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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마디] 평화로운 죽음은 별이 스러지는 것과 같은 것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29일 13:08분878,331 읽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의사로부터 얘기를 들었건 듣지 않았건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이나 의사 앞에서 항상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그런 현실을 생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고, 그런 얘기를 드러내놓고 해서는 안 된다는 노골적인 혹은 은밀한 신호를 감지한 환자들이 일단은 그러한 신호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병원 측에서 진실을 직접 말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반감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쾌해했다. 악성종양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주위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에 변화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런 변화로 하여금 환자들은 자신들의 병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직접적으로 얘기를 듣지 못한 환자들도 친지들이나 병원 직원들의 태도의 변화나 암시적인 말들을 통해서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의 병에 대해 정확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의사가 복도에서, 아무런 예고도, 추가 설명도 없이, 일말의 희망조차 남겨주지 않고 퉁명스럽게 얘기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진실을 알게 된 것에 대해 감사했다.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환자들의 반응은 거의 똑같았다. 그것은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뿐 아니라 엄청난 예기치 못한 스트레스에 대해 모든 인간이 보이는 첫 반응인 ‘충격’과 ‘부정’이다. 부정 뒤에는 분노와 노여움이 뒤따른다. 환자의 이러한 분노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잘 인내해주면 환자가 마지막 단계인 수용의 단계로 넘어가는 데 있어 디딤돌을 하는 우울의 단계를 접어드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단계에 있건, 어떤 방식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건, 모든 환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만났던 모든 환자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연구 성과, 새로운 약이나 주사제, 하느님이 일으키는 기적에 거는 희망이었고, 혹은 그들의 엑스레이나 임상 슬라이드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우리가 그들이 지닌 희망에 공감을 하건 안 하건 그들의 희망은 그대로 유지되어야만 한다.

고된 노동과 고통의 삶의 살아온 사람들, 자식들을 키우고 그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에 나름대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평화롭고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인 반면, 주위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마지막 순간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소중한 인간관계를 이루어 놓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환자의 투병생활에는 고통이 멈추는 시점, 꿈을 꾸지 않는 상태로 마음이 빠져나가는 시점, 더 이상 음식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 주변상황에 대한 의식이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시점이 있다. 바로 이 시기에 가족들은 복도를 서성이면서 기다림으로 고문을 당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돌봐야 할지, 아니면 임종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환자의 곁에 머물러야 할지 고민한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가족들은, 말로, 혹은 말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비명을 지르는 시기이다.

의학적인 조처를 하기에도 너무 늦었다. 이시기에 의학적인 조처를 하는 것은 비록 좋은 의도라고 해도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위한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이다. 환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어 하건, 아니면 이제 영원히 잃게 될 것들에 절망적으로 집착하건, 가까운 친지들에게는 이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이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자에게나 환자의 가족에게나 침묵 치료가 필요한 시기이다.

가족이 느끼는 갈등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목사는 가족들에게 죽어가는 환자와 함께 있어주기를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이 마지막 순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사람이 곧 환자의 상담사가 될 수도 있다. 선택된 사람이 환자의 곁을 지키는 것을 지나치게 불편해하는 경우에는 죄책감을 덜어주거나 누군가 같이 있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경우 선택된 사람은 환자가 혼자 죽어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그 순간을 피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말을 넘어선 침묵의 단계에 죽어가는 사람 곁을 지킬 용기와 사랑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순간이 전혀 두렵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오직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정지하는 평화로운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모습은 마치 별이 스러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광활한 하늘에서 반짝이던 수백만 개의 별 중 하나가 짧은 순간, 끝없는 어둠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죽어가는 환자들의 곁을 지켜주는 일은 인류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함을 생각하게 한다. 그 일은 우리 자신의 유한함, 생명의 유한함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 인간은 저마다 독창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류 역사의 한 올로 우리 자신을 엮어 넣는다.

<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이레

월간암(癌)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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