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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를 위한 대통령을 기대하며
김진하 기자 입력 2012년 12월 03일 16:44분698,043 읽음
두어 달에 한 번 전화 통화를 하는 암환자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데 3년 전 폐와 뼈로 전이되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호전되어 관리단계에 있는 상황입니다. 남편은 공무원인데 정년퇴임을 일 년 남짓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암과 투병은 외로움과의 싸움임을 실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입니다. 또, 어느 정도는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하고 그런 시간들이 행복감을 느끼게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고립된 외로움은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고립과 고독은 둘다 외로움을 동반하지만 그 차이는 큽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암이 삶에 들어오게 되면 외로운 섬이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암환자가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는 통증은 도망갑니다.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 새 암을 잊게 됩니다. 그러다 혼자 집에 우두커니 있게 되면 암은 큰 존재가 되어 점점 생각을 갉아 먹고 스멀스멀 통증을 일으킵니다. 식구들과 같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암환자가 아니기 때문에 암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직 나만이 외롭고 고독할 뿐입니다. 그래서 암환자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암환자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가끔 전화를 하셔서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몸무게, 자신의 경제적인 여건, 그리고 오랫동안 암과 투병하면서 느낀 암 치료의 부당함 등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친구가 되어줄 뿐입니다. 하루하루 암과 사투를 벌이는데 마음 편하게 답답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론할 수 있는 상대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차트만 보고 무언가 지시하고 결정만 할 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집에 오면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출가를 하였고 남편은 직장에 나가서 저녁이나 되어야 집에 옵니다. 하루 종일 집에 홀로 남아 암이라는 공포와 시름하며 고독한 일상에 지쳐갈 즈음 저에게 전화를 하여 스스로의 고독을 밖으로 내어 놓습니다. 두어 달 정도의 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암환자가 이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암과 투병하는 사람은 60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암환자와 그 가족까지 포함한다면 한 집 건너 한 사람은 암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암 조기진단으로 10년 전에 비해서 암환자의 숫자는 3배 정도 늘어났습니다. 건강보험 덕분에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가끔 통화하는 그분과 같은 처지의 암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해주지는 못합니다.

정치의 계절입니다.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사람들이 모두 복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암환자와 가족을 위한 복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불행한 모습을 외면하려고 하는 사회현상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암이라는 병과 싸우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돌보아야 할 가장 큰 존재가 되었습니다. 건강보험에서 지정한 치료에 대해서 치료비를 할인해주는 식의 복지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우리가 내는 건강보험료가 외국계 제약회사에 한 해에 몇 조씩 지불되고 있으며 항암치료로 암 치료는 종결되지 않습니다.

몸에 암이 생겼다는 것은 지금 하는 일을 잠시 쉬고 몸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암환자들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많아져야 합니다. 또 암 진단은 곧 실직을 의미합니다. 수입 없이 병원비와 기타 제반 치료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데 그나마 보험에서 지원되거나 저축이 많은 사람은 경제적인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몇 년에 걸친 암 치료로 무너진 가정경제를 다시 돌이키기 힘듭니다. 투병에 전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갖춰줘야 합니다.

암환자들이 스스로 모여서 만들어진 자발적 단체들은 스스로의 외로움을 나누고자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합니다. 그런 일들은 사실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해야 될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투병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사회적인 관계가 중요합니다. 의료, 특히 암과 관련된 의료가 사업화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의료 환경을 민영화한다는 시도는 암환자에게 더 큰 좌절을 주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암과 투병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고 해도 가정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아닐 수 있도록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5년 동안 누군가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지요. 또 5년 동안 많은 분들이 암과 씨름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암환자의 일상이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월간암(癌)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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