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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소신(所信)을 가지고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12월 12일 19:36분877,903 읽음
신 영_시인이며 수필가. 남편 백혈병 2년 투병 중. 보스턴에 살고 Boston Korea신문에 칼럼연재. 저서 시집『하늘』, 수필집『나는 ‘춤꾼’이고 싶다』등.


해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은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언정 그래도 늘 꿈은 꾸어보는 것이다. 커다란 꿈이 아닐지라도 작은 꿈 안에서의 시작은 설렘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다. 시작은 늘 새롭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가슴 벅찬 감동으로 꿈틀거리는 것이다. 캄캄하던 어둠 속에서 새벽을 열고 일어서는 ‘일출’을 보면 살아있음이, 호흡하는 일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바로 신(神)과 인간(人間)인 우리의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이 이어주는 하나의 나눔인 것이다.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로움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 되어 나누는 사랑인 것이다.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희망과 소망 그리고 꿈이 흘러 일렁이는 일처럼….

문득, 새해에는 무슨 소망을 가질까. 혼자 막연한 소망을 떠올려 보았었다. 사실,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아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찾아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생각마저도 내 뜻만은 아닐 터, 곰곰이 생각을 찾아가니 이제는 새해의 소망이 조금은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내가 믿고 생각하는 것을 변함없이, 한결같이 지켜나가는 일 말이다. ‘말(言)이 말씀(信)이 되어 내 몸과 마음을 하나로 세우신 것처럼…’ 그렇게 소신(所信)을 가지고 살아가는 2008년도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작은 소망으로 그러나 ‘큰 꿈’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다. 걷다보면, 가다보면, 돌 뿌리도 만나고 엉겅퀴도 만나고 무서운 풍랑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위를 바라보면 늘 파란 하늘에 햇살이 아래를 향해 비치고 있음을 알기에 소신껏 걸어 갈 것이다. 돌 뿌리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엉겅퀴 가시에 찔려도 닦아내며 또 걸어 갈 것이다. 혹여, 풍랑을 만나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알기에 저 파란 하늘과 맑은 햇살을 바라보며 잠잠히 다가오는 희망과 소망을 꿈꾸면서 걸어 갈 것이다. 소신(所信)을 가지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걸어가리라.

얼마 전, 사춘기에 있는 큰 녀석이 엄마와 얘길 나누다 서로의 의견이 엇갈렸다. 헌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엄마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너무도 화가 일었다.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속에서는 불이 나고 있었다. 마음을 누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냈다.
“이 녀석이 지금 엄마한테 뭐 하는 행동이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들다니?”
이렇게 견딜 수 없는 억울함과 배신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대답을 해온다.
“엄마, 엄마가 늘 내게 그렇게 말해 주었잖아요. 학교에서나 그 어느 곳에서라도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너의 생각을 선생님이나 어른께도 확실히 해야 한다고요?”
하는 것이었다. 정말 그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늘 그렇게 말을 해주었다. 사람이 무서워 말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이다. 이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내 가슴의 불을 끄며 식히고 있었다.
“그래, 늘 엄마가 그렇게 말했지, 너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엄마가 이번 일에는 미안하구나!”
하며 엄마인 나와 아이와 더 깊고 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속마음으로는 내심 고마웠다. 녀석이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소신(所信)있게 표현할 수 있는 행동에 고마움마저 들었었다.

가끔 사적인 자리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 모임이 있으면 즐거움도 감사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에 대한 실망도 크게 느끼는 일들이 종종 있기도 하다. 남자, 여자를, 어린아이를, 노인을 구분짓지 않더라도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좋으나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만을 내세우면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내 놓았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펴지 않고 상대방 눈치만 살피는 경우는 바라보는 사람을 때론 숨을 막히게도 한다.
그 사람이 더욱이 내가 믿고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더욱 실망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소신(所信)인 것이기에 상대방의 눈치를 살필 일도, 필요 이상의 다른 사람의 생각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게 개인적인 감정이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님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 그 ‘믿음’이 다른 이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넉넉한 마음이리란 생각을 한다. 이것뿐일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거니와 그 어떤 신앙이나 종교의 관계에서도 그렇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믿는 신앙(神)관이 확실하다면 다른 것을 탓하기 전 내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묵상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그 믿음 안에서 한결같은 마음이 곧 ‘믿음’이리란 생각을 잠깐 가져보는 것이다. 늘 부족한 내 자신을 들여다보며 새해에는 더욱 맑아지기를 소원해 보는 것이다. 내 마음과 뜻과 온 정성을 다해 사람이든, 神이든 그 누구 앞에서라도 당당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보는 것이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부끄럽지 않은 하루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마음의 소망으로 두 손을 모아보면서….
월간암(癌)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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