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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편지 -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7년 08월 01일 13:02분10,728 읽음
암환자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투병기는 영웅들이 전장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암과의 싸움은 하나의 무용담이 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이 저절로 밀려옵니다.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공포 그리고 슬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수술실, 수술이 끝난 후에 항암제를 맞으며 겪은 무수한 일들, 병원의 치료가 끝나고 산이나 요양생활을 하면서 다시 쌓아 올리는 삶에의 의지 등… 듣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에 나오는 배트맨이나 슈퍼맨이 연상됩니다. 실제로 암과 싸운 사람들은 영웅이 맞습니다. 죽음에 맞서 목숨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무엇을 얻기 위해,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본 경험이 없을 것입니다. 암이 걸리지 전까지는 그렇습니다.

보통 영웅은 특별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여기지만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영웅이 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가슴 속에 묻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언제든 꺼내어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되면 누구나 영웅심이 나타납니다. 길을 가다가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를 보았을 때, 사고로 위험에 처한 아이를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두려움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직접 뛰어들거나 도움을 청하거나 경찰을 부릅니다. 마음속에 잠자던 나의 영웅이 뛰쳐나와 약한 사람을 도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에 따릅니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영웅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기도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특별한 영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린 그런 사람을 만나면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떨쳐 버리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 묵묵히 걷는 사람입니다. 보통은 현재에 머물면서 소유한 것들과 소유해야 할 것들을 위해 살면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안에서 안주하면서 삶을 허비하기 일쑤이지만 특별한 영웅은 안전함을 벗어나 미지의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웅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삶을 본보기로 삼아 나의 삶도 나아지기를 기대하고 좀 더 발전적인 인생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를 갖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종교인이라면 예수님 혹은 부처님의 삶을 공부하고 그들을 닮고 싶어 합니다. 그들을 본받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은 영웅이 될 수 있는 씨앗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흠모할 뿐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씨앗을 잘 가꾸면 반드시 싹이 트고 열매가 열립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도 타인을 구하려는 행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뉴스를 보면 심심치 않게 타인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린 안타까운 사연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누구나 영웅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암과 투병하는 일은 특별한 영웅이 되어 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무용담을 듣고 있노라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집니다. 투병은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단지 하루하루 목숨만 연명하려 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저에게 무용담을 들려주던 많은 암환자는 두렵지만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걷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에 의존하지 않으며 새로운 것들을 찾아서 시도합니다. 스스로를 억눌러왔던 불안을 암환자가 되어 오히려 과감하게 떨쳐버릴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잘 보호받고, 특별해지기 위해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부자가 되었다 해도 특별해지고 인정받는 경우는 드물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망만 커져갑니다. 외부에서 보아주는 시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도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느낀 경험이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불우한 마음을 갖고 지냅니다. 암이 주는 행운은 이런 자신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깊이 깨달았을 때 몸은 서서히 건강으로 향하고 마음속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설사 암으로 죽음을 맞이할지라도 삶의 과정임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신앙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보다는 감사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암이 외부에서 온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라 내 몸의 세포에서 시작된 것임을 이해한다면 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힘은 결국 우리 안의 면역이라는 영웅을 찾아 힘을 키우는 일을 것입니다. 더불어 생명의 가치를, 하루의 소중함을, 땀과 노동의 숭고함을, 편안한 잠이 최고의 보약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일입니다.
월간암(癌) 201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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