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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자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03일 15:42분877,617 읽음

발행인|고동탄

우리나라에서는 암이라는 병은 ‘진단’한다는 것보다는 ‘선고’한다는 정서가 강합니다. 마치 법정에서 재판관이 피의자에게 형량을 내리는 것처럼 죄인이 되어 암을 선고받습니다. 선고를 받는 환자의 심리상태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게 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투병을 시작한다면 암이 그렇게 암울한 병은 아닙니다.

보통 병기가 중한 환자들은 남아있는 삶의 기한을 선고받고 마음 깊이 <주홍 글씨>의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그 후의 시간은 ‘죽음’으로 정의되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설정하고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나간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며 결코 ‘낙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현명한 환자나 보호자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미래에 대한 목표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암환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련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입니다.

대부분의 암환자는 진단을 받은 후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언제나 찾아오던 ‘내일’, ‘한 달 후’, ‘일 년 뒤’의 나의 모습이 더 이상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습니다.

암은 분명 진단을 받기 이전부터 몸에 존재해 왔지만 진단으로 ‘자각’되면서 삶의 한계점을 찍고 삶의 목표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쩌면 이런 일련의 과정들일지도 모릅니다. 이 절망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육신이 스스로 세포의 치유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암투병은 인생 최대의 시련입니다. 이제 묻는 것은 그만하십시오. 왜 나에게, 왜 나만…. 삶의 길에 놓인 상자를 열고 그 안에 ‘행운’이 있을 때 우리는 기뻐할 뿐 ‘왜 나에게’, ‘왜 나만’이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이제 ‘병’의 상자를 열게 된 것 뿐입니다. 인생에서 행운의 상자만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공평합니다.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는 누구나 이 ‘병’의 상자를 거쳐야 합니다. ‘왜 나만’이라는 질문을 그치고 그 안의 ‘암’이라는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운명, 또는 과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어느 누구도 나를 이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오직 나만이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한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투병에 앞서 우리는 삶에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단지 몸에 있는 암을 없애기 위한 투병생활은 견디기 힘들고 오래 유지할 수 없어 실패하기 쉽습니다.

암 이전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목적도 목표도 없었다면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먼저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닙니다.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라는 사실입니다. 삶의 의미와 삶의 부정이라는 모순 속에 갇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원망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을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월간암(癌)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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