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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 김풍, 그를 추모하며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25일 12:58분879,561 읽음

고동탄 | 발행인

새해가 시작되고 며칠 지나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들렸습니다. 무슨 문자일까 싶어 핸드폰을 여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엊그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덕담을 주고받은 지인의 부고 문자였습니다. 암환자지만 너무도 건강한 사람이라 믿겨지지 않아 이 무슨 장난일까, 만우절도 아닌데 마음 한편에서는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습니다.

급히 연락을 하니 친구라는 분이 전화를 대신 받으며 부고가 사실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그 힘든 암도 이겨내고 암환우 모임을 만들어 애쓰더니 암도 아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은 참으로 믿기 힘들었습니다. 힘이 넘치고 젊고 활달한 그는 충청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풍씨입니다.

그와의 만남은 2008년 초에 <월간암>의 투병기를 취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위를 완전절제한 환우들이 몸이 마르기도 하는데 그는 보기만 해도 에너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암환자들을 알게 되었고,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암환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하여 살고 있는 청주에서 암환자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왔습니다.

첫 만남이 있고 몇 달 뒤 그는 보건복지부에 암환자를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겠다며 행정적인 일들을 부탁해 왔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어 그와 함께 보건복지부와 충북도청을 다니며 행정 부분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체설립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담당 공무원들은 사단법인 설립을 거부하다시피 했고, 그는 다른 대안을 찾아 암환자들을 위한 지역의 봉사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부고소식을 듣고 그가 보내온 많은 서류들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그중 후원통장 사본이 눈에 띄어 자세히 살펴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2005년부터는 지인들이 매달 오천 원에서 만 원 가량의 후원금이 모아져 매달 십오만 원에서 이십만 원 정도의 후원금이 입금되고 있었고, 그가 사비를 털어 몇 백만 원, 몇 십만 원씩을 입금한 내역이 보였습니다. 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힘들게 투병하는 암환자들을 찾아 수술비, 생활비를 후원해 왔던 기록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꾸려온 모임은 규모도 작고 후원금도 많지 않았지만 그의 자취가 담긴 기록은 살아있는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고민하게 합니다. 같은 암환우를 향한 그의 마음의 깊이가 그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고인이 된 그는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암환우를 돕고 아픔을 함께 나누며 용기를 북돋아 주길 원했습니다.

그가 겪었던 막막함과 암으로 인해 잃어야 했던 것, 얻게 된 것, 힘들었던 그 길을 다른 암환우는 쉽고 고통스럽지 않게 지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는 떠나고 없습니다. 그가 고민하고 해야 할 일들은 이제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월간암(癌)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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