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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전문가칼럼술 취한 원숭이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6년 08월 31일 13:35분48 읽음
- 글: 김경인(생명공학 스타트업 머스큘로이드 대표)
퇴근길 스트레스 풀 소주 한 잔, 여름밤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맥주 한 잔, 진하게 마시는 위스키까지, 인류 역사상 알코올만큼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깊숙이 뿌리내린 물질은 없을 겁니다. 현대의 우리는 알코올 소비를 단순한 기호 식품의 섭취나 문화적 관습, 혹은 개인의 자제력 문제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술을 향한 열망은 훨씬 더 오래되고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이토록 알코올에 취약하며, 때로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알코올을 갈구하는 것일까요?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최근 진화인류학 및 생물학계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와 야생 영장류의 생태를 주목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알코올 소비와 중독 성향이 현대 사회의 타락이 아닌, 수천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진화적 결과물이라는 재미있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4년 미국 UC 버클리의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 교수는 인간의 에탄올(알코올) 선호와 섭취가, 잘 익은 과일 속 당분을 발효시키는 효모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탄올을 섭취했던 인류 조상의 진화적 유산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며, 이를 술 취한 원숭이 가설(Drunken Monkey Hypothesis)로 제안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과 그의 후속 연구—Human Evolution and Dietary Ethanol (2021)과 Ethanol ingestion via frugivory in wild chimpanzees (2025)—를 연계하여 인류와 알코올의 관계를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가설의 핵심은 에탄올이 자연 상태에서 과일의 성숙도를 알리는 중요한 신호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효모는 과일 속의 당을 발효시켜 에탄올을 생성하는데, 이 냄새는 먼 거리에서도 잘 익은 과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돕는 후각적 단서가 됩니다. 또한 에탄올은 현대 인류에게서도 식사 전에 소량의 술을 마셔 식욕을 돋우고 소화기관의 활동을 촉진하는 아페리티프 효과(aperitif effect)처럼 섭취 자극제 역할을 하여, 조상들이 칼로리가 높은 자원을 더 많이 먹도록 유도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알코올에 대한 갈망은 과거 식량이 부족했던 환경에서 에너지가 풍부한 과일을 빠르게 찾아내고 섭취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고대 영장류가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과일을 주식으로 삼았을 때, 과일 속 에탄올 성분을 생존에 유익한 이정표이자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도록 진화했다는 점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잘 익은 과일은 당분이 풍부합니다. 그리고 공기 중의 효모는 이 당분을 분해하여 에탄올을 만들어냅니다. 즉, 자연 상태에서 에탄올이 풍부한 과일은 가장 잘 익고 에너지가 높은 최고의 먹거리를 의미했다는 것이죠. 공기를 통해 멀리 퍼져나가는 에탄올 향은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영장류에게 훌륭한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을 겁니다. 에탄올을 잘 찾아내고 이를 거부감 없이 섭취할 수 있었던 개체들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열량을 확보하여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가설을 분자생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가 바로 2021년 Nutrients지에 게재된 Human Evolution and Dietary Ethanol 논문입니다. 이 연구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유전자 변이를 추적했습니다. 약 1,000만 년 전에 지구의 기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아프리카의 울창한 숲이 줄어들고 사바나 형태의 초원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 위에서 내려와 땅에 떨어진 과일을 주워 먹어야 하는 생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땅에 떨어진 과일은 나무에 매달린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방치되어 있었고, 그만큼 효모에 의한 발효가 과도하게 진행되어 에탄올 농도가 매우 높은 상태였습니다.
만약 이 알코올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한다면 영장류는 쉽게 취해 심신이 미약해질 것이고, 이는 포식자의 표적이 되어 죽음을 맞이함을 의미했습니다. 만약에 알코올을 효율적으로 분해해서 심신에 이상이 생기지 않고 훌륭한 에너지원으로 사용을 할 수 있다면 그 개체는 무리의 지배계층이 되고 더 오래 생존할 수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알코올 대사가 생존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알코올을 대사하는 효소인 ADH4 (Alcohol Dehydrogenase 4)유전자에 하나의 아미노산 변이(대략 7배에서 40배까지 분해 능력이 향상됨)가 발생합니다. 이 변이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고농도의 에탄올이 함유된 발효 과일을 먹고도 취해서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그 안의 풍부한 칼로리를 안전하게 흡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알코올 대사 능력의 급증은 인류 조상이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 사바나 환경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만든 결정적인 생존 무기였던 셈입니다.
더들리 교수와 연구진은 이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2025년 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Ethanol ingestion via frugivory in wild chimpanzees 논문에서 영장류의 실제 생태와 행동 관찰을 통해 검증합니다. 논문에서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야생 침팬지 무리를 수년간 추적하며 그들의 먹이 섭취 행태를 정량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야생 침팬지들은 단순히 우연히 알코올을 맛보는 수준을 넘어서, 숲속에서 자연적으로 발효된 과일을 매우 정기적이고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섭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침팬지들이 먹는 발효 과일의 에탄올 농도와 하루에 소비하는 과일의 양을 계산한 결과, 야생 침팬지는 매일 평균 약 14g의 순수 알코올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알코올 14g은 표준 잔(Standard Drink) 1잔에 부합하는 양으로, 맥주 400ml, 와인 한 잔, 혹은 양주 한 잔에 들어있는 알코올의 양과 동일합니다. 이는 인간으로 치면 매일 양주를 1~2잔씩 꾸준히 마시는 것과 다름없는 양입니다. 매일 혼자 양주를 1~2잔씩 마시는 사람을 우리는 애주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분류합니다. 놀랍게도 야생 침팬지들은 이미 수백만 년 전부터 매일 양주 1~2잔을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대의 알코올 중독 문제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고도적응형 알코올 중독의 부작용일 수 있습니다. 고도적응형 알코올 중독이란 겉으로는 일상생활, 직장 생활, 대인관계를 완벽하게 수행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알코올에 강하게 의존하고 매일 일정량 이상의 술을 소비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과거 과일 속에 함유된 저농도의 알코올은 칼로리 획득을 돕는 유익한 신호였고, 이를 선호하는 개체들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에탄올과 과일의 과당은 유사한 신경 자극과 중독적 반응을 일으켜 효율적인 영양 섭취를 유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고농도의 정제된 술을 무제한으로 얻을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생존을 위해 발달했던 알코올을 향한 강력한 적응 본능이 현대의 과잉 공급과 만나면서 통제 불가능한 중독으로 변질되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괘락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현대의 인간은 효과적인 에너지원을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였던 과거 알코올 향에 적응되어 있는 뇌에 보상회로에 의한 괘락추구가 더해져서 알코올 향을 과거 알코올에 대한 긍정적 신호로 덮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시작된 천연 마약에서 현재 합성마약과 신종마약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이 참으로 닮아 있습니다.
결국 현대 인류가 겪고 있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과 오남용 문제는 진화적 부조화에서 비롯된 비극일 수 있습니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과 지금의 야생 침팬지들이 마주하는 알코올은 과일 속에 0.5%~3% 내외로 희석되어 있는 자연의 산물이었습니다. 발효 과일을 배부르게 먹어도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던 시대에는 알코올의 중독성보다 그것이 주는 칼로리의 이점이 훨씬 컸던 것이죠. 그러나 현대 사회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류는 증류 기술을 발견하여 자연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20도, 40도, 심지어 100도의 고농도 알코올을 대량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먹이를 찾기 위해 숲을 헤맬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여전히 사바나 초원에서 굶주리던 술 취한 원숭이에 머물러 있는데, 주변 환경은 고농도 알코올이 쏟아지는 현대 도시로 급변한 것입니다. 알코올 의존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오랫동안 다듬어온 가장 강력한 생존 본능이 현대의 과잉 환경과 충돌하여 오작동하는 현상입니다. 오늘 밤 마시는 술 한 잔에는 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준 고마운 유전자의 흔적과 동시에 현대 사회가 던진 치명적인 함정이 함께 소용돌이치고 있습니다.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은 우리가 왜 알코올의 향과 맛에 끌리는지, 그리고 왜 알코올 남용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진화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답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술잔을 들 때 느끼는 그 즐거움은 사실 숲속에서 잘 익은 과일을 찾아 헤매던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갈망의 메아리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문헌
Dudley, R., The Drunken Monkey: Why We Drink and Abuse Alcohol (Univ. of California Press, 2014).
Dudley, R. & Maro, A. (2021). Human Evolution and Dietary Ethanol. Nutrients, 13(7), 2419.
Maro, A. et al. (2025). Ethanol ingestion via frugivory in wild chimpanzees. Science Advances, 11, eadw1665.월간암(癌) 202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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