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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게 미안할 때
김진하 기자 입력 2014년 06월 30일 20:20분275,675 읽음
사람은 각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도 합니다. 그 운명을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저 그에 따라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해진 운명의 단 한 치 앞도 볼 수 없으며 순간 일어나는 운명적 사건을 받아들이는 존재일 뿐입니다.

운명적인 일은 곧 시련이 닥쳐왔다는 것인데 사람마다 그 운명적인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생깁니다. 시련이 작은 생채기일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인생 자체를 포기하거나 없애버릴 만큼의 커다란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닥쳐오는 시련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이를 통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시련에 굴복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운명적인 시련을 어떤 태도로 직면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정해집니다. 이러한 결정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따라서 삶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동물이 되느냐 하는

“같은 배를 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일시적이나마 생사를 공유한 채로 동일한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운명을 뜻하는 말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말 그대로의 상황이 생기곤 합니다. 군대나 수용소, 감옥과 같은 곳의 생활은 모두 같은 한 배 안에 있는 상태가 됩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심리학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의미 치료” 기법을 만든 사람이며 관련 분야에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자신의 부모와 형제뿐만 아니라 아내까지 모두 잃었습니다. 그의 나이 37세에 수용소에 끌려가서 3년이 넘게 죽음과도 같은 생활을 하면서 벌거벗은 목숨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가족을 잃고서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홀로 살아 남은 사실을 알았을 때 느꼈을 비통함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업적을 쌓았고 92세가 되던 1997년에 의연함과 온화함을 잃지 않은 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호 때문에 지금 온 나라가 비통함 속에 젖어 있습니다.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빅터 프랭클이란 위대한 학자가 생각났습니다. 모두들 견딜 수 없는 시련에 빠져 있는데, 행여 그 사람의 경험이나 이론이 도움이 될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가 기울어 물이 차고 뒤집혀 가는 상황에서도 그 속에 있던 학생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먼저 나가라고 밀어 주고, 당겨 주면서 자신의 목숨보다는 친구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구명조끼에 달린 끈으로 서로를 묶고 밖으로 빠져나오려던 남녀학생의 기사를 읽는 순간에는 목 놓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 학생들이 모두 희생되었습니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지만 어떤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져 갑니다. 이 비통함을 제대로 치유하지 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희생이 생길 것입니다. 뉴스와 언론을 통해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충격이 큰데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충격은 어떨까요? 삶의 커다란 의미가 사라져버린 분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요?

우리가 살면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 사라졌으며 진공 상태가 되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쳤습니다.

빅터 프랭클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 살아 있는 것이다”

월간암 발행인 고동탄
월간암(癌)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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