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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 기축년(己丑年)을 시작하며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22일 14:59분878,243 읽음

고동탄 | 발행인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지나고 기축년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으므로 우리는 주어진 일 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계획과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암환자에게는 암에서 해방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일 겁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 반목하는 사회적 모습이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났고,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그로 인한 극심한 불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안한 사회의 모습에 심한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습니다.

인도의 성자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심하게 병든 사회에 잘 적응한 몸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서민들은 참으로 험난한 시기를 견뎌왔습니다. 하루하루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나’를 잊고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병든 사회가 만들어 낸 많은 음식과, 공기, 물을 마시며 생명을 유지해왔습니다. 돈이 무엇인지 매일, 매달 지불해야 할 돈을 마련하느라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진심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하고 각박해지는 시기부터 암환자의 수치도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암환자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학 발전과는 무관하게 발병과 사망의 상승곡선을 보노라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와 가정 그리고 우리 사회와 나라들이 나아가는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제는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파헤쳐서 깊고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몸, 나의 병이 중요하듯 병든 사회를 알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왔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한 깨우침을 통해서 나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기술을 개발해 냈을 때, 그 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안전과 복지를 부여해 줍니다. 그리고 지식에서 태어난 그 기술은 우리의 사회 속에서 기계적인 시스템이 됩니다. 그 시스템은 경제적 욕구를 동반하며, 또한 지위와 특권을 확보해 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안전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과학적 시스템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안전을 가져다주는지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암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상처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욱 큰 안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만들어 준 안전은 분명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안전은 스스로 발전시켜나가야 하며, 스스로 안전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각자의 마음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스스로 그 안전을 찾을 수 없다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안전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 더욱 크고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습, 나의 병, 나의 마음 등, “나”를 잘 느낄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사회가 보장해주는 안전보다 더 커다란 의미가 있는 나의 안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4기 진단과 함께 의사로 하여금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할지라도 남은 시간 동안 “나”를 느끼려는 노력을 통해 안전과 평온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추입니다.

암을 진단받고 무너져버린 몸과 마음으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일 년 동안 월간<암>을 제작하며 많은 암환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암을 진단받고 몸과 마음이 변화된 사람들이 암과 함께 롱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암에 구속당한 채로 암이라는 병만 생각하며 지내거나, 암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안타깝지만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변화를 가져다 줄 수는 없습니다. 암 진단은 역설적이지만 내 인생에 변화의 시기가 되기도 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 시작되는 한 해도 나의 주인은 나입니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이 세상 또한 “나”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이해만이 현재를 바꾸는 방법입니다.

월간암(癌)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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