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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해외암정보코로나 잡던 mRNA, 암세포 궤멸시키는 숨겨진 '백업 부대' 찾았다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6년 08월 31일 13:32분122 읽음
- mRNA 암 백신의 성공을 이끄는 면역 세포의 이중 방어망 규명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인류를 구원한 일등 공신은 단연 'mRNA 백신'이었다. 이 혁신적인 공로로 개발자들은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 의학계는 이 위대한 기술의 총구를 바이러스가 아닌 '암세포'를 향해 돌리고 있다. 현재 흑색종, 소세포폐암, 방광암 등 치명적인 암을 치료하기 위한 mRNA 암 백신 임상시험이 전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암 백신은 기존 항암제처럼 외부에서 독한 약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환자 자신의 면역력을 극대화하여 암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꿈의 치료법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를 통해 이 mRNA 암 백신이 왜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그 몸속의 숨겨진 비밀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우리 몸의 면역 군대에는 주력 부대가 쓰러져도 즉각 투입되어 암세포를 공격하는 아주 놀라운 '백업(예비군)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암 정복의 든든한 희망이 되어줄 내 몸속 면역 세포들의 치열하고도 똑똑한 방어 전략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현상수배범 전단지를 찍어내는 mRNA 백신
우리가 흔히 아는 독감 백신은 죽거나 약해진 바이러스를 직접 몸에 찔러 넣어 면역력을 기르는 방식이다. 하지만 mRNA 백신은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 백신은 암세포나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일종의 '설계도(전단지)'만을 몸속으로 배달한다.
이 설계도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세포들은 설계도에 적힌 암세포만의 독특한 특징(종양 단백질 조각)을 똑같이 만들어낸다. 그러면 우리 몸의 면역 세포들은 이 단백질 조각을 마치 흉악범의 '현상수배범 전단지'처럼 들고 다니며, 이와 똑같이 생긴 진짜 암세포를 찾아내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정상 세포는 이 단백질 조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된다.
면역 군대의 엘리트 훈련 교관, 'cDC1' 수지상 세포
여기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지상 세포'라는 녀석이다. 수지상 세포는 나뭇가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 몸 면역 군대의 훈련 교관 역할을 한다. 백신을 통해 설계도(mRNA)가 들어오면, 수지상 세포는 재빨리 현상수배범 전단지를 복사하여 전투 부대인 'T세포(암세포 암살자)'들에게 쫙 뿌린다. 전단지를 건네받고 훈련을 마친 T세포들은 마침내 핏속을 돌며 암세포를 색출해 무찌른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 훈련 교관의 역할을 오직 'cDC1'이라고 불리는 아주 특별한 1급 수지상 세포만이 홀로 전담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즉, cDC1 교관이 없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mRNA 암 백신을 아무리 맞아도 전투 부대인 T세포가 출동하지 못해 백신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력 부대가 쓰러져도 백신은 작동한다, 플랜 B의 등장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워싱턴대 의대의 케네스 머피(Kenneth M. Murphy) 교수와 윌리엄 길랜더스(William E. Gillanders) 교수 공동 연구팀은 한 가지 기발한 실험을 진행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면역 군대의 핵심 교관인 cDC1 세포를 몸속에서 완전히 없애버린 쥐에게 mRNA 암 백신을 투여해 본 것이다.
과학자들의 예상대로라면, 훈련 교관이 사라졌으니 암세포를 공격할 T세포 부대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cDC1 교관이 단 한 명도 없는 쥐의 몸속에서도 암세포를 죽이는 T세포들이 엄청난 숫자로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뼈나 근육에 생기는 악성 종양인 육종(Sarcoma)을 말끔히 제거해 버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연구진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1급 교관이 사라졌는데도 누군가가 전투 부대를 완벽하게 훈련시켜 암세포를 궤멸시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추적 끝에 연구진은 마침내 그 숨겨진 구원투수를 찾아냈다. 바로 그동안 조수 역할만 하는 줄 알았던 'cDC2'라는 또 다른 수지상 세포였다.
남의 유니폼을 빌려 입는 마법, '크로스 드레싱'
연구진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cDC2 교관이 T세포를 훈련시키는 방식이었다. 1급 교관인 cDC1은 자기가 직접 설계도를 읽고 전단지를 만들어 T세포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cDC2는 설계도를 직접 읽는 능력이 없었다. 대신 cDC2는 아주 기가 막힌 전략을 썼다. 다른 일반 세포들이 백신 설계도를 읽고 만들어낸 암세포 단백질 조각을 세포 껍질째 뜯어와서 자신의 몸에 덕지덕지 붙여버린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남의 세포막과 단백질을 훔쳐와 자신의 것처럼 위장하는 현상을 '크로스 드레싱(Cross-dressing, 다른 성별의 옷을 입는 것)'이라고 부른다.
cDC2 교관은 이 크로스 드레싱 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현상수배범 전단지 도배판으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T세포들을 완벽하게 훈련시켜 암세포 소탕 작전에 투입시켰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암이라는 무서운 적을 상대하기 위해 주력 부대가 무너지면 곧바로 플랜 B(예비군)를 가동하는 완벽하고도 눈물겨운 이중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강력한 환자 맞춤형 암 백신 시대를 열다
이번 연구는 의학계에 엄청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동안 어떤 환자는 암 백신을 맞고 기적처럼 암이 낫지만, 어떤 환자는 왜 백신이 잘 듣지 않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cDC1과 cDC2라는 두 가지 훈련 교관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투 부대를 훈련시킨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길랜더스 교수는 "이번 발견은 mRNA 백신이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어떻게 쥐락펴락하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단서"라며, "이 두 가지 수지상 세포를 동시에 자극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차세대 암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내 몸속의 아주 작은 세포들은 암 덩어리를 몰아내기 위해 쉼 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노벨상을 휩쓴 위대한 유전자 기술과 내 몸속 면역 예비군의 든든한 협력이, 독한 항암제 없이도 내 몸의 힘만으로 암을 씻은 듯이 물리칠 눈부신 미래를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면역 항암 사전
mRNA(메신저 RNA): 세포가 단백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일종의 '설계도' 복사본이다. 암세포만의 고유한 특징을 담은 mRNA를 백신으로 맞으면, 우리 몸은 암세포의 생김새를 정확히 기억하고 훈련하게 된다.
수지상 세포 (Dendritic Cell): 나뭇가지처럼 수많은 돌기를 가진 면역 세포다. 몸속에 침입한 세균이나 암세포의 찌꺼기를 먹어 치운 뒤, 그 특징을 분석해 T세포(전투 세포)에게 적의 정체를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훈련 교관 역할을 한다.
크로스 드레싱 (Cross-dressing): 원래는 남의 옷을 빌려 입는다는 뜻이지만, 면역학에서는 한 세포가 다른 세포가 만들어낸 항원(적의 찌꺼기)을 고스란히 건네받아 마치 자기가 찾아낸 것처럼 꾸며서 T세포에게 전달하는 아주 똑똑한 정보 공유 기술을 뜻한다.
참조:
Suin Jo, Lijin Li, Chandrani Thakur, Kevin A. Telfer, Hussein Sultan, Ray A. Ohara, Michelle He, Giri Nam, Jing Chen, Feiya Ou, Monia Draghi, Nicholas M. Valiante, Robert D. Schreiber, Gwendalyn J. Randolph, Naresha Saligrama, Theresa L. Murphy, William E. Gillanders, Kenneth M. Murphy. mRNA vaccines engage unconventional pathways in CD8 T cell priming. Nature, 2026; 654 (8118): 485 DOI: 10.1038/s41586-026-10353-6월간암(癌) 202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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