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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동행, 14년을 지나면서
김진하 기자 입력 2016년 07월 05일 17:18분15,464 읽음
이승호(59) |신장암

나는 2003년 7월, 내 나이 45세에 암환자가 되었다. 한 회사의 일꾼으로서 한창 활동하면서 회사를 키워 나가고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살피면서 인생의 황금 같은 시기를 누려야 되었지만 그 날 이후로 나는 또 다른 인생의 한 장을 써야 되는 처지가 되었다. 위태롭고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뒤돌아보니 어느새 14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버린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모두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으며 큰 아이는 얼마 전에 결혼하여 아버지로서 큰 역할을 했다는 뿌듯함을 안겨 주었다. 내가 살아 왔던 시간들이 모범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이 투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보람되겠다는 마음으로 14년 긴 이야기를 짧게 소개한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학교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평생 이곳에서 살고 있다. 현재까지 28년간 같은 회사에 근무했으며 지금은 재무담당 최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남들만큼 열심히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근면하고 성실했고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03년 봄이었다. 직장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 비해서 세심하고 면밀하게 검사를 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 특별히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그대로 지내다가 한두 달 정도 시간이 흐른 어느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얘기가 생각나서 동네에 있는 내과 병원을 오후에 방문하였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난 후에 담당 의사가 하는 말이 “몸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라며 다른 병원을 소개 시켜 주었다. 그리고 다시 병원을 옮겨 CT 검사를 한 후에서야 암환자가 되었다.

당시 나는 45세로 딸은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눈앞이 깜깜했다.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눈물이 흐른다. 신장암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암에 대해서 너무도 몰랐다. 그저 병원에서 수술만 받으면 아무 일 없이 완치가 되고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했는데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암은 재발과 전이를 반복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관리해야지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암을 처음 진단 받고 경북대 병원에서 소개 받은 교수님의 진료로 수술이 진행되었다. 암은 다행히 신장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어 신장을 부분절제하였고 병기로 따지면 2기 정도의 상황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모든 치료가 마무리 되었다. 물론 오해였지만 당시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술이 끝난 후에 담당의사가 나에게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을 전해준다. 그 위치의 암은 발견하기 어려워 계속 그곳에서 자라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고 나서야 발견하기 일쑤이고 그렇게 되면 이미 많이 퍼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치료가 매우 어려운데 아직 퍼지지도 않고 작게 자리 잡은 암을 발견하여 수술을 하였으니 이보다 더 행운은 없다는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 몸이 회복되고 나서 바로 직장으로 복귀하였다. 몸에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암을 겪은 나는 이제 천하무적이 된 것처럼 직장생활을 하였다. 암을 너무도 모른 채로 그렇게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정기 검진을 받는데 담당의사가 암이 폐에 자리 잡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당시 담당 의사의 설명을 빌리자면 폐는 양쪽에 있고 왼쪽 폐는 상엽과 하엽이, 오른쪽 폐에는 상엽, 중엽, 하엽, 이렇게 3개 부분이 있는데 그중에 중엽은 기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절제하여도 살아가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 지금 우측 폐의 중엽에 암이 자리 잡아서 전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

이런 것을 보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불행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다행스럽다는 쪽으로 생각하였다. 그때가 2008년 12월경이었다. 5년 동안 암환자라는 아무런 인식 없이 살아왔고 이제 전이가 되었으니 긴장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폐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 며칠 뒤 회사의 손님과 골프 약속이 있었다. 중요한 약속이었고 암 때문에 약속을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몸에 큰 통증이나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 골프 약속만 지키고 치료를 받자고 결심하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사실 골프장으로 가면서는 골프 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냐 하면서 자괴감에 빠져 있었는데, 막상 골프장에 도착해서는 손님과 재미있게 라운딩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지나고 나서 보니 이런 일도 추억이 된다.

이제 폐로 전이된 암을 치료할 차례이다. 암이라는 놈이 5년이 넘었는데도 나의 몸에 남아서 다른 곳에도 자리를 잡는구나 생각하면서 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중에 하나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이 있었는데 “암환자가 누워 있으면 죽고 움직이면 산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운동, 특히 시간이 있을 때마다 등산을 하였다. 아무리 힘들고 약기운에 일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도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을 정도로 굳게 마음을 먹고 움직였다. 폐 수술이 끝난 후에는 2년 반 정도 경구용 항암제 ‘수텐’을 복용하였다. 먹는 약이지만 부작용 때문에 무척 힘든 세월이었다. 그리고 힘들수록 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였고 또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공부하면서 꾸준히 생활 속에서 실천하였다.

수텐을 2년 반 정도 복용하고 PET 등의 검사를 통해서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담당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약 복용을 중지하였다. 약을 안 먹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생동감이 흐른다. 그러나 6개월 정도 시간이 흘러서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니 위내시경 시술을 담당했던 의사가 위 두 곳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조직검사를 위해서 조직을 떼어 냈는데 암세포로 판단되었고 처음 진단을 받았던 신장암이 전이되었을 수 있다는 소견을 알려 주는데 신장에서 폐로, 이제는 폐에서 위로, 암은 자리를 바꾸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위로 전이 되었다는 소식을 병원에서 들었을 때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 한창 준비 중인 상황이었다. 모두들 들뜬 기분으로 여행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암 전이를 말하면 모두들 또 울음바다가 될 것 같아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여행을 보냈다. 식구들이 여행을 안 간다고 암이 사라질 것도 아니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나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 온 후에 나의 비밀을 이야기하니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데이”

그러나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위로 전이된 암은 조직검사결과 미분화 암이었다. 미분화 암은 독성이 강하고 전이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치료의 방법은 위를 절제하는 것이었다. 신장, 폐, 이제는 위까지 절제하게 되면 이제 내 몸은 너무 심하게 망가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종양내과교수와 위암 전문의 교수와 협진결과 1차적으로 위 점막술 시행 후 결과를 보고 위절제술 여부를 판단하자고 하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위 점막술을 한 후 정밀 검사한 결과 암세포 없음으로 판정되었다. 즉, 처음 암세포가 자리 잡으려고 할 때 조직검사를 위해서 떼어낸 암이 위에서 발견된 암세포의 전부였다. 이후에도 이와 같은 일이 두 차례나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후에도 암은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면서 나를 괴롭혔다.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왜냐면 위의 암세포가 해결되고 나서 다시 폐에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한번 수술했던 폐였다. 처음 폐 수술을 했던 서울 삼성병원으로 가려고 했지만 서울까지 거리가 멀기도 하고 예약에도 시간이 걸려서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하고 수술 일자를 예약하였다. 문제는 수술일자를 아무 날이나 정해도 수술일정에 전혀 상관 없다는 흉부외과 교수님의 말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것이었다. 결국 수술 후 재발이라고 얘기하니 바로 날짜를 잡아줘서 2012년 7월에 삼성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진행했다. 담당의사는 심사숙고 끝에 3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고 한다. 그리고 3개월 후의 검사 결과를 보더니 이것이 암이면 더 커지던지 다른 곳으로 퍼져야 하는데 그대로인 것을 보니 암은 아닌 것 같고 결절인 것 같다는 것이다. 수술은 필요 없으니 주기적으로 지켜보자면서 두 번째로 폐에 전이된 암의 우려가 사라졌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 다시 기적과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때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면 나의 우측 폐는 지금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삶의 질이 지금보다는 많이 낮아진 상태에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인데 매우 다행스럽게 일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내가 얻은 교훈은 너무 성급해 하지 말고 중요한 수술이나 치료를 결정할 때는 최소한 한 군데 정도 더 다른 병원을 방문해서 알아본 후에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몸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했다가 낭패를 본다면 바로 목숨과 직결되는 것이 바로 암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9월 말에 방광에 암이 전이되었다. 방광은 침윤이 생기면 모두 제거하는 수밖에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도 침윤 이전에 발견하여 요도로 관을 집어넣어 내시경으로 시술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뼈로 다발성 전이가 되었다. 뼈로 전이가 되었을 때는 통증이 생겼다. 어깨, 골반, 늑골 등의 뼈에 전이가 되면서는 생활에 조금씩 불편함이 생기게 되었는데 통증이 있는 곳은 방사선 치료를 시술하여 효과가 있는지 견딜만할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제 조금만 방심하면 암은 어디에 어떻게 자리 잡을지 모르는 상태로 생활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지인을 통해서 유방암 전문의를 소개 받았다. 병원을 찾았다가 저녁이 되어 병원을 나와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산에 김진목 교수님이 있으니 한번 만나서 여러 가지 대체의학에 대한 조언을 들어 보라고 권한다. 덕분에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요법을 진행하였다. 그 중에 고용량 비타민C, 미슬토, 녹십자에서 나온 이뮨셀 등을 시행하였다. 최근 검사에서 암이 있던 자리에서 암이 작아진 곳도 있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상태로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뼈로 전이 되어 통증이 유발 되었던 암도 이제 더 이상 통증은 없는 채로 암은 그대로 커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14년 동안 암은 온몸에 자리 잡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지금 나는 암 때문에 삶의 경험이 풍부해졌으며 끈기와 노력으로 삶이 유지되고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연해졌다고 느낀다.

14년 동안 암 투병을 하다 보니 주변에 많은 암환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암환자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다. “내가 암환자에요”라고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이상 누가 암환자로 볼 것인가! 내가 만난 암환자 중 한분은 병원에서 3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제는 밥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캔에 들어 있는 영양식 정도나 겨우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 사람이 홀짝홀짝 캔에 들어 있는 영양제를 먹으면서 하루 종일 산으로, 바다로 운동을 하러 다녔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8년이 넘어간다고 했다. 불과 3개월밖에 못산다던 사람이 말이다.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환자는 포기하는 순간 먼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나도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모든 암환자들에게 하고 싶다.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 14년차 암선배의 당부다.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세면대 거울 속의 나에게 다짐한다. 

“나는 이길 수 있다!”

내가 내게 거는 세뇌이다. 다행이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아름답게 자라서 딸은 얼마 전에 결혼식을 치렀다. 또 아들은 올해나 내년 정도에 짝을 지어줄 생각이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최소한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내에게는 무엇을 해주어도 충분치가 않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출가한 후에는 오래도록 단둘이 살면서 그 동안 못했던 사랑을 나눌 계획이다. 그러려면 내가 오래 살아야 한다. 그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퇴근 후 이른 저녁을 먹고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인근에 있는 산을 오른다. 14년의 투   병 기간 중에도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내일의 희망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5년 뒤, 아니 10년 뒤에도 나는 변함없이 오늘과 같이 이 산을 오르리라.
월간암(癌)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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