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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모현 사랑방 꿈을 꿉니다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12월 12일 19:13분878,611 읽음

박스텔라수녀 | 경기도 포천의 모현호스피스 원장.

 

모현의 사랑방에서 꿈을 꿉니다. 창가에 햇살이 들어오고 커피향이 가득한 모현의 카페입니다. 올 한해도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모든 분들과 그 가족 모두에게 꿈과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힘들지라도 사랑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곳은 삶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말기 환자들을 모시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가족들로부터 환자 입원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습니다. 대답을 해드리고 나면 간병인이란 문턱에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오고 싶은데 간병할 사람이 없어서 못 오겠다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듯합니다.

우리들이 맨 처음 입원병동을 시작할 때는 간병인 없이 우리들의 힘만으로 환자분들을 보살피려 계획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모현의 가족이 되어 우리와 함께 환자들을 돌볼 간병인이 필요하지만 역시 경제적인 문턱에서 수도자인 저도 넘어졌습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실내정원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리움들이 넘실대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 가슴에 와 떨어집니다. 화분 하나하나에 그분들의 모습과 추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고, 그분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가슴 찡한 그리움들이 아른거린답니다. 삶이란 이렇게 그리운 벗들을 그립다고 말할 수 있고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말기암환자들과 가족들은 오랜 병원생활과 항암치료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굉장히 작은 일에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예민하게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대부분 직장문제로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통증에 시달리거나 정신적으로 힘든 병자를 24시간 돌본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때로는 6개월에서 1~2년 넘도록 환자를 돌보며 힘들어 하는 가족들을 뵐 때면 저분들을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나, 환자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드릴 수 있을까 하는 번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 모두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해결방법을 꿈꿔봅니다. 이제 이 꿈을 구체적으로 꾸게 된지도 3년이 지나갑니다. 꿈을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계속 가지고 갑니다.

왜냐면 하늘나라에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하고 계실 테니까요. 하늘나라에 계신 분들의 미소와 눈빛을 기억합니다. 못다 한 속 깊은 속삭임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덩어리 마음들을 기억합니다. 이 분들이 저에게 삶을 인도해주고 가르쳐준 길이 있습니다.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때로는 삶이 힘들어질 때 이분들의 수정같이 맑은 눈빛을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제가 일상의 작은 삶 안에서 죽어 살지 못한다면 절대로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 준비는 지금 이 현실에서 하는 것입니다. 말기 암환자들에게만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주어진 현실에서 죽어 살지 못하면 삶의 정리와 준비된 죽음은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저의 삶, 하루를 마감하면서 오늘은 무엇에 죽지 못하고 싸웠는지 무엇을 움켜쥐고 살았는지 주님 앞에 보따리를 펼쳐 보이며 한없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도 행복해하고 다시 하루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분이 계시기에….
 

모현호스피스(//www.mhh.or.kr) | ☎ 031)535-0066 |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153-3

월간암(癌)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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