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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마디] 암과 싸우지도 암을 무시하지도 마라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7월 02일 12:58분878,704 읽음

잘 먹고 잘 쉬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몸 상태’를 끌어 올리고 있다면 그 환자는 아주 효과적인 치료를 이미 시작한 셈이다. 암은 불청객임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우리 몸의 일부가 아닌 것은 아니다.
암이 따로 있고 내가 따로 있어서 이 둘 간의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싸움을 벌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 안에 암이 있는 셈이고 암은 내 몸이 겪는 하나의 이상 징후일 뿐이다. 그러니 암 치료는 곧 내 몸을 치료하는 것이지 암을 죽이고 내가 사는 ‘전쟁’이 아니다. 설사 전쟁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완벽한 승리란 없다.

암 환자는 암을 깨끗이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래서 강도 높은 치료를 마다하지 않고 전의를 불사르기도 한다. 긍정적인 태도는 좋으나 의지만 앞서서 암과의 전쟁에 무턱대고 나섰다가 치료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암은 의학적으로도 완전히 깨끗이 죽였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 10만 개 이상의 암세포가 있어야 현대 의학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하는 있어도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암을 다 없애겠다는 생각은 섣불리 갖기보다 오히려 암과 동행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좋다. 평소보다 몸 상태에 더 많이 신경을 쓰면서 몸을 ‘치유’한다고 생각해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암과 싸우지도 암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암은 엄연히 우리 몸의 정상 세포를 파괴하며 자라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암이 있더라도 조금씩 증상을 완화해가면서 가족과 재미있게 그리고 일상생활을 누리면서 지내는 것이 좋다. 암은 아파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때만 암이다. 암이라고 해서 모두가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나 암 판정을 받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며 눈물이 핑 돌게 된다. 아직 해피엔딩은 오지 않았는데, 영화가 중간에 뚝 끊기며 막을 내리는 것처럼 허망하고 허탈한 심정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 얼굴을 보기가 무섭고, 뭘 해도 불안하다. 밥맛이 떨어지고 먹지 못한 채 잠도 오지 않는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후유증으로 더 밥을 먹지 못한다.

치료에 실패해 암이 커지면 아무리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심해진다. 아프면 아플수록 더욱 밥맛이 떨어진다. 밥맛이 떨어지면 먹는 양이 줄고 체중이 줄면서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해진다. 몸에 힘이 빠지니 이번에는 먹을 힘을 내기도 힘이 든다. 에를 들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그만이다. 악순환은 계속되어 결국 영양부족으로 굶어 죽게 된다.

비록 암뿐만이 아니다. 모든 질병이 매한가지다. 특히 노령이 되어갈수록 아프면 굶게 되고 굶으면 더 아파지는 악순환이 자주 찾아온다. 비단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계에 속한 생명을 영위하는 모든 생명체도 같은 운명을 갖는다. 백수의 제왕이라는 사자도 예외는 아니다. 아프리카의 사자들은 대부분 노화하면서 굶어 죽는다. 나이가 들면 근력이 떨어지고 순발력과 지구력이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사냥에 실패한다. 사냥에 실패하면 제대로 먹지 못하기에 힘은 더욱 빠진다. 운이 좋아 먹잇감을 찾아 얼마간 연명하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냥 실패와 영양 부족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굶어 죽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우리가 완벽하게 거스르면서 ‘불멸의 생’을 살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죽지 않는 삶 또한 ‘비극’이 될 것임을 지적한 바도 있으니 그런 망상은 잊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고, 그것이 1시간이든 1년이든 10년이든 주어진 시간 안에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려면 ‘순간을 영원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중년이 넘은 사람이라면, 사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어렸을 적부터 알게 모르게 배워왔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야지……” 하는 옛 할머니들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도 산 게 아니다……”라는 말씀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굴곡 많은 현대사에서 전쟁과 기아 그리고 죽음과 늘 가깝게 지내오신 분들의 인생 역경도 있었지만, 삶의 깊은 통찰에서 나온 소중한 ‘지혜’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너무도 가져야 할 것도 많고 이뤄야 할 것도 많아서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잊어가고 있다. 그래서 순간순간 아등바등하는 것이다.

우리가 ‘암과 싸우지도 암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암을 무조건 적대시하면 몸이 이기지도 못하는 고강도의 치료를 받다가 결국 병상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을까?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지 못했다고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암을 몸속에 키우며 토굴에 들어가 몇 주씩 은둔하는 방식은 ‘살아도 산 게 아닌 게’되는 것이다.

암 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지금 당장 암으로 죽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준비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고 살아갈 날도 얼마든지 남아 있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99세까지 20대처럼 88하게 사는 건강법 내몸 경영>, 박민수, 전나무숲

월간암(癌)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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