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일반
충고보다는 함께 있어주고 공감하라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06월 21일 18:13분875,058 읽음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누구도 나의 아내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며 아내가 더욱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로 느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편이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주더라도 아내 입장에서는 마음과 몸이 많이 힘들고, 과거에 안 좋았던 감정-예를 들어, 남편 때문에 속상했던 일, 시댁 식구 때문에 속상했던 일 등-이 다시 들추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욱 아내와의 싸움이 잦아질 수도 있다. 환자와 배우자 모두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처럼 감정의 급격한 변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해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TV를 보다 슬픈 장면이 나왔을 때는 통곡을 할 정도였어요.'
'물론 남편이 곁에서 항상 도와줬는데, 병원에 있을 때도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간호해줬어요. 그런 면에서는 남편이 게으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조금만 게을러 보이면 그렇게 보기 싫고 얄미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팔이 불편한데 택시를 타고 내리는데 문을 안 열어주니까 화가 났어요. 그래서 남편과 싸웠어요.'
'아내가 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화를 내요.'

그러나 가정을 이루는 환자들 대부분은 '그래도 남편이 제일 편하다' '남편이 가장 잘 도와준다'는 표현을 한다. 환자에게 1차적인 간호를 제공하는 사람, 그리고 환자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배우자다. 왜냐하면 부모님이나 아이들, 친구들에게 할 수 없는 말도 남편에게는 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늙으신 부모님이나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되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이질감이 느껴져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이 느껴지고 초라해지는 것 같아요.'
'밝게 얘기하고 들어와도 어딘가는 쓸쓸하고 외로워요. 다들 내가 밝아서 좋다는데 그 말조차 듣기 싫어요. 실제로는 그게 아닌데.'

그래서 그나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남편에게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의지하고 믿을 사람은 남편밖에 없으니까.'

중요한 점은 많은 환자들이 마음을 툭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며 같이 마음 아파해줄 사람이 없다고 한다. 특히 재발이나 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데 더더욱 어려워한다.

'당신은 왜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마음 쓰냐고 해요. 저도 아는데…… 글쎄요. 어떻게 애기를 해야 하나, 자기 딴에는 뚝 떨어져 있는 그런 기분이 들더라구요. 마음을 어디다가 툭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거예요.'

환자들에게는 밝은 감정도 있지만 어두운 감정도 있다. 특히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받는 과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몸이 힘들어서 이러한 감정을 더욱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본인의 어려움을 얘기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괜찮을 거라며 용기를 주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그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을 회피하고 충고하기보다는 환자와 함께 있어주고 환자와 함께 느껴주면 환자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그런 후에 괜찮을 거라는 위로가 필요하다.

한국의 남성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경우가 많다. 솔직한 표현은 부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생각을 하지만 말 한마디 표현을 잘 해주면 쉽게 해결이 될 것을 표현하지 않고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유방암 수술을 받고 위축되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 '사랑한다' '여전히 아름답다' '얼마나 힘드니'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내를 기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도 많이 편안해질 것이다. 아내의 차가운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남편 또한 힘든 부분을 표현을 할 필요가 있다. 남편은 좋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면 아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까 봐 더욱 표현을 어려워한다.

'참아야지 어쩌겠어요. 참지 않으면 파탄밖에 없잖아요.'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을 쏟고 있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표정이 좋지 않을 때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럴 때에는 '나는 당신이 좀더 활발하게 생활하면 좋겠어' '나는 오늘 몸이 몹시 피곤해' '나는 오늘 기분이 우울해' 등과 같이 자신을 표현해 주면 아내도 배우자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배려해줄 것이다. 아내도 남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 한다. 물론 환자가 힘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환자에게 간호를 제공해주는 배우자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남편에게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자도 배우자도 질병에만 집착할 수 없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환자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할 수 없으므로 배우자 스스로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그리고 가정의 대소사가 있을 때 아내가 쉴 수 있도록 아내를 변호해주어야 한다. 아직 친척, 친구들이 아내가 유방암이라는 사실을 모를 때에는 더더욱 이런 역할이 중요하다. 아내는 아직 친척들과 친구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몸도 힘들고,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한다. 또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가 소문나는 것을 꺼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것이 싫을 수 있다.

'아직까지 저희 부모님은 암 때문에 돌아가신 건 아니니까, 당당한 편인데…… 다투다 보면 우리 남편은 유전되는 병이 아니냐고 하면서 얘기를 하니까 그런 거 보면 괜히 은연중에 집안 어른들의 생각이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니까 자격지심인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까 봐, 자꾸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남편이 많이 도와주어야 해요. 특히 시댁문제는 꼭 도와줘야 해요. 내가 힘들 때 도와주어야 하는데 형제간에 갈등도 생겨요. 큰 줄기에서 1순위는 나니까 내가 관리해야 되는 단계니까…… 그리고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아이들이 어리니까.'

<유방암 가이드북>, 노동영, 국일미디어

월간암(癌) 201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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