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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투병수기췌장암 4기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0년 11월 05일 16:56분12,891 읽음
정숙재(66) |췌장암 4기 부천 거주
나는 대전 진잠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외곽에 있는 시골 마을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할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스무 살 무렵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서울로 올라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같이 회사에 다니자며 상경을 권유했다. 그렇게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딸 둘을 낳았다.
내 또래 사람들의 여느 삶과 다르지 않게 평범했고 근래에는 천사처럼 예쁜 손자를 돌보는 무탈한 생활이었다. 올해 초까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 더 행복한 일상을 지냈다. 그러나 그 일상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경험하고 있다. 올해 초 나는 암 환자가 되었다. 그것도 제일 위험하다고 하는 췌장암이었으며 4기 진단을 받았다. 암 진단과 함께 나의 안온한 삶은 멈춰 버린 듯 했다.
나이를 먹으니 치아에 하나 둘 문제가 생겼다. 치과 치료를 계속하다 결국엔 임플란트 시술을 하기로 했다. 이를 뽑고 치과에서 수술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는데 그때 혈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높은 혈압 때문에 임플란트 시술을 계속해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결국 혈압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혈압약을 복용했음에도 혈압은 떨어지지 않아 방문한 동네 내과에서 피검사와 내시경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담당 의사는 당이 높고 위염이 조금 있다는 이야기 외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지만 나는 왠지 위쪽 배가 더부룩하고 식욕도 떨어져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다른 것을 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담당 의사에게 초음파 검사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초음파 검사를 받는 날 큰 딸아이와 같이 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를 보던 담당 의사는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딸아이와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보고는 잠시 복도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복도에 서서 무엇인가 잘못된 것만 같은 두려움에 가슴이 뛰었다. 담당 의사는 딸아이에게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빨리 대학병원을 가야 한다며 지금까지 진료한 기록을 전산에 입력하고 차트를 써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세상이 모든 빛이 사라진 것처럼 검게 변했으며 어지러워져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남편과 식구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손주,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이 떠올랐다.
예약을 잡고 며칠 후, 집에서 가까운 순천향병원으로 향했다. 한창 무더운 시기였는데 우선 종합 검사를 받아야 해 3박 4일간 입원하는 일정으로 병원의 치료과정이 시작되었다. CT, PET-CT, 조직 검사로 온몸 구석구석의 상태를 파악했다. 암은 췌장에서 시작해서 간, 복막, 난소 등 배속의 곳곳에 퍼져 있었고 특히나 원발인 췌장과 간은 이제 곧 그 기능을 잃을 정도로 암이 점령하고 있었다. 동네 내과에서 췌장암일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이 검사를 통해서 확실하게 확인이 된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 아닐 수도 있다는 마음속 희망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고 이제 나는 췌장암, 그것도 4기 환자가 되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항암치료뿐이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담당 의사의 권유에 따라 항암을 시작했다.
8월 10일, 첫 항암 주사를 맞았다. 1주일에 1회씩 3회 투여 후에 1주일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항암치료를 진행했다. 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는 항암 주사라고 담당 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2회의 항암을 끝냈다. 항암 주사를 맞아 본 분들은 다들 알겠지만 암 자체가 주는 고통보다 항암 주사를 맞으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반응 때문에 더 힘들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항암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미용실을 찾아 생전 처음 삭발이라는 것을 했고 손발이 저려 밤에 잠들지 못할 지경이 되었고 입안에는 쓰디쓴 맛이 계속 생겨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도 않고 먹을 수도 없었다. 밥을 먹지 못하자 기운이 없어졌고 몸무게는 줄어들었다. 체력은 순식간에 바닥이 났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러나 항암치료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사는 것이 아니라 이러다 딱 죽겠다 싶었다. 암이 아니라 내가 더 먼저 잘못될 것 같았다.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남편은 예전에 암을 극복한 적이 있다. 췌장암은 아니었지만 정말 어렵게 치료에 성공해서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남편은 병원의 치료와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애쓰고 있었다. 그이가 치료할 당시 아마도 병원 치료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느꼈고 병원에서 시행할 수 없는 요법이나 약품들이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경험에서 나온 지혜였다. 또 나의 절박한 상황에서 맹목적으로 병원에만 의지할 수 없다는 절실함 때문에 남편은 열심히 다른 정보들을 습득하고 있었다.
사실 병원의 입장에서 이러한 환자의 행동이 그리 달갑지는 않겠지만 간절한 환자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병원의 항암제는 남편이 암 투병을 할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통상 나와 같은 진단을 받게 되면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다시 퇴원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경험에서 나온 결정들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물론 병원의 치료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당장에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누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이미 통계가 나타내고 있었다. 병원에만 의지한 채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9월 4일이었다.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남편과 큰딸은 서울에 있는 티씨바이오라는 회사에 다녀왔다. 내가 암을 진단받은 후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것이다. 그곳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논문을 근거로 쏠투비운모가루를 소개해 주었다. 남편도 동영상 사이트와 같은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더는 의심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남편과 나는 쏠투비운모가루를 처방해 주는 한의원에 방문해서 처방을 받고 약을 탔고 당장 그날부터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항암치료와 쏠투비운모가루 섭취를 병행하면서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항암치료는 2 사이클이 끝났으며 다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췌장에 있던 암은 작아지고 얇아졌으며 간에 자리 잡았던 암은 반으로 크기가 줄었다. 더 놀라운 것은 췌장과 간 외에 다른 장기에 퍼져 있던 암이 사라진 것이다. 담당 의사도 놀랍다는 반응이었고 항암치료가 성공적이라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암이 없어질 때까지 항암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이었지만 항암제 덕에 암의 크기가 정말 줄어들었다는 확신은 없었다. 내심으로 운모가루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의원에서 처방을 받아 섭취를 시작하고 3일 정도는 설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며칠 더 지나서는 뱃속에서 꾸르륵 하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입맛이 돌아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항암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몸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담당 의사에게는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분들의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나의 선택에 대해서 핀잔을 들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운모가루는 예전부터 한약재로 사용되었고 지금 내가 복용하고 있는 것은 식약처에서 한약재로 허가가 났을 뿐만 아니라 GMP 인증을 받아 인체에 무해하고 아무런 부작용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인증받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편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으며 더는 고통스러운 항암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현재 항암을 중단하고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날이 갈수록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걸 느낀다. 기운이 생기고 몸무게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편안하게 잠을 자고 아침에는 개운하게 잠에서 깬다. 간단한 운동을 하고 여유롭게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항암제를 맞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는 고통 속에 시간이 멈춘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아지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긴 지금은 일상 속 시간이 다시 평범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평범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암 환자로서 지낸 시간은 3개월이지만 암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다른 증상도 없으며 항암제를 맞을 때를 빼고는 아직 별다른 통증이나 불편함은 없다. 남편은 앞으로 지금처럼 지낼 수 있다고 확신에 차 있고 나도 그이의 판단을 믿고 편안해지는 몸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다. 항암제를 맞으면서 시작된 손발 저림은 아직 남아 약간은 불편하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암의 크기가 반 이상 줄었다는 것은 내가 살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가정주부로 아내로 엄마로 남편, 딸들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게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까지 생겼다. 하루빨리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이전의 시간을 다시 누리는 게 나의 지금 소망이며 호전되었다는 결과를 받고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내가 그리는 미래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운이 좋은 것은 쏠투비운모가루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 운이 나에게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이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고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예전처럼 반복되는 지루하고 평범해 더없이 행복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
월간암(癌)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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