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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총각, 두 개의 산을 넘다
임정예 기자 입력 2014년 08월 31일 11:52분235,846 읽음
문지환(43세) 직장암

나는 두 번에 걸쳐서 암이 발병하였다. 모두 직장암이었는데 의사의 소견으로 두 번째 암은 재발이 아닌 새로 생긴 암이라고 했다. 마흔이 되던 2011년에 처음으로 암을 진단 받았다. 집안에 장남이고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삶의 방향은 암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행히 직장암 2기로 담당 의료진에 따르면 초기 단계라고 했었다. 수술을 하였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일상에 복귀하였다.

나는 그리고 암을 잊고 직업에 열중하며 남들과 같이 평범한 일상을 지냈다. 당시에는 암에 대해서 무지했고 담당 의료진 또한 건강과 암의 재발을 막기 위한 요령이나 관리 등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일상으로 복귀하여 다시 이전처럼 일과 취미에 열심을 쏟으며 지냈다.

그리고 3년 만에 암은 다시 찾아왔다. 2014년 1월 달 정기검진에서 담당 의료진이 좋지 않은 징후가 있으니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소견을 말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3년의 시간 동안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로 많았는데 그 시간들을 지내면서 나는 암을 망각한 채로 살아왔다. 암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관리를 했다면 암이 다시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남았다.

검사결과 대장과 직장이 연결되는 S결장 부분에 새로운 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이 암은 이전의 암과 다른 암이기 때문에 새롭게 생긴 암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암이 새롭게 생긴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다시 암환자인 것이다.

충격이었다. 어머님 아버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장남을 걱정했고 나 또한 깊은 시름에 빠졌다. 앞이 캄캄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 번도 아니고 3년 만에 두 번째 암이라니!

2014년 3월 10일 다시 암 수술을 받았다. 3년 전 처음 암 수술을 할 때는 항문에서 약 13Cm 정도 위쪽에 암이 있었기 때문에 담당 의료진은 복강경 수술을 하였다. 수술을 하고 나서도 크게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S결장에 있는 암이었다. 배를 개복하여 수술을 하는데 대수술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에는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손을 씻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암은 나를 커다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트려버렸다. 만약 다시 이런 수술을 해야 한다면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수술이 끝나고 거의 몸무게가 10Kg 정도 빠졌다.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기운 없고 매사에 의욕이 사라져 갔다. 더 큰 문제는 배변이었다. 보통 변의가 느껴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지만 수술 후에는 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화장실을 자주 가야했다.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1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이런 증상은 회복된다고 하는데 수술을 통해서 장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이 그에 적응해 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행히 이번에도 암은 직장에만 있었고 다른 부위로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의료진들은 수술이 끝난 후에 항암치료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수술을 했던 의료진과 항암약을 처방하는 혈액종양내과 의료진들 사이에 항암에 대하여 심도 있게 토의를 했다. 수술을 했던 의사선생님은 항암주사에 대하여 약간은 회의적인 태도였는데, 혈액종양내과 의료진들이 아마도 그 분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한 듯하다. 항암 주사를 맞게 되면 방사선 치료까지도 고려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먹는 항암약을 써보자는 쪽으로 내려졌다.

지금도 그 항암약을 먹고 있는데 2주 동안 약을 먹고 1주는 쉬는 식이다. 먹는 약이지만 처음 겪게 되는 약의 부작용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온몸의 피부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려워졌다. 아무리 긁어도 가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약을 먹고 나면 바로 설사가 나와서 아침저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

울산에서 오랫동안 한식 요리사로 일을 했다. 일반 사람들은 요리사가 잘 먹는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식사를 하는 시간이 일정치가 않고 음식을 할 때마다 간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싫든 좋든 요리된 음식은 맛을 봐야 된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아마도 암이 생긴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수술이 끝나고 잘 안 보던 통장을 보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위태롭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는데 통장을 살펴보니 보험료가 두 군데서 나가고 있었다. 보험을 들어놓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암환자가 건강보험 덕분에 큰돈 안들이고 병원치료를 할 수 있다지만 사실 암을 겪어보니 병원 치료 이후가 더 큰 문제였다. 돈 들 곳이 더 많아졌다. 지금 나는 경남 김해에 있는 진영제암요양병원에 있는데 만약 보험이 없었다면 이런 요양생활을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한 달 정도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 참으로 편해졌고 한가하게 지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챙기고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보니 옛 생각에 잠겨서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나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지만 사랑마저도 잃게 된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 사람에게 잠시 휴식을 하면서 시간을 가져보자는 말을 했다. 암을 숨기고 나는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수술이 끝난 후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끈질기게 물어보는 그 사람에게 결국 사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펑펑 울면서 왜 그런 사실을 숨겼냐는 원망을 들었지만 나는 그 사람의 행복과 앞날이 걱정 되었다. 암이 언제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길고 긴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은 함께 이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했다.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가 싫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집안의 왕래도 있었고 결혼을 위한 아파트도 있었고 통장에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온 돈과 암을 진단 받고 보험회사에서 받은 돈도 고스란히 있었다. 아무 일 안 해도 우리가 결혼해서 10년 넘게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의 돈이었다. 그러나 아프기 전에는 내 사랑에는 열정과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 몸의 건강 때문에 이전만큼 열정적일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계속해서 생겼다. 남자인 나는 여자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고 또 여자는 남자의 사랑으로 행복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데 암과 투병하면서 그런 에너지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헤어졌다.

암과의 투병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 다시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암환자라 해도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더 큰 공감과 교감이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랑도 참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아픔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나누는 행복과 기쁨이야말로 참다운 사랑이 아닐까?

지금은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의지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 홀가분하다는 느낌인데 최근에는 이런 자유로움을 많이 느낀다. 어디든지 여행을 갈 수 있고 풍경과 사람을 카메라로 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마음껏 들으면서 조금은 외롭고 고독하지만 말 그대로 자유영혼이 되었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스타렉스 봉고차를 하나 살 것이다. 그 차에 캠핑도구를 싣고서는 전국 일주를 할 계획이다. 그렇게 다니면서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보이면 밥 한 끼 얻어먹으면서 같이 일도 하고 또 내가 봉사할 일들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닐 것이다.

이곳 김해 진영제암요양병원에 와서 같이 암을 앓고 있는 분들과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내 별명이 ‘해피총각’이다. 나이가 제일 젊은 축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부탁을 많이들 하시는데 나는 언제나 웃으면서 해드린다. 이런 모습이 행복해보여서 해피총각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 같다. 나는 같이 지내는 분들에게 언제나 음악을 권한다. 몸이 아프고 또 수술 후유증 때문에 잠시나마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그 시름을 잊게 된다면서 좋아한다.

암과 투병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을 몇 가지 깨달았다. 자신의 병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며 지내다 보면 결국에는 내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감동받을 수 있는 일들을 사소한 것에서도 찾아야 한다. 옆에 같이 투병하는 분의 핸드폰에서 손녀의 사진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핸드폰에 있는 프로그램으로 그 사진을 예쁘게 꾸며서 보여주니 눈물을 흘리셨다.

인생을 80까지 산다면 지금 나는 삶의 중간에 넘어야 될 높은 산을 넘고 있는 중이다. 이제 그 산을 절반쯤 넘게 올랐는데 모든 과정을 마치고 다시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더 큰 행복과 더 큰 사랑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해피총각으로 지내는 지금을 감사하게 간직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월간암(癌)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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