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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 - 암을 이기는 마음 용기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12월 15일 15:24분877,060 읽음

얼마 전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있는 승화원에 갔습니다. 승화원이라면 잘 모르는 분들이 있는데 벽제 화장터를 말합니다.
번호가 정해진 화구에 관을 넣고 약 한 시간 반 정도 화장을 합니다. 그 시간 동안 발인을 온 친지나 지인들은 대개 지하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상주들은 유리 너머로 화구를 지켜보며 오열을 하곤 합니다. 많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이 농축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보통 장례 담당하는 일은 예전에는 장의사에서 했지만 요즘은 상조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승화원 앞마당 벤치에서 장의사, 혹은 상조회사의 직원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서로 친분이 있어 보이는 그들 중 한 명이 같은 동료들에게 사인(死人)을 묻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사인으로는 암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통계이지만 막상 죽음의 자리에서 들으니 아, 암이란 정말 무섭구나 하는 실감이 났습니다. 그 다음이 자살로,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의 비통함 속에서도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으니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데 통계청 직원처럼 이것저것 물어 보던 사람이 옆의 담배를 피우는 동료에게 충고를 했습니다.

“야! 너는 담배 좀 피지 마.”
“나도 담배 끊고 싶은데 자살하기 싫어서 담배를 피운다.”


아마 그날 그 사람이 모시고 온 고인의 사망원인이 자살이었나 봅니다. 아이러니한 그의 대답은 흡연에 대한 궁색한 변명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그의 현실의 반영 같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 싶지만 태어나서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은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담배를 피우기 위한 궁색한 변명인 자살은 암환자의 현실에서 간혹 맞닥뜨리는 자살과는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의사에게 “당신은 암입니다. 앞으로 1년 정도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정도나 충격의 강도는 다를지언정, 그렇지 않아도 고달픈 삶에 더 크고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 투병 중에 경제적인 문제로, 통증으로, 절망감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진단 받기 이전, 오래전에 나의 몸에 서서히 스며들어 어느 순간 나를 점령하려 듭니다. 그 때 증상이 나타나고 병원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암이 내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그 순간 참으로 커다란 용기가 필요합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있는 힘을 다해 마음으로부터 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살 수 있다는 용기를 내기 위한 마음의 첫 단추로 무력감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대부분 항암주사를 맞게 되는 암환자가 겪게 되는 심리상태는 바로 무력감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없으면 다음은 어떻게 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 부작용이 생기면 그 때문에 겪는 육체적인 고통, 부작용이 없으면 없는 대로 효과가 없는 건 아닐까 하고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 그러다가 점차 몸이 쇠약해지면서 마치 거미가 거미줄로 먹잇감을 돌돌 말아버리듯이 자꾸 쌓여가는 두려움은 밤낮으로 머릿속을 떠나지 않다가 결국 내 마음을 통째로 삼켜버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더 끝없는 심연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사람의 마음과 면역체계의 활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를 ‘정신신경면역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인체는 정신과 마음의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무기력과 자포자기의 심리상태인 사람들은 백혈구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백혈구 속에 있는 NK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어 투병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삶에 대한 욕망이 강렬한 사람들은 백혈구의 활동이 왕성하여 NK세포가 암세포를 맹렬히 공격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 중에서 뇌는 생각을 통하여 세포 하나하나까지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뇌는 감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을 어떠한 상태로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가장 큰 관건입니다.

암 치료에 있어서 확률이 0%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힘들고 생존율이 아무리 낮다 해도 생존율 0%, 사망률 100%인 암은 결코 없습니다. 여러 장기로 암이 퍼져나가고 순식간에 4기 판정을 받고 제아무리 통증에 시달려도 살아서 이겨낸 사람은 반드시 있습니다. 로또 당첨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매주 약 5명 정도는 로또복권에 당첨이 되며 1년이면 약 200명 정도가 됩니다. 로또는 오로지 운에만 맡겨야 하지만 암 치료는 나의 역할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치료를 받는 주체가 나이고, 그 절망감을 극복해 백혈구가 힘차게 움직여 면역력을 재가동시킬 수 있는 주체 또한 나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암 치료의 확률은 로또 복권에 비하면 수치상으로 그 확률이 몇 십만 배나 높습니다.

당신이 암과 투병중이라면 일생일대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아직 펄떡펄떡 힘차게 뛰는 심장과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머릿속에 지어진 ‘암과 죽음’이라는 거미줄을 지금 걷어 내십시오. 그리고 신발을 신고 문을 활짝 열고 나가십시오. 암이 가장 두려워하는 항암제는 ‘희망’이며, 그 ‘희망’으로 가는 첫 번째 문은 바로 ‘용기’입니다.

월간암(癌) 200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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