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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임정예 기자 입력 2013년 10월 31일 11:16분455,887 읽음
추석 명절이 지났습니다. 5일간의 연휴로 충분한 휴식이 되셨는지요.
오랜만에 반가운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어린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촌 형제와 함께 같은 또래끼리 뭉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전날 만든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으며 그간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동산에 올라 떠오르는 크고 환한 달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기도 하고 옛 추억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이런 시간 때문에 모두들 명절을 기다리면서 차가 막히는 고속도로를 지나 고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나 봅니다.

명절동안 가족과 무탈하게 보내려면 양보와 배려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여지없이 새벽에 싸우고 울고 고함치는 소리를 간간히 듣게 됩니다. 가족들끼리 싸우는 이유야 여러 가지이지만 원인을 하나로 압축하자면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이 그간 참고 있다가 폭발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명절날 참았던 억울함을 호소하고 마음에 쌓여 있던 앙금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평생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대상이 바로 가족이라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명절에 주로 예전의 이야기들을 합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이야기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웠던 이야기로 서로에게 위안과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아픔이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다 보면 지금 일상에서 겪고 있는 힘든 일들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용기가 납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임종을 앞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무엇으로 하루를 채워야 하는지 명확해집니다. ‘아 이것이 인생이었구나’라고 생각할 때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암환자에게 명절은 어쩌면 부담스런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지들이 안부를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난감합니다. 암에 좋다는 어떤 약들이나 식품들을 선물로 받기도 하고 계속 현재의 처지를 상기시켜주는 말을 듣게 되면 환자는 죄인이 된 심정이 되어 투병의 용기를 잃게 됩니다. 있는 힘을 다해 투병에 임하고 있는데, 주변의 친지들이 걱정해주는 통에 다 잡았던 마음이 자꾸만 흔들립니다. ‘별일 없을 거야’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었건만 건네주는 선물이나 걱정과 위안의 말들은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를 점점 더 키울 수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아예 배낭을 짊어지고 연휴가 끝날 때까지 산으로 가버리는 암환자들도 있습니다. 친지들의 걱정과 위안이 투병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친지들이 자신의 안부를 도외시하면 섭섭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를 들여다보고 산이나 혼자만의 공간, 또는 친지들과의 자리 등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피부병이 생기지 않는 곳이 딱 한군데 있습니다. 바로 등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피부병이 생겼을 때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동은 가만히 두는 것입니다. 손으로 만지거나 긁거나 하는 것은 손에 있는 잡균들 때문에 오히려 피부병을 악화시킵니다. 그러나 잠을 자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게 됩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옴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비껴갔지만 그 병에 걸린 후임들은 밤이면 잠을 자기보다는 자면서 피부를 긁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어떤 후임은 손톱사이에 피가 고일 정도로 밤새도록 긁습니다. 아침에 물어보면 긁은 기억이 없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면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궁리 끝에 피부병에 걸린 후임들이 취침에 들기 전에 손에 권투 장갑만큼 붕대를 감아서 잠에 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2주 정도가 지나자 옴이라는 병은 부대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처치였지만 그것만으로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이유를 알면 대처를 할 수 있습니다.

피해갈 수 없는 암이라면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궁리해서 해주면 됩니다. 서로의 손에 붕대를 감아주듯 더운 여름을 잘 보내고 견뎌온 손을 잡아주십시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이 다가오는 추위를 이겨낼 힘을 줄 것입니다.
월간암(癌)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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