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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속 세균이 '청춘 근육'을 만든다. 노화 막는 미생물 발견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6년 09월 30일 11:05분73 읽음
장내 미생물 '로제부리아'의 근력 향상 및 근감소증 예방 효과 규명
나이가 들고 암과 같은 큰 병마와 싸우다 보면, 가장 눈에 띄게 빠져나가는 것이 바로 '근육'이다.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걸음걸이에 힘이 빠지는 '근감소증'은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니다. 근육이 사라지면 낙상 사고의 위험이 커지고, 신진대사가 떨어지며, 항암 치료를 견뎌낼 체력마저 고갈되기 때문에 현대 의학에서는 이를 매우 심각한 질병으로 다루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근육을 지키기 위해 오직 단백질 고기를 많이 먹고 아령을 드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최근 소화기 분야의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것(Gut)'에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우리 뱃속, 즉 대장에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미생물들이 우리가 튼튼한 근육을 유지하고 힘을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내 장속의 유익균이 어떻게 든든한 '근육 지킴이'가 되어주는지 그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들여다본다.

장과 근육이 은밀하게 대화를 나눈다, '장-근육 축'
최근 의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생태계)'이다. 우리 장 속에 사는 수조 개의 세균들은 뇌 신경과 연결되어 치매나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고, 대사 질환과 심혈관 질환을 조절하는 등 내 몸의 '제2의 장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연구를 통해 이 장내 미생물들이 뇌뿐만 아니라 내 팔다리의 '근육'과도 실시간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영향을 미친다는 이른바 '장-근육 축(Gut-muscle axis)'의 존재가 더욱 선명하게 증명되었다. 쉽게 말해, 장 속에 어떤 세균이 살고 있느냐에 따라 내 근육의 크기와 뿜어내는 힘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공동 연구팀은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18세에서 25세 사이의 건강한 청년 90명과 65세 이상의 노인 33명의 대변 샘플을 채취하여 장 속에 어떤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샅샅이 분석했다. 그리고 이들의 악력(손아귀 힘), 다리로 밀어내는 힘(레그 프레스), 최대 산소 섭취량 등을 꼼꼼하게 측정하여 근력과 미생물 사이의 연결 고리를 추적했다.

노인의 악력을 29%나 끌어올린 마법의 미생물
수많은 장내 미생물 중에서 연구진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주인공은 바로 '로제부리아(Roseburia)'라는 미생물 그룹이었다. 특히 이 그룹 중에서도 '로제부리아 이눌리니보란스(R. inulinivorans)'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특정 미생물이 근육의 양과 근력을 키우는 데 기적 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 중에서 장 속에 이 로제부리아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미생물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손아귀로 쥐는 힘인 '악력'이 무려 29%나 더 강하게 나타났다. 악력은 노년기 건강의 핵심 지표로, 악력이 셀수록 전신 근육이 튼튼하고 수명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 청년들의 경우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미생물이 장 속에 풍부할수록 악력은 물론이고, 심폐 지구력을 나타내는 최대 산소 섭취량과 하체 근력(레그 프레스)까지 모두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순발력 근육 '백색 근섬유'를 두껍게 깨우다
단순히 통계적인 연관성만 있는 것은 아닐까? 연구진은 이 미생물이 실제로 근육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32마리의 쥐를 대상으로 정밀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항생제를 투여해 쥐들의 장속을 깨끗하게 비운 뒤, 일부 쥐들에게만 매주 이 로제부리아 미생물을 먹여 8주간 변화를 관찰했다.

결과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보다 더욱 극적이었다. 로제부리아 미생물을 먹은 쥐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쥐들에 비해 앞발의 근력이 약 30%나 급격히 상승했다. 연구팀이 쥐의 종아리 근육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놀라운 변화가 관찰되었다. 로제부리아 미생물이 근육 내부의 대사 활동을 완전히 뒤바꾸어, 근육 섬유의 크기를 훨씬 크고 두껍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특히 '제2형 근섬유(속근)'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근육에는 마라톤처럼 지구력을 낼 때 쓰는 붉은색 근육(지근)과, 단거리 달리기나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어 올릴 때 쓰는 흰색 근육(속근)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먼저 얇아지고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 속근이다. 속근이 사라지면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렸을 때 재빨리 몸을 지탱하는 순발력이 떨어져 치명적인 낙상 사고로 이어진다. 그런데 장 속의 작은 미생물이 노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 생명줄 같은 '순발력 근육'을 두껍고 튼튼하게 재생시켜 준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는 든든한 아군, 보충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우리 몸에 훌륭한 청춘 근육을 선물하는 로제부리아 미생물이 나이가 들수록 장 속에서 점점 자취를 감춘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 20대 청년들의 장 속에는 이 유익균이 최대 6.6%까지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었지만, 65세 이상 노인들의 장 속에서는 고작 1.3% 이하로 뚝 떨어져 있었다. 노년기에 접어들며 근육이 급격히 빠지는 근감소증이 심해지는 시기와, 이 미생물이 사라지는 시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장내 미생물을 이용해 근감소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근육 영양제(프로바이오틱스)' 개발의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근육이 빠져 고통받는 암 환우나 어르신들이 굳이 무리한 근력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알약 형태의 맞춤형 유산균을 먹는 것만으로 튼튼한 근육을 유지할 수 있는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내 몸을 지탱하는 힘은 겉으로 보이는 팔뚝이 아니라,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뱃속 장기에서 작은 생명체들과의 조화로운 공생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내 장을 건강하게 보살피는 일이 곧 내 몸의 근육을 튼튼하게 지키고 든든한 노년을 맞이하는 가장 지혜롭고 완벽한 지름길임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근육 건강 사전
근감소증 (Sarcopenia): 나이가 들거나 큰 병을 앓으면서 근육의 양과 근력이 비정상적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질병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뼈를 지탱하는 힘이 사라져 골절의 위험이 커지므로, 최근 의학계에서는 이를 매우 심각한 노인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속근 (제2형 근섬유): 우리 몸의 근육 중 무거운 것을 번쩍 들거나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움직일 때 사용하는 굵고 흰색을 띠는 근육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먼저 얇아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낙상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속근을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근육 축 (Gut-muscle axis): 우리 장 속에 사는 수많은 세균들이 혈액을 통해 근육 세포에 특정 물질을 보내며 서로 끈끈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을 말한다. 장내 유익균이 많을수록 근육 세포가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어 근육이 두꺼워지고 힘이 세진다.

[자료 참조] 국제 학술지 것(Gut) / 네덜란드 및 스페인 공동 연구진
월간암(癌) 202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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