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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의학상식가장 독한 암세포의 아킬레스건, 50년 만에 찾았다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6년 08월 31일 12:23분79 읽음
- 소세포 신경내분비암의 치명적 약점 규명 및 기존 약물 활용 가능성 제시
폐, 전립선, 난소 등에서 발생하는 '소세포 신경내분비암'은 암 환우들과 종양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암으로 꼽힌다. 세포의 크기는 작지만, 분열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초기에 다른 장기로 무섭게 전이되는 탓에 치료가 극도로 까다롭기 때문이다.
미국 UCLA 의과대학의 오웬 N. 위트(Owen N. Witte) 교수는 "의대생 시절이던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암의 생존율 통계는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만큼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독한 암을 멈춰 세울 뾰족한 무기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위트 교수가 이끄는 UCLA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이 끈질긴 암세포가 숨기고 있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마침내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독한 암세포를 스스로 붕괴시킬 수 있는 아주 놀랍고도 영리한 공격 루트가 열린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그리고 남겨진 단 하나의 엔진
소세포 신경내분비암이 그토록 맹렬하게 증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포 내부에 있는 'RB'라는 유전자가 고장 나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RB 유전자는 세포가 무분별하게 분열하지 못하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브레이크가 파열되었으니 암세포는 폭주 기관차처럼 미친 듯이 분열하며 몸집을 불려 나간다. 그런데 UCLA 연구진은 이 폭주 기관차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 아주 흥미로운 약점을 하나 발견했다. RB 브레이크가 망가진 암세포들은 살아남기 위해 'E2F3'라는 특정 단백질(엔진)에 병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세포라면 여러 개의 엔진을 번갈아 쓰겠지만,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이 독한 암세포는 오직 E2F3라는 단 하나의 엔진에만 목숨을 걸고 폭주하고 있었다.
다리의 두 기둥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합성 치사'의 마법
연구팀은 즉각 실험실에서 이 얄미운 암세포의 유일한 엔진인 E2F3를 인위적으로 차단해 보았다. 그러자 무섭게 증식하던 암세포들이 일순간 분열을 멈추더니, 뿔뿔이 흩어지며 완전히 사멸해 버렸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두 가지 유전적 결함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 세포가 죽어버리는 현상을 '합성 치사(Synthetic Lethality)'라고 부른다.
원리는 간단하다. 거대한 다리를 떠받치는 기둥이 여러 개 있다고 상상해 보자. 기둥 하나(RB 유전자)가 무너져도 다리는 어찌어찌 버티며 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은 하중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던 또 다른 핵심 기둥(E2F3 단백질)마저 부숴버리면 다리는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즉, 암세포 입장에서는 브레이크(RB)가 없는 것까지는 견딜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엔진(E2F3)마저 빼앗기자 도저히 생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상 세포는 RB 브레이크가 멀쩡히 살아있으므로 E2F3를 공격받아도 끄끄떡없이 살아남는다. 오직 암세포만을 골라서 타격하는 완벽한 표적 치료의 길이 열린 셈이다.
미니 장기로 재현한 암세포의 생태계
사실 그동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이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실험실에서 이 독한 암세포를 제대로 배양하고 연구할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UCLA 연구진은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을 바쳤다. 인간의 정상 전립선 세포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해 RB 유전자를 없애는 등 실제 환자의 암세포와 똑같은 환경을 조작했고, 이를 3차원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로 키워내 쥐에게 이식했다. 실제 인간의 몸속에서 암이 자라는 과정을 완벽하게 재현한 훌륭한 시뮬레이션 무대를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이 정교한 무대 위에서 무려 1,400여 개의 유전자를 하나하나 껐다 켜보는 방대한 추적 작업을 거쳤고, 그 결과 폐암, 전립선암, 난소암 등 장기는 달라도 소세포 신경내분비암이라면 모두 E2F3라는 공통된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는 위대한 사실을 밝혀냈다.
류마티스 약이 항암제로? 지름길을 찾아낸 신약 개발
아킬레스건을 찾았지만 한 가지 현실적인 장벽이 남아있었다. 불행히도 현재 전 세계 제약 시장에는 E2F3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암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지 않다. 신약을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려면 앞으로 또 십수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우회로를 찾았다. 암세포가 DNA를 복제할 때 사용하는 'DHODH'라는 효소를 억제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암세포 내의 E2F3 수치가 뚝 떨어지며 암 덩어리의 성장이 멈추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 발견이 더욱 반가운 이유는 레플루노마이드, 테리플루노마이드 등 DHODH를 억제하는 약물들이 이미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시판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사람의 몸에 안전하다고 검증이 끝난 기존 약물을 항암제로 방향만 살짝 틀어 사용하는 '약물 재창출' 방식을 활용한다면, 절망에 빠진 환자들에게 훨씬 더 빠르고 신속하게 새로운 희망을 쥐여줄 수 있다.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반격이 시작되다
물론 이 획기적인 발견이 당장 내일 병원의 표준 치료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존 약물이 얼마나 항암 효과를 내는지 확인하는 추가적인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려 50년 동안이나 끄떡없던 거대한 바위에 마침내 균열을 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정을 찾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종양학계는 크게 고무되어 있다. 암세포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만들어낸 생존의 꼼수가 도리어 자신을 파괴하는 훌륭한 과녁이 되었다는 사실은, 포기하지 않는 기초 과학의 끈기가 지독한 암을 굴복시킬 날이 머지않았음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에서] 쏙쏙 이해되는 최신 종양학 사전
합성 치사 (Synthetic Lethality): 두 개의 유전자가 동시에 제 기능을 잃었을 때만 세포가 죽는 현상이다. 암세포는 이미 유전자 하나(RB)가 망가진 상태이므로, 남은 하나의 유전자(E2F3)를 약물로 공격하면 정상 세포는 다치지 않고 오직 암세포만 족집게처럼 골라 죽일 수 있다.
약물 재창출 (Drug Repurposing): 이미 시판되어 안전성이 입증된 다른 질병의 치료제(예: 관절염 약)를, 전혀 다른 질병(예: 암)의 치료제로 용도를 바꿔 사용하는 신약 개발 전략이다. 개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환자들에게 신약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 (Organoid): 환자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3차원으로 배양하여, 실제 장기나 종양의 구조와 기능을 콩알만 한 크기로 똑같이 재현해 낸 '미니 장기'다. 환자에게 직접 항암제를 투여하기 전에 오가노이드에 먼저 시험해 봄으로써 부작용을 줄이고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참조:
Evan R. Abt, Liang Wang, Grigor Varuzhanyan, Jack Freeland, Tian He, Guadalupe M. Peña-Garcia, Lauryn Ruegg, Jami McLaughlin, Donghui Cheng, Nikolas G. Balanis, Chia-Chun Chen, Yang Xu, Yi Xing, Sanaz Memarzadeh, Caius G. Radu, Thomas G. Graeber, Owen N. Witte. Synthetic lethality between RB-loss and E2F3 inhibition in small cell cancers targeted by pyrimidine synthesis blockad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6; 123 (12) DOI: 10.1073/pnas.2532814123월간암(癌) 202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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