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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암 희망편지 - 100번째 원숭이를 생각하며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11월 29일 14:54분863,903 읽음

우리나라는 원숭이가 사는 서식지가 없지만 이웃나라 일본에는 원숭이 서식지가 많습니다. 미국의 과학자 라이언 왓슨이 1950년에 일본의 미야자키 현의 고지마라는 섬에서 원숭이를 관찰하다가 우연히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원숭이를 발견했습니다. 선지자와 같은 원숭이 한 마리가 그전에는 고구마를 먹을 때 흙을 털어내고만 먹었는데, 물에 씻으니 더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터득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위의 원숭이들도 하나 둘 따라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마침내 고지마 섬의 모든 원숭이들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고지마 섬이 아닌 다른 섬에 살고 있는 다른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씻어 먹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지마 섬과 다른 섬 사이에는 어떤 교류가 없었음에도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위가 전파됩니다.

이런 관찰을 통해 탄생한 이론이 "백 번째 원숭이 현상 이론"입니다. 즉 어떤 행동 유형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급작스럽게 개체들 사이에 널리 퍼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이론은 1979년에 "생명파동"이라는 책을 통해서 발표되었습니다.
물론 이 이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반론이 있으며,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만, 과학으로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신비로움을 인정한다면 원숭이들의 의식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선구자적인 원숭이 한 마리 덕분에 주위의 원숭이들과 다른 섬에 살고 있는 원숭이들까지도 위생적인 고구마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후손들도 고구마는 물에 씻어 먹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아도 고지마 섬에 있는 그 원숭이들과 비슷합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으면 아시아, 유럽의 대륙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걸어서 움직일 수 있지만, 아메리카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은 명백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것은 1492년입니다. 기껏해야 50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럼 그전에 아메리카 대륙에는 원숭이들만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곳에는 약 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문화와 전통을 갖고 부락을 이루며 사람의 모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옷을 입고, 화살을 쏘고, 집을 짓고, 결혼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문화와 생활양식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배를 만들거나 총을 만드는 등 과학적인 면에서는 서구문명보다 뒤떨어져 있었지만 신과 우주, 자연을 대하는 영적인 면에서는 결코 열등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두 개의 동떨어진 대륙에서도 우리 인간의 집단의식이 어느 임계점이 되면 서로 교류하면서 존재를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암을 치료하는데 대체의학이나 자연요법과 같은 치료법이 병원치료와 더불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암을 치료하는데 있어 유럽이나 미국처럼 대체요법에 대해서 많이들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방송에는 대체요법으로 암을 극복한 사람들이 TV에 자주 나오곤 합니다. 사실 이런 방송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적격 방송이었습니다. 암을 치료하는데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암을 진단받으면 전적으로 병원과 현대의학에만 의지해서 나아야 하고, 매스컴 또한 당연히 현대의학적 치료에 맞춰 방송을 했습니다. 그러나 암환자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암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과 현대의학에만 기대서 투병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하지만, 지구라는 조그만 별에서 암과 투병하는 사람들의 지혜가 모여서 만들어진 높은 수준의 의식이 일상에서 나타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특히나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암 진단을 받으면 병원에서는 심리치료부터 진행합니다. 심리적인 안정이 암을 치료하는데 가장 큰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환자에게 암을 치료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장점과 단점 등을 설명한 후에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려면 아직 많은 부분에서 개선돼야 할 것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메이저병원에 암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본 분들을 잘 아시겠지만 의사와 환자의 면담시간은 길어야 5분 이내입니다. 환자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암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을 내어서 환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의료진이 정한 방법으로 암 치료를 시작합니다.

또한, 외국에서는 완화의료가 많이 발달해있습니다. 그래서 암과 투병을 시작하면서부터 완화의료를 선택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정서상 암환자가 호스피스로 가면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환자는 어떠해서든지 그런 완화의료병동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남의 일로 외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암에 걸리지 않는다 해도 생로병사는 누구나 거쳐야 하기에 언제든지 죽음에 대비한 마음과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완화의료는 암환자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죽음은 축복입니다. 이런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고지마섬에서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던 최초의 원숭이는 많은 원숭이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런 변화들이 모여서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암을 치료하고, 대하는 우리 도 이제는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혜롭게 투병할 수 있는 변화를 취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011년도 이제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다시 맞이하는 새해에는 커다란 용기와 함께 맞이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월간암(癌)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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