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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한 청춘의 기억 마늘
김진하 기자 입력 2013년 05월 30일 20:33분619,475 읽음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언제인가 TV에서 장수노인의 건강비결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매 식사 때마다 생마늘 한 통을 먹는다고 했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매우 정정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마늘을 먹지 않던 나였지만 우리나라 음식에서 마늘은 빠질 수 없는 양념재료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섭취하고 있다며 스스로 위로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입에 달갑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던 어린 날에는 쌈을 쌀 때마다 편으로 썰어 낸 하얀 마늘 조각을 넣어 드시는 아빠가 신기했고 마늘초절임이 상큼하다는 엄마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구운 마늘은 단맛이 난다는 주변의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섭취를 거부했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이십 대 중반을 한참 지나서야 겨우 먹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이 혹은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 어딘가에 살고 있을 오래전 애인 덕분에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게 되었으니 헤어진 상처로 많은 시간 아파야 했던 원망도, 꽃다운 시절 흘려버렸다는 안타까움도 어느 정도는 상쇄되려나?

하긴 편식이 심한 나를 상대로 그 사람도 고생이 참 많았다. 안 먹는 음식이 많아 데이트 할 때마다 고민해야 했고 입에 맞는 음식만 고집하는 나를 설득해야 했고 골라내는 음식도 먹어줘야 했고.
화도 내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해 나름의 방법으로 이것저것 먹게 만들려는 시도를 해준 그 사람 때문에 개선된 부분이 꽤 많으니 가끔 떠올려지는 추억과 함께 내게 남겨준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대학 시절 엄한 아빠를 속이고 딱 한 번 참가해 그와 함께 한 농활기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일들 중 마늘밭에서 마늘 줄기, 일명 마늘종을 잘라버리는 일은 나를 제일 힘들게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 때문에 줄기에서 타고 나온 독한 액체가 닿는 곳마다 부풀어 오르고 따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별생각 없이 쉽게 사서 먹던 것들이 얼마나 긴 시간 농부들의 힘든 노동을 거쳐야 하는지, 농사의 한 토막이나마 어렵게 가꾸어지는 과정을 경험해 본 것은 매우 귀중한 것이지만 한동안 마늘종이든 마늘이든 쳐다보기도 싫은 후유증도 동반했다.

도시에서야 돈 주고 사서 반찬으로 해 먹는 마늘종이지만 마늘 농사가 많던 농활지의 특성상 대부분이 잘라진 채 버려졌고 처음에는 아까워서 싸간다던 우리들의 마음도 점차 옅어져 갔다.
서툰 솜씨나마 돕겠다고 나선 학생들이 기특하여 농활 마지막 날에는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여주셨는데 그 와중에 그는 나에게 마늘을 먹여보려다 실패했고 이후 꾸준하고 집요하게 시도하더니 결국 구운 마늘이 달다는 것과 마늘장아찌가 아삭거린다는 것을 내 입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나는 마늘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부러 먹으려 하는 마음도 있겠으나 자연스럽게 입맛이 바뀌고 살아온 자취를 따라 그 기억들 속에 갖가지 음식들도 자리하고 있기 마련인데, 마늘은 몸에 이로운 여러 가지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고 음식의 맛과 풍미를 더해준다는 식재료적 특성에 더해 나에게는 잊고 살던 알싸한 청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젊은 날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으나 성숙하지 못했기에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가 생마늘의 톡 쏘는 맛이라면 이해와 배려로 상대를 보듬을 수 있는 여유로움은 익히거나 삭힌 마늘에 비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생마늘에 도전하지 못하지만, 마늘은 익혀도 영양 손실이 거의 없고 먹기가 편해지니 참 고마울 따름이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약용하던 시대를 지나 대부분의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되기까지 마늘은 우리와 매우 친숙하게 오랫동안 함께한 식재료이다. 고기의 잡냄새를 없애주고 맛을 상승시켜주는 양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알싸한 맛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많고 잎과 줄기 또한 반찬으로 이용한다.

냄새와 맛이 강해 거북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여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 부르는 마늘은 2002년 미국 『타임(Time)』지에서 세계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선정하였고 1992년 미국암연구소(NCI)가 발표한 'Designer food(좋은 식품을 적극적으로 섭취함으로써 70세에 질병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프로그램)' 피라미드의 최상위를 차지하였다.

마늘의 매운맛과 독한 냄새는 알리신(allicin)이라는 성분에 기인하는데 강력한 살균·항균 작용을 하며 소화를 돕고 면역력도 높이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하루에 생으로 혹은 익혀서 한쪽 정도를 꾸준히 섭취하면 암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며, 구워도 영양가의 변화가 거의 없이 특유의 매운맛이 사라져 먹기에 훨씬 좋고 소화·흡수율도 높아진다. 이렇게 몸에 좋은 마늘이지만 자극이 강하므로 과도하게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마늘은 가을에 심어서 겨울 동안 추위를 이기며 크다가 이듬해 5월에서 6월경에 수확을 하는데 이때 햇마늘을 통으로 이용해 숙성된 맛을 즐기는 새콤달콤한 마늘장아찌는 많은 양을 담가두었다가 두고두고 밑반찬으로 이용하기 좋고 김치와 고기, 바삭한 마늘의 조화가 일품인 김치마늘전은 마늘을 꺼려하는 아이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별식으로 먹일 수 있으며 똑똑해지는 견과류와 함께 달콤한 마늘견과류조림은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마늘장아찌

[재료 및 분량]
- 통마늘 4통, 물 300g, 식초 150g
- 양념장 : 간장 36g, 소금 24g, 설탕 36g

[만드는 법]
1. 통마늘은 뿌리와 줄기 부분을 자른 뒤 껍질을 두 겹 정도 벗겨 물에 깨끗이 씻어 건진 후 물기를 뺀다.
2. 용기에 통마늘을 담고 물과 식초를 부어 서늘한 곳에서 10일 정도 삭힌다.
3. 삭힌 식초물을 냄비에 붓고 양념장을 넣어 센 불에서 끓인 후 식혀 다시 용기에 붓는다.
4.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 후 양념장을 따래 내 냄비에 붓고 센 불에서 끓여 식으면 용기에 붓는다.
5. 1개월 정도 더 익힌다.

김치마늘말이

[재료 및 분량]
- 배추김치 150g, 쇠고기(채끝살) 100g
- 달걀 1개, 통마늘 5개, 밀가루 1T, 식용유 ½T, 홍고추 ¼개, 청고추 ¼개
- 쇠고기 양념 : 간장 ½t, 후추 ⅛t, 참기름 ⅔t, 설탕 ¼T, 깨소금 1¼t

[만드는 법]
1. 손질한 마늘은 깨끗이 씻어 편으로 자르고 찬물에 담가 매운맛을 뺀 다음 물기를 제거하여 연한 갈색이 되도록 튀겨준다.
2. 쇠고기는 샤브샤브용 두께로 준비하고 양념장에 잘 버무려 달궈진 팬에서 살짝 익혀준다.
3. 속을 털어낸 김치에 익힌 쇠고기와 마늘을 올려 돌돌 말아준다.
4. 밀가루와 달걀물을 씌운 후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불에서 익혀낸다.

마늘견과류조림

[재료 및 분량]
- 마늘 40g, 호두 20g, 땅콩 14g, 아몬드 14g, 피스타치오 10g, 청양고추 8g
- 조림장 : 간장 20g, 설탕 8g, 올리고당 10g, 청주 5g, 소금 약간, 후춧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깐 마늘은 두툼하게 편으로 썰고 견과류는 깨끗이 씻어 준비한다.
2. 준비된 재료를 냄비에 담고 충분한 물을 부어 5분 정도 끓인 다음 체에 밭쳐서 찬물로 씻고 물기를 뺀다.
3. 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준비된 재료를 넣어 노릇하게 볶다가 송송 썬 청양고추를 넣고 같이 볶는다.
4. 조림장 재료는 잘 섞어 볶인 재료에 붓고 잘 배어들도록 조린다.

월간암(癌)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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