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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에 후회되는 것 3가지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1년 04월 20일 18:14분10,067 읽음
‘죽음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의사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개척한 학문으로 많은 분들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만들어진 경험적 학문입니다. 죽음학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말기에 이른 이들의 생활과 심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임종에 가까워지면서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불안에 떨지 않으며 존엄하고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퀴블로 로스 박사는 일반인이 자신의 임종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생기는 마음의 변화를 부인(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이렇게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각 단계가 순서대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한 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생겼을 때 생기는 마음 상태를 미리 알고 있다면 그에 맞게 준비를 할 수도 있으며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림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퀴블러 로스 박사 이래로 현재 이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세계에 많이 퍼져 있는데 주로 삶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종에 임박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을 순위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 3가지 정도를 소개합니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을 거울로 삼는다면 후회가 아닌 감사함으로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이므로 선배들의 고귀한 조언을 받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했다
자신의 삶보다는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속성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을 우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다면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남의 눈치만 보고 사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멋대로 구는 사람이 더 나아보입니다. 최소한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눈을 의식하고 커서는 친구나 선생님,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배우자, 같이 지내는 모든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그들의 기분을 생각하고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을 때 다음 생에서는 좀 더 나의 삶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혹은 학업이나 집안 일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즐거움을 찾고 싶은데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일들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치병이 걸리면 정말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살았던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 하나씩 실천하기도 합니다. 소위 버킷 리스트입니다. 그렇지만 투병을 하면서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그 일을 해나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프란다스의 개’라는 만화영화를 보면서 너무 멋진 풍경에 매료되어 배경이 되는 알프스 산맥을 가보고 싶었는데 몸이 따라 주지 못해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만들지 않고 평소에 그곳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서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입니다. 태어나면 이미 우리의 시간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며 그렇게 유한한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며 시간을 보내지 못한 후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관계에서 맺힌 것을 풀고 싶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 둡니다. 성격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가끔은 쌓여있는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서 다시 원래대로 만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화병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소비되는 술의 양이 꽤 많은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술로 마음 속 응어리를 달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 사이에 감정이 상했다면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합니다. 술은 하나의 도피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술 때문에 건강이 망가질 뿐더러 마음에 쌓인 응어리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살면서 감정이 상하는 경우는 많은데 그 중에 무시를 당한 경험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린 아이 셋을 키우는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외제차가 무리하게 끼어들어 돌발적인 상황이 생기면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길 위에서 두 운전자가 한창 실랑이를 하다가 외제차 운전자가 갑자기 상대편 운전자 아이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네 아버지가 거지라서 너희들은 이런 차를 타고 다니는 거다!” 세 아이의 아버지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천박한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는 외제차 운전자는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던졌습니다. 이런 일은 큰 상처를 남기고 응어리를 지닌 채로 지내게 됩니다. 잘못한 사람은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피해자는 상처를 잊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많은 곳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마음속에 쌓아 둡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된 말과 행동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내가 가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혜롭다면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지만 우리 주변에 그렇게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은 드뭅니다. 결국 나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감정에 상처가 남아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풀고 싶고 그렇지 못했다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면서 살고 싶었다
우리는 누구나 남을 도우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서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집안을 돌보고 가족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도 있지만 모두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직업이 택배 기사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각각의 물건을 배달합니다. 그것은 남을 돕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달의 대가로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택배 기사님들이 모두 일을 그만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물건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택배 요금을 지불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받은 도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핸드폰 속에서 동영상을 보며 살고 있는 아이들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동영상을 운영하는 채널에 가입하고 ‘좋아요 구독’을 클릭한다면 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저도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기운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도움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에 다른 이에게 도움이 안됐다는 생각으로 후회를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불치병을 진단 받고 자신의 건강이 위험에 빠졌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섭고 외로우며 아직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며 회피하기에 급급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정작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립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집과 땅, 은행의 예금 등 살면서 쌓아 놓은 재산입니다. 간혹 재벌가 어떤 회장의 부고 소식이 뉴스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많은 돈, 저승에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작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야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탐욕을 부리며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굴다가 이제 떠난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남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고 싶지만 이미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후회일 것입니다.

죽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연구해서 내어놓은 내용을 찬찬히 관찰하다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삶의 시간을 보내야 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누구나 그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생에서 조금이라도 의미를 만들려면 알아야 할 지혜가 담겨 있는 학문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보는 것,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언짢아질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곳으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습니다.

월간암(癌) 202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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