름대로 의학지식도 있었지만 막상 암에 걸리고 보니 충격과 막막한 심정이 들었다. 암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막막한 심정을 암환자라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어찌 됐든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의료진과 치료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간에 3.6Cm 정도의 혹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담당의는 수술을 통해서 그 혹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는 항암치료와 같은 표준 치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나는 수술을 거부했다. 수술의 위험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로봇 수술이나 복강경술처럼 수술과 관련된 기술이 많이 발전되었지만 내가 처음 진단 받았던 당시만 해도 간암 수술을 한다는 것은 복부 전체를 열어야 되는 매우 위험한 대수술이었다. 몸속에 암이 있지만 그것을 꺼내기 위해서 그러한 대수술을 감당하는 일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해서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수술을 거부하는 것이 당시에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담당의사는 내 의견을 존중해줬고 색전술을 시도했다. 그리고 색전술은 실패하고 말았다. 색전술을 하기 위해서는 신생혈관이 있어야 되는데 나는 발달된 신생 혈관이 없어서 색전술을 시도하다 중도에 접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고주파치료 밖에 없었다.
최초 암을 진단 받고 수술을 거부하고 색전술은 실패했으므로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다행히 고주파치료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 3지창 시술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쉽게 말하면 바늘 3개를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서 몸에 삽입한 후에 암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담당 의료진은 최대한 나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치료를 진행했는데 다행히도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고주파치료가 통했던 것이다. 이 치료를 통해서 간에 자리 잡고 있던 3.6Cm의 종양은 사라졌다.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우선 눈에 보이는 암이 사라졌고 응급적인 상황이 종료되었으므로 다시 현업에 복귀해 사회생활과 투병을 같이 병행했다.
암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여러 방면으로 간암에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집안에 의사가 많았으므로 그동안 병원치료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치료는 병원에서 하지만 관리는 내가 해야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렴풋하게 계획을 세웠다.
당시 간암 환자들이 관리를 위해서 BRM요법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건강 주스와 건강식품 등을 판매하였고 그 제품들을 통해서 암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었다.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암환자가 변변한 수입도 없이 건강보험도 되지 않는 요법에 많은 비용을 들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졌다. 집사람은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지만 가장으로서 집안이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그 요법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 이제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간암은 주기적으로 재발을 했고 한 번 재발하면 간에 작은 암덩어리가 여러 개 생겼다. 그리고 병원에서 색전술과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사라졌고 어느 순간 또 재발하기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은 반복된 재발과 치료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재발을 할 때마다 발견되는 암은 개수도 늘어났고 색전술과 방사선 치료의 한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 초 담당의사는 간이식을 권유했다.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의료인으로서 해야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소식을 접하고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들이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 살리겠다고 자신의 간을 내놓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는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올해 6월이었다. 나는 아버지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암 때문에 집안이 너무 불행한 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책도 들었고 고생하는 식구들을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간이식을 권유 받았을 당시 암은 재발해 있던 차였다. 눈에 보이는 암덩어리만 7개가 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더하면 셀 수 없을 만큼 자잘한 암이 간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아직 체력이 있고 건강 상태가 양호할 때 간이식을 하는 것이 합당하므로 의료진은 나에게 간이식을 권했던 것이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이식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간이식을 하면 공여자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 공여자가 아들일 수 있으며 내가 살자고 아들을 큰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대수술에 대한 부담이 너무나 컸다. 죽어도 나 혼자 죽어야지 아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또 이식 후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반드시 섭취한다는 것이다. 암은 면역력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만약 다시 암이 재발한다면 그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암이 아니라 간경화와 같은 병이었다면 면역억제제를 섭취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는 암환자이다. 면역이 필요한 사람이 면역억제제를 섭취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해 보였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나는 간이식 수술을 거부했다.
이식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서는 재발한 암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당시 개 구충제가 암환자들 사이에서 붐을 이루고 있었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소개된 암환자의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어떤 개그맨이 폐암 투병을 하면서 효과를 보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던 시기였다. 지금에 와서 보면 결과적으로 그분도 실패했다고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암환자 중 많은 사람이 그 방법을 따라서 시도하고 있었다. 나도 방법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개 구충제 요법을 시도했다. 당시 나의 상태는 눈에 보이는 7개의 암 중에서 병원 치료를 통해 3개는 사라졌고 4개가 남아 있었다. 개 구충제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같이 투병하던 환자 중 몇몇 분이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 구충제 3가지를 구입했다. 메벤다졸, 알벤다졸, 이버멕틴이다. 구충제 섭취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아 있던 암덩어리 4개 중에 2개가 사라졌다. 병원치료에 비해서 큰 부작용도 없이 암이 사라지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효과를 본다는 희망이 생겼고 삶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암은 다시 재발했다. 구충제의 효과는 항암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직접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약을 복용하면 잠시 효과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암은 약에 적응하고 다시 재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재발을 원치 않는다. 근본적인 치료를 원하지 이런 식의 임시적인 치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암은 나의 간에서 소멸했다 다시 생겼다 하기를 10년 째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구충제요법을 그만 두었다. 처음 효과를 보면서 좋았던 마음만큼 실망이 자리 잡았고 나는 다시 침울한 마음으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올해 9월이 접어 들면서 간에는 다시 3개의 암이 재발했다. 시간은 다급해졌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기에 무엇이든 시도해야 될 응급 상황이었다.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하면서 암과 관련된 단체, 단톡방, 밴드모임과 같은 SNS에서 많은 암환자들을 알게 되었다. 서로 각자의 방법을 가지고 투병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체험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수개월 전 그곳에서 쏠투비 운모가루에 대해서 어렴풋이 들어 알고는 있었다. 나는 그 약을 섭취하고 좋아졌다는 췌장암 환자를 찾았다. 그에게서 듣게 된 쏠투비 운모가루의 작용은 지금 내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었으므로 잠시 고민을 거듭하다가 티씨바이오라는 회사를 찾았다. 그 곳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며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여러 정보들을 접하게 되었으며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그날부터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섭취를 시작했다. 아침에 1g 그리고 저녁에 0.5g의 양을 섭취하면서 몸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따뜻해지고 가슴에도 무언가 열이 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는 몸속에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하고 뜨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시도했던 방법들은 부작용과 소위 말하는 명현반응들이 심하게 나타났다. 항암제의 부작용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개 구충제도 알 수 없는 부작용에 시달리곤 했는데 쏠투비 운모가루는 몸이 따뜻해지고 기분 좋게 무언가가 내 몸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이게 부작용이라니, 놀란 마음이 들었다. 보통 입맛이 없어지거나 기운이 빠지고 몸무게가 줄어드는 등의 기분 나쁜 작용이 일반 약들의 부작용이었는데 쏠투비 운모가루는 오히려 기분 좋게 만들며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기본적으로 받는 검사를 다 받고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무언가 기분 좋은 상상이 들었다. 오랜 기간 암과 지내다 보니 몸 상태를 바로 직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일 뿐이니 결과지를 받아 봐야 진정으로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쏠투비 운모가루를 정확히 11일 복용 후에 받은 결과였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눈에 보이던 암이 모두 사라졌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완전 관해가 되었다고 말한다. 종양표지자검사도 정상이었고 각종 혈액검사 수치도 모두 정상 범주에 있었다. 불과 11일 만에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담당 주치의는 오랜 동안 나를 진찰하면서 좀처럼 얼굴에 미소를 보이지 않는 분이었는데 검사결과를 보러 간 날 나는 주치의의 환한 미소를 보았다. 그 동안 엄숙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10년 동안의 암 투병은 나에게 삶에 대한 넓은 안목을 주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암환자는 딱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살아서 천수를 누리는 사람, 아니면 먼저 떠나는 사람, 즉 죽거나 살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말이다. 그 중에 먼저 떠난 분들의 특징을 4가지 정도 이야기해 보면 이렇다. 의사의 말만 따르고 자신의 몸을 보살피지 않기, 의심의 많아서 귀를 막기, 의지가 약해서 하다가 말기를 반복하기, 모임 같은 곳에 참여하지 않고 교류 없이 혼자만 투병하기.
암 생존자는 위의 4가지를 모두 반대로 한 사람들이다. 의사 말을 따르되 나름대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들, 큰 돈 들지 않는 것이라면 일단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들, 강한 의지로 투병하는 사람, 암환자들의 모임이 있다면 찾아다니면서 어울리는 사람. 이렇게 지내는 암환자가 대개 생존하고 건강을 유지했다. 나도 그렇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이것은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에 암 생활을 해온 고참으로서 새롭게 투병하는 암환자에게 주는 멘토링이다.
지금 당장은 몸의 암은 사라졌지만 또다시 이전처럼 암이 재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쏠투비 운모가루의 기전을 살펴보면 임시적인 반응이 아닌 근본적으로 몸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물론 나의 소원, 그리고 모든 암환자의 소원이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편안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다 하늘이 부를 때 아무런 불평 없이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생에서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암환자들의 멘토링을 해주는 역할로서 지낼 계획이다. 오랜 시간 암과 투병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투병 중 궁금한 점을 문의하기 위해서 연락이 온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생활하는 사람이다. 가족들은 내가 빨리 회복되어 지긋지긋한 암의 꼬리표를 떼고 잊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암에 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새롭게 이 어려운 길에 들어선 사람은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헤매기 마련이다. 나는 방향을 알려 주는 표지석과 같은 일을 계속할 것이다.
2년 전에 송추로 이사를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기가 좋고 북한산과 가깝기 때문이다. 오직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런 점을 나는 경험으로 모두 알고 있지만 새로 암과 투병하는 사람이나 투병 기간이 길어도 방향을 잘못 잡은 사람에게는 필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내가 그저 나의 건강을 위해서 송추로 이사했다고 전해준다면 그분들도 자신의 건강을 찾아서 무언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암과 함께 지내 본 사람만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동병상련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시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너무 기쁜 일이다. 내년 2월 8일에 MRI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희망을 키워보려 한다.월간암(癌)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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