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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마디] 집에서의 임종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23일 13:58분878,792 읽음

사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는 가족들은 극히 드물다. 죽음에 임박할수록 병원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 생각은 단순한 통념 수준을 넘어서 가족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도리로까지 여겨졌다. 그렇게 해야만 최선을 다한 것으로 여겨졌고, 환자의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최고의 화학 치료나 방사선 치료 장비가 대기하고 있는 병원에 남아 있어야만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을 바꿀 것을 제안했고, 그들 자신의 두려움과 맞설 것을 설득했고, 그것을 실행할 용기를 내도록 격려해 주었다. 30분 정도면 환자 가족들이 대안을 생각해 보고 환자를 집으로 데려가는 가능성에 대해 실제로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그들은 집에 있는 경우의 장점,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데 필요한 비용의 절감, 항상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보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다른 선택이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아이들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병들어 입원한 아빠와 엄마를 몇 달 동안 못 보고 지낸다. 마침내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병든 엄마의 모습이 조금 달라져있으리라는 것,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주거나 집안을 돌아다닐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너무 소란을 피워서도 안 되고, 문을 쾅 닫아서도 안 되고, TV를 보고 싶으면 먼저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감수해야 하는 크고 작은 불편들은 엄마를 항상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엄마가 그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을 흔들어 주고, 어루만져 주고, 손을 잡아 주고, 미소를 지어 줄 수만 있다면, 때로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많은 아이들은 엄마의 품에 안겨서, “엄마, 엄마가 집에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끔찍한 병에 걸린 아빠, 혹은 엄마라고 해도 아이들은 그들이 출입할 수 없는 병원에 있는 것보다는 그들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불치병에 걸린 남편을 둔 아내들은, 만약 남편이 병들기 전에 그렇게 했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미장원에 가야 한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볼링을 쳤던 남편들은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다른 인간관계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나면 그들이 돌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일상을 되찾기가 훨씬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방에서 조용히 놀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격려한다. 환자가 그들의 형제이건, 부모이건, 조부모이건,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슨 이야기라도, 심지어는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죽어가는 엄마와 아빠, 형제와 자매들, 심지어는 그런 이야기를 몹시 불편해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테이블에 촛불을 밝혀두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멀지 않은 곳에 아이들이 잠들어 있고, 아이들이 꺾어온 꽃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병원에서 맞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죽음을 맞이했다. 그 아이들은 앞으로 죽음을 외로움, 소외감, 거짓말, 속임수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부모와 조부모,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기억할 것이며, 자신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해하고 그것을 모두 함께 이겨내는 과정으로 기억할 것이다.

집에서의 임종을 여러 차례 목격한 뒤로, 나는 누구나 그런 임종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적절한 도움만 있으면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 긍정적이고도 건설적인 선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말 워쇼 사진, 이레

월간암(癌)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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