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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모임을 가다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3월 13일 11:09분879,536 읽음

해찬들|45세. 직장암 3년째.

2007년 11월 다음카페 종려나무 아래(//cafe.daum.net/dolbome) 회원들과의 모임을 했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정겹고 보고픈 사람들과의 만남을 추억하며 일기장을 들춰본다.

어젯밤 조카결혼식 준비와 장거리 여행을 하려고 장을 비우는 약을 먹었다. 눈을 뜨자마자 정수기 물을 한 컵 먹는데 뒤가 이상하다. 이럴 땐 화장실 “화” 자만 생각이 나도, 부엌에서부터 팬티를 벗으면서 냅다 화장실로 뛴다. 이럴 땐 완전히 칼 루이스다.
변기통과 누르기 한판을 하려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잽싸게 뒤로 돌아선 다음 뒷걸음으로 세 걸음 걷고 그대로 앉았다. 정확하다.
헉! 그런데 기분이 묘하다. 순간적으로 차갑다는 느낌도 들고 엉덩이가 아프다. 가만 보니 아들 녀석이 변기통 뚜껑을 올리고 볼일을 본 후 그냥 나간 까닭이다. 엉덩이가 커서 그나마 걸렸지, 작았으면 변기통에 엉덩이가 껴서 죽을 뻔했다.
작년인가 보다. 너무 급해서 오늘처럼 팬티를 벗으면서 화장실로 뛰다가 팬티에 발목이 걸려서 거실에 ‘철퍼덕’ 넘어진 적도 있다.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아무튼, 조카결혼식이 끝나고 집에서 출발하니 9시. 줄포 나들목을 지나 보국님이 쉬운 길을 가르쳐 주시면서 마중까지 나왔다. 덕분에 헤매지도 않고 번개장소인 내장산 둘레의 허브찜질방에 도착을 했다. 늦게 도착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보국님과 사모님, 늘 웃는 모습의 들꽃누님, 장폐색으로 고생하신 햅쌀밥님. 늘 든든한 맏형 고대로형님과 형수님. 모두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1시 가까이 도착하고 피곤해서 인사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보국님이 피곤하시다면서 먼저 주무신다. 이어서 들리는 소리. ‘드르렁 드르렁.’ 앗싸 나보다 더 코를 고는구나. 맘 푹 놓고 자도 되겠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내가 더 코를 골았단다.

아침 9시에 찜질방에서 나왔다. 내장산 어귀의 국화꽃 전시장을 둘러보고 내장산으로 출발했다. 남들은 좋은 공기 마시며 운동 삼아 등산을 하는데, 우리는 용감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 바람과 추위가 장난이 아니다. 이가 부딪쳐서 ‘다다다다’ 소리가 나고, 오랜만에 걸었더니 도가니에서도 ‘삐걱삐걱’ 오래된 한옥 대문을 여닫는 소리가 난다.

들꽃누님이 겨우살이를 보시더니, “아, 저걸 딸 수만 있다면” 하시면서 탐을 내는 눈치다. 옆에 있던 대로형님이 국립공원이라 손대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쉬운지 겨우살이에 눈길을 자꾸 준다.
팔각정을 돌아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전시장 끄트머리 쪽으로 빙 둘러앉았다. 들꽃누님의 웃음치료가 시작되었고 ‘지글지글 짝짝~보글보글 짝짝’을 일본버전과 중국버전으로 흥을 돋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잘하는 상, 못 따라 하는 상’ 따위로 모든 사람들에게 ‘상’으로 사탕을 주시면서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신다.

끝 무렵에는 들꽃누님이 정성스럽게 담근 효소와 직접 기르신 푸성귀를 주셨고, 대로형님이 항암에 좋다는 ‘까마중 나무’와 환을 만들어 주셨다. 햅쌀밥님 기차 시간에 맞춰서 점심으로 유황오리구이와 쌈밥을 먹고, 아쉽지만 햅쌀밥님과 먼저 작별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김장하려고 알타리 무를 사러 갔다가 채소 도매시장이 쉬는 날이라 그냥 돌아 나왔다.

늘 헤어짐은 아쉽다. 하지만, 다음 또 번개가 있으니 다음을 기다린다. 우리 님들, 늘 사랑합니다.

월간암(癌) 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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