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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영화배우 스타일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09월 29일 15:49분877,969 읽음

김영숙_시인. 1992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슬픔이 어디로 오지?> <고통을 관찰함> <흙되어 눕고 물되어 흐르는>이 있음.

어린 아들이 친구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말았다
“종진아, 우리 엄마는 최진실하고 똑같이 생겼다.”
아! 아니라고 말해줄 수도 없었고
말해주기도 싫었다.

삶이 고단한 서른 몇 살 무렵
봉고차를 운전하며 땀 흘리는 내게 아들이 말했다.
“우리 엄마는 영화 <에이리언>에 나오는 여전사 시고니 위버 같아요.“

항암 주사 한 번에 다 빠진 머리.
그 황망함을 감추려 두건을 쓴다.
아들아!
어때? 오늘은 <G.I 제인>에 나오는 데미 무어 같으니?

구약성서에 다윗이라는 왕은 압살롬이라는 잘 생긴 아들을 두었습니다.
이 압살롬의 자랑은 탐스럽고 윤기나는 숱 많은 머리였습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숱 많은 머리카락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정부군에게 쫓기던 압살롬은 숲 속 상수리나무 가지에 자기 머리가 걸려
대롱대롱 매달렸다가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반역자가 죽었다고 사람들이 승리에 취해있는 동안에 다윗왕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하고 울었답니다.

투병하면서 새삼스럽게 내가 이 세상에 어머니로 살 수 있는 것이 가장 감사합니다.
하루아침에 술술 머리카락이 욕실 바닥으로 다 떨어져 내릴 때 모든 욕망과 세상 허욕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 황망함 속에서 시 한 줄이 건져지네요.

월간암(癌)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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