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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실력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0년 12월 03일 10:08분3,466 읽음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집합금지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사라지고 스포츠 경기도 무관중으로 치르면서 인터넷으로 중계방송이 송출되었습니다. 스포츠 경기 현장을 찾지는 못해도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저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응원팀을 하나 선정해서 야구를 즐기며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해보다 더 열심히 야구경기를 시청했습니다.

경기를 보다보니 많은 선수들이 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두 선수도 아니고 대부분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크기나 무게가 상당해 보이는 목걸이도 있었습니다. 유니폼 밖으로 흔들리는 목걸이가 경기에 어떤 영향을 주기에 많은 선수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착용하는 지 궁금했습니다. 액세서리는 개인적인 취향이기에 의미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행운을 비는 마음일 것입니다.

선수들이 행운을 비는 마음은 나약하게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만큼 행운이 경기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한 가지 운동만 해온 선수들도 그날의 경기에 행운이 따랐으면 하는 바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탁월한 실력이 있으며 그에 더해 행운이 따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적이 나옵니다.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행운도 따라 주지 않습니다. 또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그날의 컨디션이 좋다 해도 운이 없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습니다.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미지의 대상을 향해서 행운을 빕니다. 아마도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선 어떤 존재가 나를 도와 한층 더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 그러한 일들은 자주 일어나며 목격하는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보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가 큰 울림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재미 있는 경기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경기를 꼽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이기고 있는 팀은 승리를 지키려고 애를 쓰고 지고 있는 팀은 다시 동점과 역전을 노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합니다. 그리고 역전이 현실이 되었을 때 선수들과 응원하는 관중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누립니다. 실력 있는 사람은 패색이 짙어질 때 진짜 실력이 나오며 이때 행운은 실력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정합니다. 모든 스포츠 경기가 그렇듯이 실력이 있어야 행운이 바짝 붙어서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승리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운명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암과의 투병을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기는 힘들지만 투병 분야처럼 실력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분야도 드뭅니다. 의료진의 치료 실력은 내가 선택함으로써 결정되지만 투병과정에서 생기는 실력은 스스로 부단하게 노력해야 결과가 나타납니다. 9회 말, 점수 차이도 많이 벌어져 패색이 짙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승리로 그날의 게임을 마친 것과 같은 경우는 주변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암환자에 비유하자면 의료진도 손을 놓은 상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건강을 되찾고 활기차게 일상으로 복귀한 분들과 같습니다. 야구경기처럼 역시 확률적으로는 낮지만 그런 분들이 심심치 않게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스포츠 경기에서 느끼는 감동을 받게 됩니다.

지난 9월에 미국의 연방대법관을 지낸 루스베이더 긴즈버그도 그런 감동을 선사하고 떠난 인물 중에 하나입니다. 여성으로 평생 남성의 권위주의에 맞서 애써온 생애는 탁월한 삶의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긴즈버그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대법관이 9명인데 그 중에 몇 명 정도가 여자면 적당한가 하는 우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법관 9명 중에 여성 9명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하지만 1981년도까지 9명 대법관은 모두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약자를 위한 판결을 하며 평생을 바쳤습니다. 긴즈버그가 하버드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학과장은 왜 남자가 들어오는 학교에 입학했냐고 따지면서 언제나 불이익을 주었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도 여자라서 취업을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단지 공부만 잘했다면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또 운이 좋아서 최초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는 설명은 더욱 부적절합니다. 그녀는 탁월한 실력과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1999년에 대장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 후로 2009년 췌장암, 2018년에 폐암을 진단 받습니다. 20년이 넘는 암 투병 동안 연방대법관 직무에는 늘 충실하였습니다. 폐암 수술 당시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의 일을 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는 말을 실제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88세로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분이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은 모든 약자에게 영원히 귀감으로 남을 것입니다. 흑인, 인디언, 성차별, 소수자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약자들의 편에서 판단하고 그에 맞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병원에서 암을 진단 받으면 한 순간에 가장 연약한 상태로 바뀝니다. 누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진짜 실력을 보여 줄 때가 된 것입니다. 행운이 기본적으로 함께 있으므로 내가 해야 될 일은 실력을 갖추는 것뿐입니다. 긴즈버그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고환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 때부터 남편 간병과 어린 아이의 육아와 남편의 학업까지 함께 했습니다. 남편의 수업을 대신 듣고는 필기 노트를 전달하여 병상에서도 남편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분에게는 행운의 목걸이 같은 것이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운의 여신이 다가와 한 수 배우고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DB
월간암(癌)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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