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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안내]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09일 18:03분878,420 읽음

지은이 | 신달자 펴낸곳 | 민음사 | 정가 9,500원

지은이 소개
1943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여상》에서 여류신인문학상 수상과 함께 등단한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서 재등단했다. 『봉헌문자』, 『아가』, 『아버지의 빛』, 『오래 말하는 사이』, 『열애』 등의 시집이 있으며, 『시인의 사랑』,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등 다수의 에세이집이 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 소개
삶의 실존론적 고뇌를 섬세한 여성적 감성으로 표현하며 우리 문학에서 여성 시의 영역을 개척하고 대표해 온 신달자 시인의 에세이집. 시인 신달자의 화려한 삶 뒤에 감추어진 고통의 나날들을 고백하고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고통을 이겨 낸 감동적인 드라마가 펼쳐진다. 시인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 주며, ‘영원히 싸우고 사랑해야 할 것은 오직 인생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총 4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딸 같은 제자인 ‘희수’에게 지난날을 술회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산문 중간 중간에 수록된, 당시의 감정을 눈물로 쓴 13편의 시는 그녀의 삶이 어떻게 그녀의 시의 뿌리를 이루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책 속으로
나는 지금까지 여러 환자를 그리고 여러 죽음을 보았다. 지독한 악연 같은 썩는 내음이 물씬 풍기는 눈물을 마시며 나는 그 환자들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고 생각했지. 저들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콱 죽어 버리고 싶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환자를 간호하는 일은 또 하나의 호사라는 것을.
내가 환자로 그것도 암 환자라는 이름으로 병원 침대에 눕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니? 그래 너는 정확하게 몰라.
나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인가를 정말 너무도 자세하게 알아 버린 사람이다. 누구보다 환자를 많이 본 나였고 환자에게 익숙한 사람이다. 시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편.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의 불행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환자가 되어 병실에 눕고 말았을 때 그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임을 나는 알았다. 그 공포, 그 외로움, 그 막막함…….
간호 3단, 아니 5단, 아니 10단을 건너온 나는 내가 환자라는 사실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진정한 비극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어.
그렇게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지금 나는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오래 불행이라는 말, 고통이라는 말, 죽음이라는 말과 친해서 더는 그것이 충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병자일 때는 달랐다. 새 충격이 나에게도 남아 있더라……. 그토록 지겹게 놀라고 절망했는데 그것이 내 인생의 과목이었는데 내가 환자가 되니 새로운 놀라움의 충격이 새잎처럼 푸르게 돋아났다. 아아, 그 시퍼런 충격!
수술 후 나는 서른세 번 매일 치료를 받았는데 암 환자가 득실거리는 의자에서 “신달자 님.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옷을 담은 검은 보퉁이를 들고 이상한 옷을 하나 걸치고는 세상에서 가장 기죽은 모습으로 들어갔다. 그 서른세 번의 치료에서도 나는 적어도 백 번은 죽었다. 아니 천 번도 더 죽었다. 몸보다 정신이 더 아팠고 지쳤고 세상이 싫고 그리고 지독스럽게 외로웠다.
아, 그래 난 외로웠다. 몸이 아픈 사람이 그렇게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다면 내 남편이 반길 일이라고 나는 반성했다. 그의 끔찍한 외로움을 겨우 겨자씨만큼 알았다고나 할까. 그 긴긴 환자를 나는 죽도록 지겨워했으니까 말이야. 나는 그의 외로움을 이해했다. 나는 별일을 다 했다. 그리고 조금씩 진정한 인간 쪽으로 다가갔는지 모른다.

월간암(癌)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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