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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저 녁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09월 29일 14:17분878,524 읽음

[에세이] 저 녁

김영숙 | 시인. 1992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슬픔이 어디로 오지?> <고통을 관찰함> <흙되어 눕고물되어 흐르는>이 있음

 

오늘, 저 집 식탁엔
멸치로 국물내고 호박 버섯 두부 반 토막
파, 마늘 다져 넣고 된장 한 스푼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가 오르겠네.

공원을 걷다가
찌개 냄새에 문득
난, 별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아니었구나!
눈물이 왈칵 난다.

풋것과 소금기 없는 끼니가 이어지니
초록 침 뱉고 초록 똥 누고
냄새엔 더 예민하다.

그런데,
미안해서 흘리는 눈물은 여전히
색깔이 없다.

호기롭게 잘 싸울 거라 당당했는데 반복되는 맛없는 밥과 좋았다가 나빴다가 그저 그런 몸 상태가 계속되니 몰래 눈물도 많이 납니다. 새로운 시선, 새로운 각오, 새로운 관계…. 그러고 보니 얻은 것도 많아요. 마음 고요히 바쁘지 않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새삼스럽습니다.

초봄의 산, 마른 잎사귀 새 순 나고 꽃피고 잎 무성해지더니 요즘 숲은 벌레들 세상이라 아주 많이 시끄럽습니다. 고치 짓는 벌레들 벌써 가을 준비하네요. 쑥이랑 민들레 말리고 있습니다. 벌써 겨울이 보이는 걸요. 초록이 숨어버린 긴 기다림의 시간이요.

월간암(癌)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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