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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면역은 병원균과 이물질의 암살자
임정예 기자 입력 2015년 01월 31일 19:17분78,367 읽음

뇌는 장의 '끄트머리'에서 태어났다
장의 임무는 소화와 흡수만이 아니다. 면역이라는 인체 건강의 최전선을 수호하는 장기이기도 하다.

장이 얼마나 거물인지 알려주겠다. 뇌와 간, 신장 같은 주요 장기도 원래는 장에서 발달해 나왔다. 영양을 흡수하는 장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장을 따라 신경이 발달했고, 그 신경의 끄트머리가 팽창하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도 생겨났다. 따라서 뇌신경보다 장의 신경이 형님이다.

소장 그리고 장관면역
장기별 신경세포의 수를 봐도 뇌 다음으로 신경세포가 많은 곳이 장이다. 신경으로 덮인 장관(腸管)은 간이나 췌장 등에 소화와 흡수 작업을 지시하는 사령탑으로서 기능한다.

음식이 지나는 길인 입에서 식도, 위, 소장, 대장, 항문까지는 쭉 이어져 있는 것이 마치 하나의 통으로 된 토관(土管, 흙으로 구워 만든 둥근 관)과 같은 모양새다. 토관의 안쪽이 항상 외기에 노출되어 있듯 우리의 위장도 항상 외부의 자극을 받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장관은 몸의 '안이자 밖'이다. 그래서 소화기관의 안쪽 점막은 음식과 함께 들어오는 세균이나 병원균 같은 외적(外敵)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인체 입장에서 이들 외적이나 이물의 침범은 중대한 위기다. 장관에서는 이들을 배제하거나 중화시켜서 우리 몸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한다. 그 일을 위해 소장에는 수많은 면역세포가 집중되어 있다. 면역세포의 일종으로 림프구라는 것이 있는데, 전신에 존재하는 림프구의 70%는 소장에 집중돼 있다.(대장에는 10%), 종양면역(암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면역)도 80%가 소장에 있다. 이들을 '장관면역'이라고 한다.

장관면역을 대표하는 것이 페이에르판(Peyer's patch)이라는 집합 림프절이다. 림프절이란 림프관이 분기하는 부분에 있는 샘인데, 회장(回腸, 소장 하부에 있으며 소장 전체의 5분의 3을 차지)을 중심으로 180~240개가 존재한다. 소장은 십이지장, 공장, 회장으로 구성되며 회장에서 영양소를 최종적으로 흡수한다. 영양을 흡수할 때는 이물까지 함께 들어오지 않도록 배제하거나 중화하는데, 그런 면역활동의 사령탑이 바로 페이에르판이다.

페이에르판의 표면은 '원주 상피세포'라는 원주형 세포로 덮여 있다. 그 일부에 M세포(Microfold cell, 장관 상피세포)가 있다. 장 세포와 달리 표면에 융모가 없다. 그 대신 넓은 미세주름(microfold)이 있는데, 이 때문에 M세포라고 부른다.

우리 몸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먼저 매크로파지나 수상세포 등이 인식하고 림프구의 킬러-T세포나 NK세포 등이 활성화되면서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병원균과 이물질의 암살자다.

장이란 장기는 이처럼 중대한 작용을 담당한다. 그러나 장관면역에 관한 연구는 아직 새로운 분야라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일련의 작용을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M세포가 발견된 해가 1974년이니, 이제 경우 40년이 지났을 뿐이다. 장관면역을 중요하게 여긴 시기 역시 그 이후부터다. 그런 연유로 장관면역은 '면역의 신대륙'이자 '면역의 신세계'라 불리고 있다.

나이 들면서 면역계의 중심이 이동한다
장관면역을 활성화시키면 몸 전체의 면역력 강화로 이어져서 암이나 기타 질병의 치료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암을 예로 면역에 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현대 일본은 2명 중 1명이 암에 걸려서 3명 중 1명이 죽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암은 어떻게 해서 생겨날까?

인간의 몸에서는 매일 1조개의 세포가 죽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세포 분열로 새로운 세포가 비슷한 수만큼 생겨난다. 개중에는 세포의 설계도인 DNA를 제대로 복사하지 못한 불량품도 섞여 있다. 그 수는 매일 5000개 정도라고 한다.

복사 오류가 난 세포는 아포토시스(apoptosis, 세포자살)로 대부분 죽지만, 간혹 죽지 않는 세포도 있다. 이들이 암의 씨앗이며, 이들을 퇴치하는 것이 면역세포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 쉽게 암에 걸리지 않는다. 면역세포들은 암의 씨앗뿐만 아니라 세균, 바이럿, 곰팡이 같은 병원체에 대해서도 똑같이 작용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면역 작용이 약해지면 암세포나 병원체가 맹위를 떨치게 된다.

인간의 면역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떨어지는데, 20세 무렵에 절정이었다가 40대에는 절정기의 절반으로 떨어지고, 50대가 되면 절정기의 3분의 1 수준까지 감소한다. 이는 면역세포의 주역인 림프구를 만드는 흉선이 퇴화하기 때문이다. 암이 40대부터 늘기 시작해 고령이 될수록 많아지는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중년 이후에는 면역계의 중심이 흉선에서 장관 림프조직으로 이동한다. 장관면역은 장내 환경만 좋다면 고령이 되어도 계속해서 기능한다. 장을 건강하게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도 알 수 있다.

콜레라에 걸린 일본인, 콜레라에 걸리지 않는 현지인
장관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증명하는 데 안성맞춤인 사례가 있다.

1995년에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에 관광 다녀온 200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콜레라에 걸렸다. 모두가 '관광객들이 200명 이상이나 콜레라에 걸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발리 섬에서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랬을까? 아니다! 현지인 중에서 콜레라에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발리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걸린 콜레라균은 '엘토르 오가와형'으로, 보통은 몸에 들어도 발병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약한 유형의 콜레라균이다. 그러면 왜 일본인 관광객은 발병했을까?

그 이유는 장관면역력이 저하돼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행을 일상적인 일이 아니기에 교감신경이 우위에 서서 변비가 잘 생기는 상태가 되기 쉽다. 아마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모처럼 여행을 왔으니 맛있는 요리와 술을 최대한 즐기다 보면 몸에는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 결과 장내 부패를 일으켜서 장관면역력이 뚝 떨어진 탓에 평소라면 걸릴 리 없는 약한 콜레라균에도 감염되고 말았으리라.

이런 상황이 꼭 해외에서만 벌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때때로 음식점에서 식중독에 감염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사람들 모두가 식중독에 걸리지는 않는다. 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장내 환경이 상당히 악화된 사람만 식중독에 걸렸으리라 추측한다(그렇다고 해서 그 가게에 책임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평소 장의 건강을 철저히 챙겼더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병', '생각지도 못한 병'에 걸릴 일은 없었으리라.

관련 도서안내: <효소 식생활로 장이 살아난다 면역력이 높아진다>, 츠루미 다카후미, 전나무숲

월간암(癌)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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