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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키지 못한 약속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3년 02월 21일 19:22분1,889 읽음
글: 김철우(수필가)

며칠 전 집 근처에서 열 발자국쯤 앞에서 길을 걷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시선을 잡는다. 풍성하지만 온통 하얗게 센 머리에, 약간 굽은 등, 남들보다 좁은 보폭과 빠른 걸음걸이가 영락없이 어머니의 뒷모습이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슨 할 말이 있으신지 돌아서서 말씀하실 것 같아 거리를 유지하고 뒤를 따르자니 어머니가 남긴 말씀이 기억의 수면 위로 불쑥 떠 올랐다.

“삼 일 남았어.”

‘뇌농양’이라는, 들어 보지도 못한 병명을 받아 들고 황망했던 게 얼마 전인데 어머니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와 집사람을 침대맡으로 부르셨다. 어머니가 마지막 말씀을 남기려 한다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정신을 잃었던 며칠 전 일이 과연 현실이었을지 혼란스러우리만큼 차분한 목소리였다. 삼 일. 생이 다하는 순간이 오면 알 수 없는 능력이 생기는 걸까. 자신에게 주어진 이승에서의 시간을 정확히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말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심폐소생을 하지 말 것 그리고 내가 다니는 병원에 자신의 시신을 기증할 것.’ 첫 번째 부탁이야 건강하실 때부터 늘 하던 말씀이었다. 때가 되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니 편하게 가고 싶다면서, 각종 기구를 주렁주렁 달고 중환자실에서 삶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수차례나 부탁하셨었다. 두 번째 말씀은 듣는 나 자신도 충격이었다. 30대 초반에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남기고 병원에 누워버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향한 애달픔이 온몸의 뼈마디가 시리게 가슴에 박혔다. 그런 아들을 살려낸 병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으셨나 보다. 두 번째 유언을 듣는 순간 다시 건강을 회복하리라는 기대는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고 있었다. 어머님은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침 셈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느라 자꾸 고개를 돌리고, 어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아픈 아들 곁을 지켜 온 며느리를 향해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말씀을 마쳤다.

나는 어머니의 두 가지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말씀을 남긴 지 3일째가 되자 시작된 발작은 이성적 판단의 길을 순식간에 차단해 버렸다. 그리고 발작 증상을 멎게 하고 편하게 가시기 위해서라도 병원에 모셔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병원에 모신 후 발작 증상은 없어졌지만, 6개월 동안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첫 번째 유언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 유언 역시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의사의 사망선고 후에 병원의 시신 기증 담당자에게 어머니의 의사를 전달했으나,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신 기증은 기증 당사자가 건강한 상태에서 병원에 방문하여 기증 의사를 밝히고, 서류에 사인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유언하던 순간부터 이미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 기일이 돌아올 때도 아닌데, 요즘은 가끔 집사람과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산 세월이 더 길다는 집사람은 어머니의 첫 번째 유언을 지키지 못한 게 늘 마음에 남는가 보다. 나 역시 마음 한편에 바윗덩이 하나를 올려놓고 사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 그 순간이 온다고 해도 우리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킬 수 있을까. 스스로 몇 번을 물어봐도 우리 선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하루는 뜨개질하던 집사람이 신혼 때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는 ‘네’ 하며 물러섰지만, 서운하기만 했고 더 내색하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나이가 되니 이해가 되더라는 고백이다. 더구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보니, 하나뿐인 자식을 둔 어미의 입장이 되어보니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시간이 지나 경험을 해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게 우리인가 보다. 남편을 여의고 외롭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위로해드리지 못한 게 이제야 가슴을 아리게 판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의 좁힐 수 없는 시차는 우리에게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맑지 못한 정신 가운데서도 며느리만 찾으셨던 어머니.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집에 모셨을 때 목욕을 시켜드리며 가끔 정신이 들어 다정한 한때를 보내던 순간이 마치 봄날의 창가처럼 그립다는 집사람의 눈가도 이미 촉촉해졌다. 어머니를 다시 만나도 잘 모실 수 있을 것 같다는 목소리에 진심이 한가득 묻어나온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걷는다. 목적지에 도착한 할머니가 어딘가로 들어가 버리고 달빛 속에 나만 남겨지면 어쩌지? 조급함과 함께 어머니의 뒷모습을 닮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등을 민다.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돌아보실까. 서너 걸음 차이로 거리를 줄인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곁눈질로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깨닫게 되는 것 하나.

‘아! 이런 것이구나.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월간암(癌) 202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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