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병수기
암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선물
장지혁 기자 입력 2016년 08월 17일 17:56분12,658 읽음
권두금 | 56세 난소암 3기

2007년 어느 여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랫배에서 묵직하게 통증이 느껴져 만져보니 작은 멍울이 잡히는 것이었다. 뭔가 싶어 동네 산부인과를 방문하니 의사선생님이 간단하게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고 진단하여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며 간단한 수술이니 하루 이틀 사이에 완치가 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했었다.

그즈음 나는 감기를 앓고 있었다.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피곤이 쌓여서 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는 한약방에서 보약을 달여서 먹었다. 보약 때문인지 피로는 조금씩 풀리고 몸 상태도 나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아랫배에 뭉뚝한 혹이 잡혀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나름 고민을 한다고 병원을 옮겨서 검사를 했지만 같은 결과였기 때문에 복강경으로 난소에 혹을 제거하는 비교적 간단하게 여겨지는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나고 산부인과에서 조직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난소암 3기로 판정되었다. 그때 내 나이 마흔 일곱이었다.

마음속에서 원망이 일었다. 평생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는데 내가 암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눈앞이 형광등이 꺼진 것처럼 깜깜해졌고 깊고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너무 화가 치밀어서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지옥과 같은 마음으로 병원에 있는데 같은 병동에 30대의 젊은 아가씨가 같은 병으로 입원하였다. 그 젊은 아가씨를 보면서 문득 마음에 위안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결혼도 했고, 세상을 더 살았고, 나를 위해 애태우는 남편도 곁에 있지 않는가! 그래도 저 젊은 사람보다는 내가 더 나은 것 같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동안 원망과 분노, 절망 등 슬프게 만들었던 감정들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마음이 변하니 병원의 치료가 두려웠지만 새삼스럽게 용기가 솟아났다. 다시 수술이 진행되었다. 이 수술을 하게 되면 몸속에 있던 여성성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나이에 아이를 더 낳을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약간의 위안을 삼았다. 아주대 병원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내가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공포와 혼란이 엄습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멈춰서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게 첫 번째 수술은 그렇게 끝이 났다. 2007년 8월 달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까지 항암치료를 6회 받았고 병원의 치료가 모두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러나 암투병 9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재발과 전이로 모두 세 차례의 수술을 더 해야 했고 항암을 받아야 했다.

처음 암수술과 항암치료가 끝나고는 살아야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암이라는 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정보가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암에 좋은 음식이나 식품, 또 생활 방법 등을 찾아서 실천했다. 작은 가게를 운영했었지만 몸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정리해야 했다. 그동안 몸을 아끼고 돌봐주고 사랑했어야 하는데 암에 걸리고 나서야 몸을 아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을 배우려고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요가, 댄스 등 운동 프로그램들부터 하나씩 시작했다. 그리고 집 주변의 광교산을 매일 강아지와 함께 한 두 시간씩 산책을 했다. 이 습관은 처음 암에 걸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지키고 있다.

그리고 건강에 좋은 식품을 하나 정도 선택해서 먹기 시작했다. 남편이 암에 좋은 것이 뭐가 있나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차가버섯이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더구나 믿음이 중요한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제품을 선택하기 어려웠다. 차가버섯을 판매하는 여러 곳 중에서 고려인삼공사에서 나온 제품을 선택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 투병이 길어지면서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차가버섯을 끊었을 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암이 전이와 재발을 하는 바람에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들었다. 두 번 정도 그런 경험을 한 후에는 조금씩이라도 차가버섯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건강해졌고 하루하루가 너무도 즐겁고 감사했다. 그러나 2010년 4월, 암이 전이되었다. 운동하는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가 뜨끔한 느낌이 들어서 담당 의사를 찾게 되었다. CT 검사를 하고 보니 다시 정밀하게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어서 PET 검사를 다시 진행했다. 불길한 느낌 속에서 검사를 마친 후 간과 횡격막 사이에 전이가 되었는데 크기가 약 1Cm 정도 된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는 수술을 한 후에 항암을 6회 진행하자고 말했다. 이제 두 번째 수술대 위에 눕게 되었다. 나는 수술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처음과 달리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두려움이 없었다. 처음 누웠을 때는 이제 내가 죽는구나 생각했지만 두 번째 다시 오니 저번에도 잘했는데 뭐 별일 있겠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세 번째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가 내 발로 수술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게 되었는데, 수술을 할수록 마음은 더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두 번째 수술이 끝나고 항암이 시작되었다. 총 6회 중에 3회차 주사를 맞을 때 복막으로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항암약을 다른 약으로 바꾸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다시 6회 항암이 시작되었다. 다행이 복막에 전이된 암도 누그러지고 몸에 보이는 암세포들도 조금씩 사라졌다. 두 번째 수술과 항암을 마치고 나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암환자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멀쩡한 사람이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체력이 금세 소진되어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예전 같으면 집이 조금만 어질러져 있어도 그 꼴을 못보고 당장 치우곤 했는데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은 그냥 허허 웃으면서 내일 자고 일어나서 하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두게 된다. 또 암에 걸리기 전에는 모든 것에 욕심이 많았다. 돈 욕심, 일 욕심, 사람 욕심 등 욕심꾸러기였고, 그래서 화도 많이 내곤 했다. 화가 안 풀리면 집에 와서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올 뿐이다.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욕심 부리고 화내고 그랬을까 싶다. 지금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뜰 때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하고, 감동스러울 따름이다. 이렇게 숨쉬고, 움직이고, 살아 있는 나의 존재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저 감사한 마음밖에 없다.

작년 이맘때쯤 메르스가 돌았다. 예약은 해두었지만 메르스 때문에 겁이 나서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래서 예약한 날보다 한 달 정도 뒤에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 어쩐지 마음 한쪽이 불편하였는데 역시나 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2010년에는 암이 전이되었지만 이번에는 재발된 것이다. 난소와 자궁을 절제하였는데 그 자리에 재발이 되어 뼈까지 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두 번째, 그리고 이제 세 번째의 암이었다. 역시 의사 선생님은 수술과 항암을 진행하자고 한다. 다행히 세 번째의 수술과 항암도 모두 무사히 끝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항암약을 사용했는지 머리털이 안 빠지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단박에 머리털부터 빠지는데 이번 항암제는 머리털이 빠지지 않았다. 대신 목욕탕에 갈 때마다 창피함을 참아야 했다. 때수건으로 손과 발을 미니 때가 나오는데 남이 보면 창피할 정도로 때가 쏟아지는 것이다. 밀어도 끝이 없이 쏟아져서 목욕탕 한쪽 구석에서 때를 밀어야 될 정도였다. 다행히 석 달 정도 지나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치 내 피부가 모두 때가 아닌가 할 정도였다. 아마도 독한 항암약이 몸에서 빠져 나가려고 때를 그렇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다시 건강해졌다. 여러 번의 수술과 항암 때문에 체력은 많이 떨어졌고, 몸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지만 비교적 건강하다. 최근 검사에서 암수치는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9년째 나는 암과 지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더 편해지고 삶은 언제나 행복하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돌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처음에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많은 상심이 되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여야만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내가 마음을 열 준비만 하면, 손을 내밀기만 하면 생각지도 못하게 기꺼이 손을 잡아주었다. 또 욕심을 버리고 나니 그저 숨 쉬는 자체가 행복할 뿐이다. 남편이 털어놓기를 암 진단받기 전에는 어떤 때는 내가 무서워서 집에도 못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남편은 밖보다 집이 더 편하고 좋다고 말하는걸 보면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세상살이가 이리도 편한 것을 암과 몇 년 지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루하루 웃으면서 즐겁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지낸다.

월간암(癌)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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