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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식해(食醢) 유감(遺憾)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3년 05월 09일 15:54분2,946 읽음
글: 김 철 우(수필가)

남도의 사찰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고 있다. 때로는 절집에 들러 하룻밤 머물기도 하고, 한나절 절집 마당을 서성이다가 돌아서기도 한다. 그런 일정 중에 근처의 유명한 맛집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들르는 편이다.

지난봄 부산 금정산 주변의 먹거리를 찾다가 한 식당 이름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북한음식’이란 상호는 어린 시절 겨울을 기다리게 했던 가자미식해(食醢)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부산이란 지역도 북한음식에 대한 기대를 높이게 하는 요소였다. 전쟁 막바지에 함흥이나 성진에서 배에 오른 피난민들을 내려놓은 항구가 바로 부산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아직도 부산은 함경도 실향민들의 거주 분포가 높은 편이다. 만약 당시의 실향민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면 제대로 된 가자미식해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전화로 가자미식해를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나자 기대감에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졌다.

함경도 실향민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자미식해의 맛을 알 수 있었다. 김장 때가 되면 우리 집은 마당 한구석에 장독을 묻고 배추 김장과 별도로 가자미식해를 담갔는데, 그때의 가자미식해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날 장독에서 바로 꺼내온 가자미식해는 살얼음이 맺혀 있었다. 충분히 삭혀져 꼬들꼬들해진 가자미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더구나 오독오독 씹히는 무와 입안을 더욱 풍성하게 하던 조밥과의 조화는 새콤하면서도 매운 감칠맛을 지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먹기 힘들 정도로 큰 가자미 뼈만 밥그릇 옆에 쌓아두고서야 밥상을 떠나던 당시는 가자미식해 하나만으로 겨울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집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음식이었다.

또한, 함경도 출신 실향민 부모를 둔 친구들과는 가자미식해를 먹어봤다는 것만으로 강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라온 내 가슴에는 딱히 고향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을 여유가 없었고, 강렬한 미각을 따라 어렴풋이 고향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삭혀서 밥알을 띄워 먹는 전통 음식인 식혜(食醯)과 구분하지 못해 ‘생선이 들어간 식혜’를 떠올리고 얼굴을 찡그리던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내 웃음이 먼저 터지곤 했다. 아버지 고향에 관한 것이라곤 오로지 가자미식해뿐이었던 내 어린 날의 기억은 고향에 대한 개념뿐만 아니라 바로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추운 겨울날 밥상에서의 기억을 지울 수 없으니 말이다.

요즘 시중에서 판매하는 가자미식해는 무나 조밥은 거의 없이 작은 가자미 토막만 잔뜩 넣거나, 조밥만 입에 가득 씹혀 실망스럽다. 음식이란 조화이며 추억이라는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들어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음식 맛을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마침 ‘북한음식’이란 간판을 찾아낸 것이다.

식당은 버스 종점에서 가까웠다. 절집 구석구석을 걸으며 적당히 공복이 된 것도 더욱 기대를 높이게 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실향민 1세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북한음식’이라는 상호를 쓰게 되었는지 묻자 ‘시어머니 고향이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함경도에서 피난 내려온 시어머니에게 북한 음식을 배웠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월 앞에 스러지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의 맛을 되살리려 노력했을 시어머니는 이제 며느리에게 가게와 요리비법 등을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며느리인 주인아주머니가 과연 제대로 가자미식해를 배웠을까? 그리고 그 맛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국밥을 주문하고 반찬으로 나온 가자미식해의 맛을 본 순간, 지나치게 시고 짠맛이 강해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식해가 아무리 저장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짠 음식은 근래 들어 처음이었다. 신맛이야 봄까지 식해를 저장하기 어려워 신맛이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되지만, 짠맛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맛을 보자마자 괴로워하는 내 표정을 보았는지 주인아주머니는 냉장고에 넣어둔 것이라며 새 식해를 꺼내준다. 그런데 새로 올려진 식해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배춧잎 하나가 가자미식해 위에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배춧잎의 용도를 묻자 아무렇지 않은 듯 ‘잘못해서 들어간 것 같다’고 대답한다. 실수로 김장김치와 섞인 것인지 아니면 강한 매운맛을 잡기 위해 배추를 넣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 것보다 신맛은 덜했지만 몸서리쳐질 정도로 짠맛은 그대로였다. 나아진 것이라고는 냉장고에 보관한 까닭에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것뿐.

식사를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식사를 서둘렀다. 시장기만 가신다면 미련없이 일어서겠다는 마음이 스스로 재촉했는지도 모르겠다. 배추김치가 올려진 가자미식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젓기도 하고 뚝배기에 얼굴을 묻고 정신없이 국밥을 먹으면서도 다시는 식해에 손이 가지 않았다.

식당 문을 나서며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누굴 탓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 역시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을 뿐, 맛을 보존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맛을 보존하는 것이 바로 추억을 보존하는 것임을 그땐 몰랐었다. 가자미식해를 담는 날 어머니 옆에 앉아 각종 재료의 무게라도 달아 우리 집 표준 조리법이라도 만들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인터넷에 홍수처럼 떠 있는 ‘가자미식해 만드는 법’을 검색해봐도 4인 기준의 정확한 무게와 양을 공개한 곳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또 가자미 고르고 손질하는 법이나 보관 방법 등 맛의 보존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곳은 더욱 찾을 수 없다.

부모님 고향의 맛을 지키는 일은 후대가 해야 할 수밖에 없다. 가자미식해의 맛을 기억하고 또 그리워하는 사람으로서 괜히 어깨가 무거워진다. 적어도 시큼한 배추김치가 올려진 가자미식해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월간암(癌) 202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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