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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친구를 떠올려 주는 당근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13년 08월 30일 19:19분518,995 읽음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항암치료에 힘이 되는 식재료이야기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뿌리채소로 비타민 A와 C가 많고 맛이 달며, 다양한 요리의 부재료로 많이 쓰이는 당근은 카로틴 함유량이 많아 피부를 아름답게 유지하거나 노화방지, 암의 발생이나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카로틴은 인체 내에서 생성되지 않으므로 외부의 녹황색 또는, 적황색(호박) 채소를 통해 섭취해야 하는데 대표적 녹황색 채소인 당근이 제격인 셈이다.

이처럼 건강한 식재료임과 더불어 조림, 스튜, 수프, 샐러드, 주스나 볶음, 튀김에도 두루 사용하는 당근이 나에게는 어릴 적 토끼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귀한 도구였으니 그 고마움은 한층 더 하다.

시골집들은 보통 소나 돼지, 하다못해 닭이나 개라도 키우는 집이 대부분인데 손이 많이 가는 동물 키우기가 싫으셨던 엄마와 겁이 많았던 나로 인해 우리 집에서 동물과 함께 한 역사는 매우 짧다. 작은아버지 댁에서 분양받아 1년여를 함께하며 우리의 애정을 한껏 받았던 강아지 "진구"와 일주일이 채 안 되는 기간이지만 도도하게 마당을 다니면서 뭔가를 쪼아대던 무명의 닭 한 마리, 그리고 흰털의 빨간 눈을 한 토끼 두 마리가 그 전부이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생을 데리고 읍내 장에 가셨던 아빠가 토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생 때문에 두 마리를 기어이 집으로 데려오신 것이다. 언니와 나, 남동생 셋이서 모든 관리를 책임진다는 조건하에 말이다. 사실 나는 그 대상에서 빠지고 싶었지만 우리 삼 남매의 돈독한 우의를 위해 매사 연대책임을 묻는 교육방식을 고수하시던 아빠는 이를 허용하지 않으셨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화책이나 TV 만화에서는 예쁘기만 한 토끼가 실제로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냄새도 심하고 지저분했으며 빨간 눈이 무섭게만 보여 마당 한편에 마련된 토끼우리 근처로는 잘 가지 않던 나였다.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하고 돌봐야 할 일들은 널렸는데 이래 빼고 저리 빼는 내가 미울 법도 하건만 언니와 동생의 불평 없이 그 일들을 다 해내는 모양새가 의아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토끼가 가장 좋아하는 당근을 너도 좋아하니 둘이 친해질 수 있을 거라며 당근을 쥐어주는 엄마의 부추김에 은근슬쩍 우리로 다가서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당근을 싫어하는 것과 달리 나는 껍질만 벗겨 바로 베어 무는 당근의 아삭함을 참 좋아했는데 색깔도 예쁜 것이 특유의 향도 좋게만 느껴져서 간식거리로 자주 제공받곤 하던 것이었다.

두려움인지 뭔지 모를 두근거림으로 우리 앞에 섰지만 한동안 그대로 서 있기만 했었다. 철망 안 먹이로 넣어준 배춧잎들과 여기저기 널린 까만 똥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채 말이다. 빨간 눈과 커다란 앞니가 자꾸 무섭게만 보여서 앞으로 내밀지 못한 당근이 내 입으로 들어가고 나를 쳐다보는 토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남은 당근을 내밀었던가 보다.

그렇게 우리의 소통이 시작되었다. 당근을 들고 토끼우리를 찾는 횟수가 잦아지고 더 이상 더럽다거나 무섭게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물론, 친구들을 불러 자랑하기도 하고 엄마나 아빠한테 혼나서 속상할 때도, 상장을 받아 기쁠 때도 내가 늘 찾는 곳이 된 것이다.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시골 초등학교, 그나마 동네엔 같은 성별의 또래 친구도 없어서 대놓고 귀찮아하는 언니 뒤를 쫓아다니던 설움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 있게 해준 토끼 친구들이었다.

커가면서 자주 두 마리가 심하게 싸우고 먹는 양이 부담되기에 이르자 부모님은 서로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하셨고 이미 관심 밖의 일이 된 동생을 빼고 언니와 나는 참 많이도 울었었다. 떼를 쓴다고 번복하실 아빠가 아닌 걸 알기에 체념은 했지만 "진구"에 이어 두 마리 토끼와의 이별은 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가족들이 이름을 붙여줬어도 내게는 그저 첫째 토끼, 둘째 토끼였던 두 친구는 이제 아련한 모습으로 기억될 뿐이지만 우리를 소통하게 했던 모양도 색도 예쁘고 맛있는 당근을 나는 여전히 좋아하고 당근을 통해 옛 친구를 가끔이나마 떠올려보곤 한다.

당근은 전 세계에서 재배, 이용되며 동양종과 서양종으로 크게 나뉘지만 보통 요리에서는 동양종이 이용된다. 당근은 당분이 풍부하고 비타민 A의 효과가 높지만 흡수율은 떨어지는데, 가열하면 상승하고 기름조리를 통해 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보통 뿌리를 이용하는 채소로 알고 있는데 당근의 연한 줄기와 잎은 셀러리와 미나리를 조합한 맛이 나며 생식으로 먹어도 좋고 튀김을 해도 좋다. 줄기를 된장에 찍어 먹거나 상추 등의 쌈과 곁들여 먹기도 한다.

당근스프는 고운 색도 흐뭇하지만 부드럽고 달콤함이 어우러진 맛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간단하게 뚝딱 해내는 당근양파볶음, 별미인 당근전의 맛도 이색적이다. 이용률을 높인 조리법을 통해 준비된 세 가지 메뉴를 만나보자.

당근스프

[재료 및 분량]
- 당근 1개, 양파 ½개, 올리브오일, 물 300ml
- 우유 100ml, 생크림 50ml, 찹쌀물(찹쌀가루 1T, 물 1½T), 소금 약간, 백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당근과 양파는 채 썬 다음 잘게 다진다.
2.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를 볶다가 당근과 소금 약간을 넣어 볶는다.
3. 분량의 물을 붓고 당근이 익을 때까지 끓인 다음 식혀서 믹서에 갈아준다.
4. 갈은 당근과 양파를 팬에 붓고 우유와 생크림을 넣은 후 저으면서 약불에서 끓인다.
5. 찹쌀물로 농도를 맞추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하고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어오른 후 1분 정도 더 끓인다.


당근양파볶음

[재료 및 분량]
- 당근 150g, 양파 ½개
- 올리브오일 2T, 홍고추(마른 홍고추) 1개, 마늘 2쪽, 송송 썬 실파 1T,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당근은 껍질을 벗기고 4cm 길이로 토막 내어 곱게 채 썬다.
2. 양파는 곱게 채 썰고 찬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뺀다.
3. 마른 홍고추는 씨를 털어 가늘게 썰고 마늘은 곱게 채 썬다.
4.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마른 홍고추, 양파를 넣어 볶다가 매콤한 향이 올라오면 당근채를 넣어 윤기가 나도록 볶는다.
5. 당근의 숨이 죽으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실파를 뿌린다.

당근전

[재료 및 분량]
- 당근 2개, 다진 쇠고기 150g, 양파 ½개, 당근 40g, 풋고추 1개, 식용유 2T
- 다진 파 1T, 다진 마늘 ½T, 간장 1T, 소금 1t, 참기름 ½T, 깨소금 ½T,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당근은 껍질을 벗겨 0.5cm 두께의 원형으로 썬 후 가운데에 모양 틀로 구멍을 낸다.
2. 쇠고기와 양파, 당근, 풋고추는 곱게 다진다.
3. 곱게 다진 쇠고기에 양념하고 양파, 당근, 풋고추를 섞어 잘 반죽한다.
4. 구멍 낸 당근에 밀가루를 묻히고 속을 채운 후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지진다.

월간암(癌)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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