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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를 바라보며
고정혁 기자 입력 2016년 03월 21일 11:53분10,883 읽음
요즘 인간의 수명은 100년 정도라고 합니다. ‘100세 시대’라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 100살이 될 때까지 세상에서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상으로부터 장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야 되고, 철저한 자기 관리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인명은 재천이기 때문에 하늘이 100살까지 이 세상에 남겨 두어야만 천수를 누린 후에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결국 100살까지 살기 위해서는 조상의 공덕과 나의 노력과 하늘의 뜻이 맞아야 합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아주 긴 시간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경험하지 못한 100년의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정서는 이승과 저승을 나누고 이승에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생로병사라고 합니다. 행여 천국이나 지옥, 또는 전생이나 후생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승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과정은 모두가 겪는 일입니다. 다른 생물과 다르게 사람은 ‘나’라는 자아와 함께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갑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들은 자아의 수준이 다른 동물들과 별반 다른 게 없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서히 자아가 생기고 ‘나’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기억이 저장되고 삶이 축적되게 됩니다.

자아는 태어남과 동시에 생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서서히 생겨납니다. 그래서 아직 성숙하지 않은 유아기의 아이들을 보면 세상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르신들의 의식 수준을 관찰해보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한 사람들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기저귀를 채워야 될 수도 있으며 밥을 떠서 먹여야 될 수도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모든 일들이 필요합니다. 알츠하이머, 혹은 치매라는 병으로 진단하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의 한 과정이고, 다시 아이가 되어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전 단계로 회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젊은 시절에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리지 않고 생로병사를 모두 거친 후에 나이를 먹고 노쇠하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모두 한 후에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는 여행은 안타깝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100살에 근접하면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이제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맑고 순수합니다. 때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사리분별을 못하지만 이는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100살 어르신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지만 숨어 있는 영혼은 아이와 같이 맑고 깨끗합니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나이가 100살에 가까워졌을 때야말로 자아가 아닌 영혼과 함께 이승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님을 뵈러 다녀왔습니다. 올해에 100살이 되신 친할머니입니다.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습니다. 손자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귀도 잘 들리지 않아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몸은 늙고 귀도 들리지 않고 손자도 못 알아보셨지만 할머니의 눈동자는 티 없이 맑았습니다.

갈색 눈동자 속에 나를 넣어두시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할머니는 저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제 이승에서의 생각들이 났는지 저에게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묻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가슴 한쪽이 물컹하면서 아파옵니다. 이승에서 할머니와 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작별인사를 합니다.

이부자리에 오물이 묻어 있어서 시트를 바꾸려고 할머니를 번쩍 안아 들었습니다. 노쇠한 몸은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할머니에게 주어졌던 100년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렸을까요? 참으로 무심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할머니는 정신이 들어 저에게 이말 저말을 건넵니다. 사투리에 정확하지 않은 발음 때문에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대략 노쇠한 삶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나이든 육신은 여기 저기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서 그에 대한 푸념들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게 시골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삶과 죽음이 서로 멀지 않고 한데 뒤엉킨 채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흐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와 유달산에서 찍은 낡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할머니의 젊은 시절 한때, 그리고 내 어린 시절 한때가 행복했음이 그 안에 증거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이승을 벗어나고 있는 할머니에게서 내게로,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서 내 아이들에게로, 삶의 지지대가 되고 거름이 되어줄 것입니다.

밤새 할머니의 아픔을 끝까지 듣고서야 이제 서울로 나섭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은 끝내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그란데 으째 안 죽는가 모르겄다”
월간암(癌)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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