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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의 지혜 식초, 식초의 놀라운 치유력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11월 21일 17:08분874,612 읽음

식초에 효험에 대해서는 이미 고대인들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기원전 400년경, 근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을 치료할 때 식초를 사용했다. 또한 로마 제국이나 이집트 왕조 시절에도 사람들은 식탁에 약효가 뛰어난 식초를 그득히 올려두었다. 19세기에는 식초가 치료용 연고로 쓰였고, 20세기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식초 칵테일을 마셨다. 오늘날 전 세계의 영양학자와 연구가들은 이 만능 액체의 또 다른 사용처를 찾아내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기원전 5000년, 바빌로니아의 지혜
식초의 강력한 힘은 시대를 초월한다. 식초에 관한 기록은 바빌로니아 시대에 최초로 등장한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기원전 5000년에 대추야자로 빚은 술을 발효시켜 식초를 만들었다. 그 이후 식초는 식품을 장기 보존하는 방부제나 약품, 항생제, 심지어 가정용 세제로까지 이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쁜' 미생물을 죽이는 '좋은' 항균 성분 덕분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비법
앞서 언급했듯이 히포크라테스는 식초를 항생제로 사용해 환자들을 치료했다. 식초는 인류 최초의 약품 가운데 하나다. 히포크라테스는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식초를 사용했다. 일례로 그는 환자들에게 벌꿀과 식초를 섞어 마시면 가래를 없애고 호흡을 편하게 만드는 좋은 치료약이 된다고 권유했다. 벌꿀과 식초의 강한 산성이 울혈을 없앤다고 본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다른 질병에도 이 강력한 벌꿀-식초 혼합물을 치료제로 처방했다. 이 조제약은 단순한 감기에도 도움이 되지만 세균성 폐렴이나 늑막염 등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데도 좋다. 또 식초는 염증과 종기, 화상에도 효과가 있다. 고대 의사들은 궤양 부위를 소독할 때도 식초를 사용했다.

성서에도 등장하는 식초
성서를 보면 식초에 대한 언급이 구약에 4번, 신약에 4번 8차례 나온다. 심지어 '식초 성서'라는 것도 존재한다. 16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클래런던 프레스(옥스퍼스 대학 출판국의 인쇄소 겸 학술 서적 출판부)에서 나온 성서를 보면, 누가복음 22장 페이지 위쪽의 표제가 '포도원vineyard'이 아니라 '식초vinegar'로 찍혀 있다. 덕분에 이 판에는 '식초 성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성서 시대 이후 식초는 '가난한 자의 포도주'로 알려졌지만, 왕족처럼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삶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물에 와인 식초와 약간의 소금을 섞어 마셨다. 이 원기 회복 음료와 빵을 함께 먹으면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힘든 노동도 이겨낼 수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의 노동자들도 이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식초 음료 요법을 애용했다. 추수절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셔브' 또는 '스위치'라고 불리는 과일 성분의 식초를 애용하곤 했다.

이집트 왕실에서 발휘된 식초의 힘
이집트의 전설적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이 영리하고 의지가 굳은 아프리카 여인은 자신의 남편 마르커스 안토니우스 황제에게 자신은 한 끼에 100만 시스테리(고대 로마의 화폐 단위) 어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내기를 걸었다. 한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내기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왕은 식초가 담긴 유리잔에 100만 시스테리의 값어치가 나가는 진주를 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그 '음식'은 한 옆으로 치워두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여왕은 식초에 녹은 진주를 삼켰다. 신 포도주의 산성 성분과 식초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만든 이 '유동식'은 가격만 비싼 것이 아니라 무모한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진주를 녹이기 위한 용제로 식초를 사용했지만, 진주와 함께 식초를 주기적으로 마셨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서운 전염병도 비켜간 식초의 힘
식초는 중세 시대에도 명성을 떨쳤다. 식초를 온몸에 듬뿍 바른 덕분에 전염병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금품을 갈취하면서도 명이 옮지 않았던 네 명의 도둑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한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시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마을에서 네 명의 강도가 페스트, 즉 '흑사병'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집에 침입해 물건을 약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결국 꼬리가 잡혀 프랑스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재판관들은 이 도둑들이 병균이 득실거리는 곳을 들락거리면서 어떻게 그 치명적인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이들의 비법은 바로 병균 감염을 막아주는 액체(식초)로 몇 시간마다 한 번씩 몸을 씻은 것이다. 이렇게 면역력을 높여주는 식초의 특성이 알려지면서부터 질병 치료를 담당하는 성직자나 의사들도 이 식초 면역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설에 따르면 네 명의 도둑은 재판관들과 흥정해서 유명한 '네 도둑의 식초' 제조법을 알려주는 댓가로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미국 남북전쟁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식초가 비타민 C가 부족해 생기는 괴혈병을 예방한다고 믿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소독제와 치료제로 식초를 사용하기도 했다.

아시아인들의 식초 지혜
식초의 효능을 일찌감치 알아챈 것은 아시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인들은 3,000년 전부터 쌀 식초를 만들어왔다. 쌀 식초의 색깔은 붉은색, 흰색, 갈색, 검은색 등으로 매우 다양한데,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식초다.

한국에서는 식초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중국의 농서인 《제민요술》이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고대의 식초를 고주苦酒라 불렀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류가 발달하면서 식초가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의 《삼국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양조하기를 즐긴다'. 이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식초 발효기술이 중국과 대등하거나, 그 우위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많은 음식의 조미료로 식초를 이용했으며, 《향약구급방》에는 약방에서도 식초를 다양하게 이용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곡류 식초와 과실 식초 등이 주로 만들어졌으며, 길일을 택하여 식초를 담그고, 부뚜막에 초두루미란 것을 두고 식초를 보관하였다고 한다.

일본인들도 오래전부터 고대 중국에서 전래된 제조법을 이용해 쌀을 기본 재료로 한 식초를 만들어왔다. 그 중에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은 '흑초'다. 다른 식초와 비교해볼 때, 아미노산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더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흑초는 그 신통한 효험이 체험자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가히 열풍이라 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건강 장수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게다가 초밥을 비롯, 유난히 식초가 많이 사용되는 일본 음식 탓인지, 일본인들의 식초에 관한 연구나 사랑이 각별한 것 같다.

이처럼 먼 옛날 그리고 저 멀리 시골 사람들까지 알고 있었던 사실, 즉 식초에 놀라운 치유력이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건강 전문가들은 이제야 새삼 깨닫고 있다.

<자연이 준 기적의 물 식초>, 칼 오레이, 웅진윙스

월간암(癌)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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