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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의학상식스스로 폭발해 내성 유전자 퍼뜨리는 세균의 생존술 규명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6년 05월 29일 16:41분65 읽음
- 항생제 내성 확산의 핵심인 ‘유전자 전달 인자(GTA)’ 방출 메커니즘 발견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환우들에게 ‘감염’은 암세포만큼이나 두려운 적이다. 독한 항암제로 인해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평소라면 가볍게 이겨냈을 감기 바이러스나 세균조차 치명적인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이때 환우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동아줄은 세균을 죽이는 약, ‘항생제’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병원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해도 죽지 않는, 이른바 ‘항생제 내성균(슈퍼박테리아)’이 급증하며 심각한 보건 위협이 되고 있다. 도대체 세균들은 어떻게 이토록 빨리 항생제에 맞서는 내성 유전자를 공유하며 진화하는 것일까?
최근 영국 존 이네스 센터(John Innes Centre)를 비롯한 국제 공동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Micro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그 끔찍하고도 놀라운 비밀이 밝혀졌다. 세균들이 동료들에게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폭발(세포 용해)’시키는 극단적인 희생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성 유전자를 싣고 달리는 택배 상자, ‘GTA’
세균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유전자(예: 항생제를 분해하는 능력)가 생기면 이를 혼자만 가지고 있지 않고 주변의 다른 세균들에게 나누어주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라고 한다. 이때 유전자를 포장해서 배달하는 역할을 하는 아주 특수한 택배 상자가 바로 ‘유전자 전달 인자(GTA, Gene Transfer Agents)’다. 재미있게도 이 GTA는 원래 먼 옛날 세균을 괴롭히던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영악한 세균들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이 바이러스를 길들였고, 이제는 독성을 빼버린 채 오직 자신들의 유전자를 이웃 세균에게 안전하게 배달하는 유용한 수송선으로 부려 먹고 있다.
동료를 위해 기꺼이 폭발하는 세균의 희생정신
연구팀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세균의 몸속에서 만들어진 이 택배 상자(GTA)가 어떻게 두꺼운 세포벽을 뚫고 밖으로 빠져나오는가?"였다. 관찰 결과, 놀랍게도 세균은 택배 상자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터뜨리는 ‘세포 용해(Lysis)’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즉, 항생제에 저항할 수 있는 소중한 내성 유전자를 담은 GTA를 주변의 수많은 동료 세균에게 퍼뜨리기 위해, 자기 자신은 기꺼이 폭발하여 목숨을 바치는 이타적이고 치명적인 생존 전술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폭발을 지휘하는 통제 센터, ‘LypABC’의 발견
연구팀은 첨단 유전자 분석 기술을 이용해 세균 내부에서 이 자폭 스위치를 누르는 통제 센터를 찾아냈다. 바로 ‘LypABC’라고 불리는 3개의 유전자 클러스터(군집)다.
실험을 통해 이 LypABC 유전자를 제거해 버리자, 세균은 더 이상 폭발하지 않았고 유전자 택배 상자(GTA)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반대로 이 유전자 시스템을 과도하게 활성화하자, 수많은 세균이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LypABC가 세균의 폭발과 유전자 배달을 총지휘하는 마스터 스위치였음이 완벽하게 증명된 것이다.
무기를 배달 도구로 개조한 세균의 무서운 적응력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이 폭발 스위치(LypABC)의 원래 용도에 있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 통제 시스템의 구조는 본래 세균이 외부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낼 때 사용하는 ‘세균의 면역 시스템’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논문의 제1저자인 엠마 뱅크스(Emma Banks) 박사는 “세균의 면역 시스템처럼 생긴 물질이, 오히려 항생제 내성을 퍼뜨리는 GTA 입자를 방출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즉, 세균들은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신들의 면역 무기를 개조하여, 동료들과 생존 DNA를 공유하는 자폭 배달 장치로 용도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것이다. 세균들의 환경 적응력이 얼마나 유연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감염의 고리를 끊어낼 새로운 항생제의 단서
세균이 어떻게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주고받는지 그 가장 핵심적인 통제 타워(LypABC)를 찾아냈다는 것은 현대 의학에 엄청난 돌파구를 제시한다.
만약 미래의 제약 회사들이 세균의 이 폭발 스위치(LypABC)가 아예 작동하지 못하도록 꽉 묶어버리는 새로운 약을 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균들은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더라도 이를 다른 세균들에게 퍼뜨리지 못해 그들 세대에서 전염이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항암 치료 중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감염의 공포 앞에서 항생제는 환우들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다. 진화를 거듭하며 내성을 퍼뜨리는 세균들의 그 끈질기고 교활한 생존술마저 분자 단위에서 낱낱이 파헤치고 차단하려는 과학자들의 위대한 노력이, 머지않아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암 환우들이 2차 감염의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내일을 매우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편집실 메모] 쏙쏙 이해되는 감염 관리 용어 사전
항생제 내성 (AMR, Antimicrobial Resistance): 세균(박테리아)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자신을 죽이는 약인 '항생제'에 저항하는 능력을 갖추는 현상입니다. 내성을 가진 세균(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면 기존의 약이 듣지 않아 치료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유전자 전달 인자 (GTA): 세균이 자신의 유전자(DNA)를 다른 세균에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택배 상자'입니다. 겉모습은 바이러스처럼 생겼지만, 감염을 일으키지 않고 유전자만 배달합니다.
세포 용해 (Lysis): 세균이나 세포가 세포막을 스스로 터뜨려 산산조각 나는 현상입니다. 세균은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몸속에 만들어둔 내성 유전자(GTA)를 밖으로 퍼뜨립니다.
참조:
Emma J. Banks, Pavol Bárdy, Ngat T. Tran, Phuong M. Nguyen, Boris Stojilković, Kevin Gozzi, Abbas Maqbool, Tung B. K. Le. A bacterial CARD–NLR-like immune system controls the release of gene transfer agents. Nature Microbiology, 2026; DOI: 10.1038/s41564-026-02316-4월간암(癌) 2026년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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