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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신독(愼獨) 혼자 있을 때에도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11월 17일 15:24분878,382 읽음
신 영_시인이며 수필가. 남편 백혈병 2년 투병 중. 보스턴에 살고 Boston Korea신문에 칼럼연재. 저서 시집『하늘』, 수필집『나는 ‘춤꾼’이고 싶다』등.

부모라는 이름은 가정이라는 작은 공간에서의 큰 울림이다. 나무와 가지처럼 함께 있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아름답고 귀한 생명의 흐름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처럼 살과 피를 나눈 한 생명의 분신임이 틀림없는 일이다. 가정도 그렇지만 그 어느 곳에서든 누군가 나를 믿고 따르는 일 그리고 사랑을 받는 일은 큰 책임감을 갖게도 한다. 가정이라는 공간에서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무엇인가 말을 했을 때, 아이들이 보고 듣고 배우기 때문에 행동하기에 앞서 책임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다.

물론 집안에서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나 일보다는 밖에서의 생활은 더욱 간단할지도 모를 일이다. 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의 단체 모임인 밖의 활동은 각자의 맡은 부분에서 성실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의 깊은 곳을 보여줄 일도, 보여 줄 이유도 없기에 맡겨진 일에 충실히 담당하면 그 사람의 몫은 최선의 최고의 역할을 마친 것이다. 때로는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묵상의 시간을 갖게 되면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내 자신과 또 내가 모르고 있는 내 자신이 있다. 남이 나를 모르는 내 자신과 남에게 보이는 내가 있기에 때로는 똑같지 않은 내 속에서 고민을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꼭 이중성격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상황에 따라서 행동의 여지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예를 들자면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 비춰진 신앙인들의 모습은 가끔 이처럼 보이기 쉽다. 가정에서 부부가 같은 종교에 있지 않을 경우는 더욱 더 그 모습은 정확하게 보이는 것이리라. 그 어느 종교 모임에서의 ‘환하고 평화스런 얼굴’ 또 다른 이면에서는 ‘평화스런 얼굴의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찌 신앙/종교 안에서만 그러할까. 사람들이 만나 가는 관계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로 서로간에 미치는 영향이 높은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기도 하며 때로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해의 폭이 더욱 넓어져 좋은 관계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끔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으다 보면 어찌 이리도 생각 속에 ‘욕심의 마음’들이 많은지 그만 깜짝 놀라고 만다. 남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몸가짐이나 말씨도 의식적으로라도 챙기게 되는 것이다. 헌데, 중요한 것은 혼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를 생각하지도 못한 채 바쁜 마음으로 살아왔다. 어느 날 문득 혼자 있을 때의 나의 생각과 행동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욕심과 아집과 편견과 어리석음과 게으름으로 있는 나 자신의 ‘욕망과 욕정’들에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을 때 나는 내 자신에게 소스라치듯 놀라고 말았다.

“남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인욕(人欲)과 물욕(物欲)에 빠지지 않고 삼간다”는 뜻을 지닌 “신독(愼獨)”은 내 자신에게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귀한 묵상으로 안내를 한다. 여럿이 있을 때는 남을 의식하기에 자기 자신을 자중하기도 하고 다스리기가 쉽지만, 혼자 있을 때의 자신의 숨은 ‘욕심과 욕정’들은 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죄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 청소년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더욱이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외에 무엇을 하는지 살피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리라. 너무도 급속도로 달려가는 현대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모든 것이 편리한 만큼 무엇인가 잃어버리는 것 같은 상실감에 사로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에 대한 불신 이전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현대문명에 부모인 자신이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고백을 가끔 한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그 어떤 神,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고백이기도 하지만, 어떤 특별한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삶을 살아오면서 겪는 경험에서의 일일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건강이나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등)들이 닥쳐 캄캄하고 암담한 터널을 지날 때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자식도 내 마음대로 말을 들어주지 않아 고민하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안한 사회와 세계 속에서 나를 든든히 지키며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신독(愼獨)”의 혼자 있을 때에도 여럿이 있을 때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안으로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 옛 말처럼 늘 같은 마음의 중심과 무게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게다. 혼자 있을 때에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참 神을 믿는 신앙인이길 마음을 모아보면서.
월간암(癌)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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