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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투병수기절망의 끝에서 무지개를 보다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6년 10월 30일 19:14분289 읽음
- 글 : 한점숙 (64세 경기도 거주)
처음에는 그저 장염인 줄만 알았다. 며칠째 열이 내리지 않았고 설사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잘못 먹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동네 개인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고, 다행히 배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마음에 종합병원 진료를 받아 보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확인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 그날을 기준으로 둘로 나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2020년 7월 11일. 나는 이 날짜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진료실에서 나는 난소 육종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교수님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말들은 좀처럼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암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머리가 하얘졌는데 3기라는 숫자까지 붙어 있었다. 진료실을 나와 복도 의자에 앉았는데 한동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장염 약을 먹으며 배가 나아지고 있다고 안도하던 내가 믿기지 않았다.
그해는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해 온 나라가 혼란스럽던 때였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서로 거리를 두었고, 병원 안의 공기는 유난히 무겁고 낯설게 느껴졌다. 세상 전체가 멈춰 선 것 같던 그 시기에 나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교수님은 나에게 임상시험 참여를 권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암이라는 병도 처음이었고, 임상이라는 말은 더 낯설었다.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은 약을 내 몸에 넣는다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나만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밤마다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육종암이라는 무서운 단어 앞에서 망설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보자, 지금 붙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붙잡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임상을 선택했다.
표준치료 1차를 마친 뒤 2차부터 임상약이 함께 투여되었다. 항암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면역수치였다. 수치가 오르지 않아 예정된 항암이 번번이 연기되었다. 날짜에 맞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에 가도 수치가 모자라 그냥 돌아와야 하는 날이 많았다. 몸이 힘든 것보다 기다림이 주는 조급함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여섯 번의 표준치료가 거의 두 달에 한 번꼴로 이어져 1년 2개월 만에야 끝이 났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표적치료와 면역치료가 계속되었고, 모두 합해 37번의 항암을 받았다. 서른일곱 번. 지금 이 숫자를 적으면서도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나 자신도 잘 믿기지 않는다. 한 번 한 번이 쉬운 적은 없었다. 다만 그저 오늘 해야 할 한 번에만 집중하려고 애썼다. 멀리 보면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1년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었다. 마침내 항암을 모두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울 속의 나는 낯선 사람이었다. 몸무게는 12kg이나 빠져 있었고 치아도 상해 있었다.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흡사 외계인 같았다. 긴 싸움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막막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치료는 끝났지만 회복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늘 마음 한편에 있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여기저기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녹십자의 면역세포치료제인 이뮨셀-엘씨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매주 치료를 받았고, 이후에는 간격을 늘려 3주에 한 번씩 면역치료를 받도록 계획이 세워졌다.
그와 함께 일주일에 세 번씩 고주파 치료와 고용량 비타민 요법, 단백질 보충을 꾸준히 이어 갔다. 무너진 몸을 다시 세우려면 병원 치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식습관부터 바꾸었다. 예전에는 대충 끼니를 때우는 날도 많았지만, 이제는 채소를 곁들여 골고루 먹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었다. 한 끼 한 끼가 내 몸을 회복시키는 약이라고 생각하니 밥상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졌다.
몸과 함께 마음도 돌보아야 했다. 나는 명상을 시작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불안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지만,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몸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졌다. 빠졌던 살이 조금씩 돌아오고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2024년 7월, 나는 재발 없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진단을 받은 지 꼭 4년 만이었다. 그날 진료실을 나서며 4년 전 같은 복도 의자에 주저앉아 있던 나를 떠올렸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이 길의 끝에도 무지개가 뜬다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긴장을 모두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몸을 살피고 있다. 식단과 운동, 명상도 여전히 내 일상의 일부다. 어느새 진단을 받은 지 만 6년을 넘기고 있다. 한때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이제는 다음 계절을, 내년을 생각하며 산다.
투병하다 보면 절박한 사정이 마음을 흔들고 조급함이 앞서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다. 나도 그랬다. 면역수치가 오르지 않아 항암이 미뤄질 때마다 초조했고, 거울 속 달라진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무너졌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었다. 늘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하루도 거르지 않는 꾸준함, 그리고 바른 식습관. 이것은 병 앞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무기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 진단서를 받아 들고 막막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항암 날짜가 또 미뤄져 속상해하는 분들, 거울을 보기가 두려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재발 없이 육종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그 증거가 바로 여기 있는 나라는 것을. 모든 환우분들과 이 희망을 나누고 싶어 나는 이 글을 쓴다.월간암(癌) 202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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