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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방화복, 독성화학물질의 경고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6년 03월 31일 17:17분91 읽음
우리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을 영웅이라 부른다. 그들은 1,000도가 넘는 열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방화복을 입는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발암 물질(PFAS)을 피하려다 또 다른 독성 물질(브롬화 난연제)을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전을 위한 갑옷이 오히려 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된 사연을 추적했다.

영웅의 숨겨진 적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착용하는 방화복(Turnout Gear)은 생명줄과 같다. 겉감은 불을 막고, 중간층은 물과 세균을 차단하며, 안감은 체온을 조절한다. 이 3중 구조의 갑옷 덕분에 소방관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2월 16일, 환경 과학 및 기술 서한(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Letters)에 발표된 연구는 이 믿음에 균열을 일으켰다. 미국 내 소방관들이 착용하는 최신 방화복에서 심각한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브롬화 난연제(Brominated Flame Retardants)’가 다량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소방관들이 오랫동안 우려해 온 ‘화학 물질 노출’을 공식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사례이자, 우리가 외면해 온 공공 안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PFAS를 피하니 BFR이 기다렸다
지난 수년간 소방관 커뮤니티의 최대 화두는 ‘영원한 화학물질’이라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AS)이었다. 방수 및 내화 기능을 위해 방화복에 사용된 PFAS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2027년부터 PFAS가 포함된 방화복 구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조업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PFAS Free(PFAS 무함유)’ 제품을 내놓으며 안전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듀크대학교 니콜라스 환경대학원의 헤더 스테이플턴(Heather Stapleton) 교수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한 제조업체가 PFAS를 뺀 자리에 브롬화 난연제를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연구팀은 2013~2020년 사이에 제조된 구형 소방복과, 2024년에 ‘PFAS Free’로 출시된 신형 소방복을 수거해 정밀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신형 소방복, 특히 습기 방지층(중간층)에서 예상치 못한 수준의 브롬화 난연제가 검출된 것이다.

새로운 독성 물질, DBDPE의 정체
연구팀이 찾아낸 주요 성분은 ‘데카브로모디페닐에탄(DBDPE)’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이 물질은 PFAS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입된 대체재였다. 제조업체는 난연(불에 잘 타지 않는)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이 화학물질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DBDPE의 안전성이다. DBDPE는 독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퇴출당한 ‘데카BDE’와 화학적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중국의 화학 공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DBDPE 노출은 갑상선 호르몬 체계를 교란하고 갑상선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발달 저해와 암 유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테이플턴 교수는 “제조업체들이 DBDPE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며, “이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물질을 섣불리 대체재로 사용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중고(Double Whammy), 연기 속의 독, 옷 속의 독
이번 연구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다. 소방관들은 ‘제조된 독’과 ‘환경적 독’의 이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신형 소방복의 내부 층에서는 제조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첨가된 브롬화 난연제가 검출되었다. 이는 땀이나 마찰을 통해 피부로 흡수될 위험이 있다. 구형 소방복(2013~2020년산)의 겉감에서는 제조 당시 넣은 것보다 더 많은 난연제가 검출되기도 했다. 이는 화재 현장에서 건물이 탈 때 나오는 유독 가스와 그을음이 옷에 들러붙어 축적된 결과다. 결국 소방관들은 밖에서는 화재 연기가 뿜어내는 독소에, 안에서는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방화복이 내뿜는 독소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었던 셈이다.

안전의 비용, 누가 감당할 것인가
이 연구 결과는 일선 소방서에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소방복 한 벌의 가격은 수천 달러(수백만 원)에 달한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기존 장비를 폐기하고 새로운 장비로 교체하는 것은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다. 게다가 ‘PFAS Free’라고 해서 샀더니 또 다른 독성 물질이 들어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사야 한단 말인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R. 브라이언 오몬드 교수는 “소방서는 이제 재정적 비용뿐만 아니라 대원의 ‘장기적인 건강 비용’까지 계산기에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다행히 일부 제조업체는 PFAS와 브롬화 난연제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Clean Gear’를 개발하고 있다. 스테이플턴 교수는 제조업체의 투명한 성분 공개와 소방 당국의 깐깐한 요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방관들은 이미 직업적 특성상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입는 옷만큼은 그들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며,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소방관의 건강을 위한 체크포인트
이 기사를 읽는 독자 중 소방 관계자가 있다면 다음 사항을 주목해 주세요.

성분 확인: 신규 방화복 도입 시, ‘PFAS Free’ 문구만 확인하지 말고 ‘할로겐 프리(Halogen-free)’ 또는 ‘브롬화 난연제 미사용’ 여부를 제조사에 문의하세요.
세탁과 관리: 화재 현장에 다녀온 방화복은 외부 오염물질(그을음 등)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제조사의 지침에 따라 철저히 전문 세탁을 진행해야 피부 흡수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환기: 장비 보관실은 충분히 환기하여 휘발성 화학물질이 실내에 머물지 않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참조:
Nicholas J. Herkert, Sharon Zhang, Nur-Us-Shafa Mazumder, R. Bryan Ormond, Derek Urwin, Heather M. Stapleton. 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 (PFAS) and Brominated Flame Retardants (BFRs) in Firefighter Turnout Gear: Two Chemical Classes of Concern to Consider. Environmental Science, 2025; DOI: 10.1021/acs.estlett.5c01153
월간암(癌) 202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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