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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7월 01일 13:07분878,590 읽음

고동탄 | 발행인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주어진 현실과 병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의 삶이 겸손하고 가난해야 합니다. 겸손과 인내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 보다는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 종교인의 자세 또한 지성인의 삶에 대하여 온 몸으로 실천하신 분입니다. 1969년 47세의 나이에 추기경이 된 이후에 ‘세상 속의 교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독재정권과 맞서기 시작하여 인권, 사회정의 운동 한가운데 서 있던 분이십니다.
명동성당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민주화 운동의 피난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하나의 행복한 섬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무수한 희생자가 속출한 것을 가슴아파하시며, 선종 후에야 그 당시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을 걱정하는 많은 편지와 함께 거액의 돈을 보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또한 장애인과 사형수들을 만났으며 강제 철거로 거리에 나앉은 빈민들, 농민과 저소득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살아오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나누는 삶의 본보기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눔의 씨앗을 남겨 두시고 선종하셨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많은 이들은 떠받치던 기둥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 길에서도 각막기증으로 두 사람에게 세상의 빛을 선물했습니다. 생전에 직접 설립한 성북동의 미혼모 자녀 입양기관인 ‘성가정입양원’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각 사회단체에 장기기증문의와 입양문의가 쇄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향기가 선종 후에도 세상으로 아름답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늘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낙태, 사형제도등의 사회적인 시스템에 반대하였고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셨습니다. 병원에서는 관행적으로 연명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인데 스스로 숨 쉴 힘이 있을 때가지 살기를, 스스로 눈 감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입니다.

독일 어떤 노인의 시
(2001 김수환 추기경 번역)

이 세상에서 최상의 일은 무엇일까?
기쁜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지만 쉬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스러워질 때 희망을 지니며
공손히 마음 편히 내 십자가를 지자.

젊은이가 힘차게 하느님의 길을 가는 것을 보아도
시기하지 않고
남을 위하여 일하기보다
겸손되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쇠약하여 이제 남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도
온유하고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늙음의 무거운 짐은 하느님의 선물
오랜 세월 때 묻은 마음을 이로써 마지막으로 닦는다.
참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자기를 이승에 잡아두는 끈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는 것.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이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을 겸손되이 받아들이자.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제일 좋은 일을 남겨두신다.
그것은 기도이다.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합장만은 끝까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위해 하느님이 은총을 베푸시도록 빌기 위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임종의 머리맡에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오너라. 나의 벗아. 나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월간암(癌)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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